지난 3월 17일 권병희 서울지방노동위원장이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photo 강은이 영상미디어 인턴기자
"왜 법원이 아니라 여기로 오나요?"
지난 3월 17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아파트 골목 사이에 있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견학에 나선 세종대 법학과 학생이 직원에게 던진 질문이다.
많은 이들이 노동분쟁을 법원에서 해결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상당수가 노동위원회 단계에서 처리된다. 법원 소송이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소요되는 것과 달리, 지방노동위원회는 통상 60일 이내에 심문과 판정을 진행한다. 별도의 비용 부담 없이 조사관이 직접 사실조사를 수행하는 점도 특징이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시행으로 노동위원회의 역할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학생들이 견학을 오는 경우는 거의 처음이라 조금 떨리네요." 고수연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기획총괄팀장이 학생들을 위해 직접 준비한 견학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환하게 웃었다. 지방노동위원회에 대한 관심이 반가운 듯한 표정이었다. 최근 노동시장에 굵직한 변화가 잇따르면서 지방노동위원회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덕분인지, 실무 현장을 확인하려는 예비 법조인들의 눈빛도 사뭇 진지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등 구제신청 '심판'과 노동쟁의 '조정' 등을 담당하는 노동분쟁 해결 기관이다. 전국에는 서울·부산 등 13개 시도에 지방노동위원회가 설치돼 있으며, 재심을 담당하는 중앙노동위원회는 세종시에 있다.
가만히 직원의 설명을 듣던 학생들이 던진 질문은 '법원과 지방노동위원회의 차이가 무엇이냐'였다. 법원이 피해를 주장하는 당사자 간 주장과 증거에 따라 판단하는 '당사자주의' 중심 구조라면, 노동위원회는 당사자주의에 더해 조사관이 직접 현장을 발로 뛰는 '직권조사'를 병행한다. 조사관이 사업장을 방문해 근로자 수를 직접 확인하거나, 출입 인원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형식상 사업장을 분리해 운영하는 이른바 '쪼개기 계약' 여부를 확인하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적극적인 직권조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노동위원회는 법원보다 신속하고 실질적인 분쟁 해결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병희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은 학생들을 향해 "사건 100건이 접수되면 약 97건은 노동위원회 단계에서 해결된다"며 "조정이나 화해, 판정을 통해 상당수 분쟁이 이곳에서 마무리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서울 직장인들의 가슴을 졸였던 '서울 시내버스 파업' 사태 당시에도 노사는 이곳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조정회의실에서 머리를 맞댔다. 사상 초유의 파업 속에서도 노사가 극적인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던 건, 파업 돌입 후에도 사흘간 새벽까지 이어진 끈질긴 조정 덕분이었다. 신준호 조정팀장은 "내가 한 회의 중 가장 긴 회의는 잠도 안 자고 진행된 48시간이었다"며 "노동위원회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버스 파업의 극적 타결이 이뤄졌던 조정회의실에 들어섰다. 지방노동위원회 소속 근로자위원·공익위원석은 사용자와 노동조합 측을 마주 보고 있었고, 중앙에는 조사관석이 놓여 있었다. 벽면에는 모니터가 설치돼 자료를 공유하기 용이한 구조였다. 현장을 둘러본 한 학생은 "노동위원회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소감을 전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2025년 조정 성립률은 63.6%로 높은 수준이다. 심판 사건 역시 상당수가 중간 단계에서 마무리된다. 2025년 취하·화해율 역시 65.7%를 기록했다. 취하·화해율은 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로 사건이 판정까지 가지 않고 당사자 간 합의나 자진 취하로 종료된 비율을 의미한다. 고수연 기획총괄팀장은 "초심 단계에서 분쟁을 종결할 수 있도록 화해를 적극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17일 세종대 법학과 학생들이 모의심판에 참여하고 있다. photo 강은이 영상미디어 인턴기자
노봉법 변수 속 커지는 역할
서울은 전국에서 사업장과 노동 수요가 가장 밀집된 지역인 만큼, 최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접수되는 조정·심판 사건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처리한 심판 사건은 총 5078건이다. 하루 평균 약 14건의 사건을 처리한 셈이다. 2024년(4447건)에 비해 1000건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는 처리 기준이며, 실제 접수 건수는 이보다 더 많다. 2026년 1월 기준 심판 사건 접수 건수는 1407건으로 전년 동월(916건) 대비 53.6% 증가했다. 재심을 담당하는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올해 1월 접수 건수는 1394건으로 전년 동월(904건) 대비 약 54.2% 증가했다. 사건 증가의 원인에 대해 노동위원회 관계자들은 "아직 명확히 특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구조적 변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앞으로 인공지능(AI)과 자동화 확산으로 일부 산업에서 고용 불안이 커질 경우, 부당해고 구제신청이나 노동쟁의 조정 신청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최근 현대자동차 노조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 도입과 관련해 "노사 합의 없이는 현장 투입을 허용할 수 없다"고 반발하는 등 기술 도입을 둘러싼 갈등도 표면화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 역시 AI 확산과 맞물려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노동시장 불안 요인이 커지고 있다. 세종대에서 노동법 강의를 하고 있는 정재욱 변호사는 "현재 AI로 인한 노동의 대체 등 큰 변화를 겪고 있고, 이에 따라 전통적인 노동법 관념이나 지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AI 등 산업환경에 대한 변화를 이해하고, 다른 학문과 영역에 대한 융복합적 사고와 이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동 현장의 지각변동 속에 지난 3월 10일 발효된 '노란봉투법'은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법 시행 이후 3월 16일 기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신청'은 7건이 접수된 상태다. 교섭 대상과 주체가 확대되면서, 하나의 사업장 내에서도 노조 간 이해관계 충돌이 생긴다. 이에 따라 별도의 교섭을 요구하는 교섭단위 분리신청 역시 증가하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노동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교육의 중요성과 노동위원회의 역할이 함께 커지고 있다. 이날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장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견학을 통해 노동법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가 크게 높아질 수 있었다"며 "향후에도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인재양성을 할 수 있도록 학과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할 예정"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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