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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김용섭의 비교만필(比較漫筆) ⑦ ] 교수와 박사, 그리고 학인(學人)의 ...

더욱이 인공지능(AI)의 등장은 방대한 지식을 순식간에 탐색하고 정리함으로써, 이제는 강단의 교수들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식의 단순한 보유만으로 교수의 권위를 유지하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AI가...

[김용섭의 비교만필(比較漫筆) ⑦ ] 교수와 박사, 그리고 학인(學人)의 ...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일러스트=챗GPT]

【뉴스퀘스트=김용섭 S&L 파트너스 변호사(전북대 로스쿨 명예교수) 】

1. 교수(Professor)와 박사(Doctor)

오늘날 많은 이들은 학자의 삶을 학위의 시작과 정년의 끝으로만 한정한다. 그러나 권력도, 제도도, 세월도 학자나 학인을 가두어 둘 수는 없다.

조선시대 학자들의 3대 논쟁은 이(理)와 기(氣)의 관계에 관한 이기(理氣)논쟁, 왕실 상복 기간과 예법을 두고 벌어진 예송논쟁,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쟁인 호락논쟁을 들 수 있다.

당시 인물성동론을 지지한 낙론의 대표 학자인 외암(巍巖) 이간의 세거지, 예안 이씨 집성촌인 충남 아산 외암민속마을을 최근에 인암회(仁巖會) 회원과 함께 방문하였다. 그곳에는 ‘참판댁’도 있지만, ‘교수댁’이 있다. 이 집은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퇴암(退庵) 이성열의 거처였으며, 뒷날 그의 후손 이용구가 성균관의 교관직인 종6품 교수(敎授)를 지내면서 택호(宅號)가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수는 오늘날의 대학교수가 아니라 성균관의 관직명으로, 유생의 강학을 이끌고 교육 행정 문서를 관장하는 실무직이었다. 조선시대 박사 역시 홍문관·성균관·승문원 등에 두었던 정7품의 관직으로, 경서 강독과 외교 문서의 작성·교정 등 실무를 두루 맡았다.

『경국대전』 체제 아래에서 교수는 학문적 권위를 상징하는 이름이 아니라, 유생을 가르치는 관직이고, 박사는 행정을 담당하는 관료적 하급 실무 관직이었다. 조선시대 성리학과 예학을 깊이 탐구하는 학자는 따로 존재했기에, 우리의 교수와 박사 전통은 학문적 위상보다는 관료체제의 하급직에 머물렀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오늘날 교원의 사회적·법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별도의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마련하고 있는 현실과도 연결된다. 교수와 박사라는 이름이 관료체제의 하급직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오늘의 학자가 제도권 밖에서 스스로 학문적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오래된 숙제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박사와 교수의 우열을 논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박사가 귀하던 시절에는 교수보다 박사라는 호칭이 오히려 더 높은 위상을 지녔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우남(雩南) 이승만이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이 박사'로 통용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 호칭이 지닌 무게는 오늘날과는 현격히 달랐다. 1980년대 중반 이전, 석사학위만으로도 교수가 될 수 있었던 시기에는 박사학위 자체가 최고의 학문적 권위를 상징하였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외국 유학의 보편화와 박사학위 취득자의 급증은 이른바 학위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였다. 이제 박사학위를 지닌다 하더라도 교수직에 오르는 길은 극히 협소하고 험난한 현실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박사학위 취득자가 늘어나면서, 대학 교수라는 직위가 더욱 높은 사회적 평가를 받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박사란 학문적 자격과 호칭에 불과하지만, 교수란 그 자격이 제도적으로 인정되어 부여되는 직업적 지위라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교수라는 호칭 또한 오늘날에는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에서는 대학 교원에 한하여 교수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그 범위가 필요 이상으로 확장되어 있다. 명예교수는 대학에서 오랜 기간 봉직한 이에게 부여되는 영예로운 칭호이지만, 석좌교수·겸임교수·초빙교수·특임교수·연구교수·객원교수 등 교수 앞에 다양한 수식어가 덧붙은 직함들은 비전임 교원이라는 공통적 성격을 지닌다. 화려한 수식어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연구를 본령으로 삼는 교수의 실질적 권위가 의심받는 역설적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박사학위가 대학의 박사규정(Promotionsordnung)에 따라 수여되는 학문적 호칭(akademischer Titel)으로서, 성명의 일부로 공문서에 기재될 만큼 법적으로도 엄격히 보호된다. 박사학위나 외국 박사학위를 허위로 사용할 경우, 이는 공무원의 자격을 사칭한 행위와 동일하게 취급되어 형법 제132a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박사학위의 허위 사용이 형법상 공무원자격사칭죄에 해당하지 않으며, 다만 공직선거법 제250조의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하여 처벌된다. 국·공립대 교수의 자격을 사칭하여 직무를 행사하면 형법상 공무원자격사칭죄가 성립하나, 사립대 교수나 박사학위 자체를 사칭하더라도 형법상 사기죄가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자격사칭에 관한 별도의 처벌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J.D. (Juris Doctor)와 같은 학위를 별도의 논문도 없는데 법학박사 학위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을 낳고 있다. 교수 채용 과정에서 외국 학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 역시 명확하지 않다. 교수 채용 시에 로스쿨이나 의대의 전문박사와 학술박사를 엄격히 구분하여 이를 반영하는 대학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 평가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결국 교수와 박사의 우열을 가리는 문제는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질문에 불과하다. 우리는 보다 본질적인 물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학자란 무엇이며, 진정한 학인의 길은 무엇인가. 학문은 단순한 직함이나 호칭을 넘어, 진리를 탐구하고 인류의 지혜를 확장하는 숭고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2. 공맹(孔孟)과 막스 베버(Max Weber)

공자와 맹자, 곧 공맹(孔孟)은 학문의 본질을 인간의 마음과 도(道)에 두었다. 『논어』 「이인편」에서 공자는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라 하여,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였다. 이는 학자가 반드시 도에 뜻을 두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맹자는 “개나 닭을 잃으면 찾을 줄 알면서, 마음을 잃고도 찾을 줄 모른다”고 하며, 학문의 도는 다른 데 있지 않고 오직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데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곧 구방심(求放心)을 강조하여, 학문이란 본래 인간의 마음을 바로 세우고 도를 회복하는 데 그 근본이 있음을 일깨운 것이다.

한편,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1917년 뮌헨대학교에서 행한 강연 「직업으로서의 학문(Wissenschaft als Beruf)」에서 학문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가, 그리고 왜 그 길을 가야 하는가를 냉철하게 설파하였다. 막스 베버는 학문을 단순한 생계의 수단이 아닌 '소명(Beruf)'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Beruf는 독일어로 '직업'과 '소명'을 함께 뜻하는 말로, 그는 바로 이 이중적 의미 속에 학자의 길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막스 베버가 학자에게 요구한 것은 냉철함(Sachlichkeit)과 열정(Leidenschaft)의 결합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자신의 연구가 후학들에 의해 극복되기를 바라는 겸허함(Bescheidenheit)과 외적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학문에 헌신하는 태도(Hingabe an die Wissenschaft)를 학자의 덕목으로 제시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맹자의 구방심(求放心)과 막스 베버의 소명의식(Beruf)이 시(時)의 고금(古今)과 양(洋)의 동서(東西)라는 간격에도 불구하고 깊은 공명을 이룬다는 것이다. 막스 베버가 학자에게 요구한 소명의식은 외적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내적 부름에 응답하는 자세이며, 맹자의 구방심 역시 외물에 끌려다니지 않고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강조한다. 막스 베버는 서양 근대의 언어로, 맹자는 동양 고전의 언어로, 결국 같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3. 강단의 유한함과 강호의 무한함 사이에서

대학의 강단은 엄연히 울타리가 있는 세계이다. 임용과 재임용이 있으며, 학문적 업적에 따른 평가와 승진이 있고, 마침내 정년이 있다. 강단은 학자에게 안정된 울타리를 제공하는 상아탑(象牙塔)이면서도, 동시에 그 울타리 안에서만 통용되는 원칙과 관행으로 이루어진 유한(有限)의 세계이기도 하다. 대학의 권위가 강단의 경계를 넘어 강호의 세계에서 통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제도가 부여한 권위는 그 제도의 경계 안에서만 유효하다.

이에 반해 대학 밖의 강호(江湖)는 오직 실력과 내공으로 승부하는 냉엄한 세계이다. 학문의 또 다른 현장인 이 강호에는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든 고수도 있고, 오랜 세월 현장에서 단련된 실무가도 있다. 그들에게는 교수라는 직함도, 박사라는 학위도 없을지 모르나, 그 학문적 깊이와 통찰은 강단의 누구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더욱이 인공지능(AI)의 등장은 방대한 지식을 순식간에 탐색하고 정리함으로써, 이제는 강단의 교수들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식의 단순한 보유만으로 교수의 권위를 유지하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은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힘, 맥락을 꿰뚫는 통찰력, 그리고 지식을 서로 연결하는 안목이다. 이러한 능력을 갖출 때 비로소 우리는 AI의 환각과 오류를 걸러내며, 그것을 학문적으로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학문은 더 이상 대학이라는 제도 속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AI 시대의 강단은 지식의 독점적 공급처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지식이 흐르는 개방적 통로가 되어야 한다. 누구나 AI를 통해 전문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강단이 여전히 상아탑의 울타리 안에서만 머문다면 그 존재 이유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강단은 간이역(Durchgang)이지 종착점이 아니며, 상아탑은 학문을 쌓아 올리는 성장의 공간이지 안주의 공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4. 교수의 정년과 학자의 시간

“교수에게는 정년이 있지만, 학자에게는 정년이 없다.” 오래전부터 회자되어온 이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정년을 맞는 순간 그동안 소장하고 있던 책을 폐기하고, 연구와 단절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년 이후의 삶을 학문과 무관한 여생(餘生)으로 설계하는 순간, 그 학자의 학문은 이미 정년보다 먼저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 정년이 학문의 종착점이 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학자가 아니라 전직 교수에 머문다.

막스 베버는 진정한 학자라면 어떤 외적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적 소명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하였다. 정년이라는 제도적 경계는 외적 조건의 변화일 뿐이다. 내적 소명이 살아 있는 학자에게 정년은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다. 강단이라는 외적 구조에 기대어 학문을 지속해온 이에게 정년은 위기이지만, 내적 소명으로 학문을 이어온 이에게 정년은 오히려 온갖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정년 이후 학자의 길은 단순한 연구 성과의 정리에 그치지 않는다. 평생의 지적 자산을 후학에게 전하는 결산이자, 동시에 새로운 탐구를 시작할 자유로운 기회이다. 강단의 의무와 제도의 평가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학자는 오직 지적 호기심과 내적 소명에 따라 가장 자유로운 연구자로 거듭난다.

박사학위나 교수 직위는 학인(學人)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학문의 완성은 쉽지 않으며, 그 성취는 고독한 연구의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소년이노 학난성(少年易老 學難成), 일촌광음 불가경(一寸光陰 不可輕).” 젊음은 덧없이 사라지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한 치의 시간조차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깨우침이다. 따라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 이후에도, 학문에 온전히 헌신하려 한다면 한평생의 시간조차 넉넉하지 않다. 결국 학자의 길은 권력이나 명예가 아닌, 진리를 향한 성실한 탐구와 내면의 소명에 의해 완성된다. 정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며, 학문은 평생에 걸쳐 이어지는 숭고한 여정인 것이다.

김용섭 변호사

◇ 김용섭 에스앤엘(S&L)파트너스 변호사

- 독일 만하임대 대학원 졸업 (법학박사)

- 現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에스앤엘(S&L)파트너스 입법지원센터장, 파트너 변호사

- 국회 입법지원위원,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위원회 위원

- 법제처법제 편집위원장, 영산법률문화재단이사

-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비상임조정위원

- 저서 : 행정판례평석, 행정법이론과 판례평석, 한국행정법학의 새로운 방향, 직필(直筆)과 객설(客說), 법과 인문학의 길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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