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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김석훈의 보물섬] 100년 전 백령도 장촌의 금주 단연 운동

“작년(1929) 10월경부터 생활 개선을 목적으로 색의를 착용하여 허례를 폐지하고 소비를 절약하는 중 무엇보다도 섬 내에서 1년간 4만5십여 원의 거액이 담배와 술로 소비됨으로 누구나 금주와 단연을 선전하던바 남포리에서는 지난 1월20일에 동리 중앙에 엽연초 110여 근을 쌓아놓고 전부 소화(燒火)한 후 금주 단연 동맹을 조직하고 각 리에 선전 삐라를 배포하여 전 도민은 동맹에 가입하기로 대활약 중.”

[김석훈의 보물섬] 100년 전 백령도 장촌의 금주 단연 운동

김석훈 황해 섬 문화연구원 원장

“작년(1929) 10월경부터 생활 개선을 목적으로 색의를 착용하여 허례를 폐지하고 소비를 절약하는 중 무엇보다도 섬 내에서 1년간 4만5십여 원의 거액이 담배와 술로 소비됨으로 누구나 금주와 단연을 선전하던바 남포리에서는 지난 1월20일에 동리 중앙에 엽연초 110여 근을 쌓아놓고 전부 소화(燒火)한 후 금주 단연 동맹을 조직하고 각 리에 선전 삐라를 배포하여 전 도민은 동맹에 가입하기로 대활약 중.” 이는 100년 전 백령도에서 생활 개선을 위해 전개되었던 것으로 ①흰옷 대신 '색의(색깔있는 의복)'를 착용하자는 것이며, ②금주 단연을 통해 소비를 줄이자는 것이다. 그중 ③1930년 1월 실시되었던 남포리 장촌 부락의 단연 사례를 보도한 기사 내용이다. 1930년 전후, 백령도 장촌에서 생활 개선 활동이 전개된 이유와 의미는 무엇일까?

1929년 10월에 미국 월가에서 주식이 폭락하는 대공황이 발생하면서 각 나라는 생산량을 통제하고 보호무역 장벽을 세워 수입을 억제하였다. 자국의 농민 보호 및 생산물 소비를 위해 추진한 것이었다. 공산품보다 쌀값 등 농산물 가격이 더 폭락해 농민들이 극심한 빈곤에 빠졌으며,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공황과 백령도에서 생활 개선 활동을 하던 시기가 같으며, 이로부터 2개월 후 장촌에서 금주 단연 등 생활 개선 활동을 펼친 것이다. 이것은 장촌 주민이 대공황으로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었지만 이면에는 철저한 일제의 통제 아래 실시된 정책이었다.

장촌에서는 왜 이런 생활 개선 운동을 전개한 의미는 무엇일까?

① 색옷 입기 : 조선인들은 전통적으로 흰옷을 숭상했다. 하지만 흰옷은 쉽게 더러워져 자주 빨래를 해야 했고, 이는 노동력 낭비와 잦은 세탁으로 인한 옷감 마모(비용 발생)를 초래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때가 잘 타지 않는 색옷(특히 검은색이나 국방색 등)을 입혀 세탁 비용과 노동력을 아끼게 했다. 색옷 입기를 강제하기 위해 관리나 면장들이 장날 시장 입구에 서서 흰옷을 입은 사람에게 먹물이나 물감을 뿜어 옷을 망가뜨리는 단속을 벌이기도 했다. 흰옷을 입고 배를 타면 거부하기도 했다.

② 금주 단연 운동 : 술과 담배를 끊음으로써 농가의 불필요한 지출을 막고 그 돈을 저축하게 강제했다. 이 역시 부락 단위로 감시 조직을 만들어 주민들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지 철저히 상호 감시하게 했다. 이는 농민의 정신을 일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뜯어고치려는 정신 개조 운동의 일환이었다.

색옷 입기와 금주 단연 운동은 조선 농민의 일상적인 소비(옷, 술, 담배)를 극도로 줄여 저축하게 하고, 그 돈을 일제의 식민지 통제와 침략 전쟁에 쓰기 위해 시행된 관제 생활 통제 운동이었다.

물론 두 운동을 통해 아낀 비용은 일제의 금융 통제 안으로 흡수되었고, 일제는 만주사변(1931)을 일으킬 때 군용선 건조, 국방 헌금, 전쟁 물자 조달 등 침략 전쟁 자금으로 수탈해 갔다. 감시와 통제가 쉬운 섬 지역은 소비 통제와 사상 교화의 효과를 극대화하기에 쉬웠고, 백령도를 수탈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례로 보인다. 이 당시에 장촌 부락에 조직된 금주 단연 동맹의 인적 구성과 역할, 이후의 활동 내용은 일제강점기 백령도 지역 운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며, 추후 과제로 남긴다.

/김석훈 황해 섬 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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