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광물 공급망, 시장 넘어 ‘진영’ 중심 재편
美·EU 블록화 가속…한국은 참여 속 실질적 제약
가공 독점·수출통제 겹치며 기업 조달 리스크 확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바흘릴 라하달리아 인도네시아 에너지광물자원부 장관이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임석한 가운데 핵심광물 협력 양해각서 문건을 교환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매일일보 = 오시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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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광물을 둘러싼 경쟁이 협정을 넘어 국가 간 ‘블록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자원 확보가 통상·안보와 결합된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공급망 자체가 진영 단위로 재편되는 흐름이다.
15일 통상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공급망은 핵심광물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이다. 전기차와 반도체, 인공지능(AI) 산업 확산으로 리튬, 니켈, 희토류 등 특정 자원의 중요성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안정적인 확보 여부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주요국은 공급망을 시장에 맡기기보다 정책적으로 관리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핵심광물 공급망을 동맹 중심으로 재편하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핵심광물 비축을 위한 ‘프로젝트 볼트’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핵심광이 풍부한 국가들과 ‘핵심광물 협력 강화’ △광산 프로젝트 투자 △연방정부 허가 절차를 신속화 등이 담겼다. 초기 자금은 미 수출입은행 100억 달러 대출과 민간 자본 약 20억달러로 조성될 예정이다.
다음날에도 미국은 이른바 ‘자원 클럽’을 추진하며,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중심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해당 클럽은 참여를 원하는 국가들과 양자 합의를 체결하고 핵심광물을 무관세로 교역하는 조직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미국의 행보가 기존의 자유무역 체계와 달리, 참여 국가를 중심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사례라고 분석한다. 시장에서 가격에 따라 거래되던 자원이 점차 ‘어느 진영에 속하느냐’에 따라 접근이 결정되는 자산으로 바뀌고 있다는 해석이다.
유럽연합(EU) 역시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는 에너지 및 원자재 통합 조달 플랫폼에서 ‘핵심 광물’ 부문 운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개별 기업이 아닌 지역 단위로 수요를 묶어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이다.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정책적 개입이 강화되면서, 핵심광물 시장은 점차 블록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핵심광물 공급 구조 자체와도 맞물린다. 희토류와 갈륨 등 주요 광물은 채굴보다 가공·정제 단계에서 특정 국가 비중이 80~9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반도체와 방위산업에 활용되는 핵심 소재 상당수가 이러한 가공 단계를 거쳐야 하는 만큼, 공급망 통제력 역시 일부 국가에 집중된 구조다. 단순히 광물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가공 단계까지 포함한 공급망 전체를 통제하지 않으면 안정적인 조달이 어려운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핵심광물은 협정과 동맹을 통해 접근 권한을 확보해야 하는 전략 자산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공급망 자체가 블록 단위로 묶이면서 이러한 전략이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자원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달 초 이재명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와 정상회담을 갖고 ‘핵심 광물 협력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지난 10일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카자흐스탄과 핵심광물 협력 논의를 진행하고,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외교적 접근을 강화했다. 정부 차원의 협력 채널을 확대하고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한국이 주요 공급망 협력 체계에 참여하고 있음에, 실질적인 공급망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본다. 핵심광물 안보 파트너십(MSP) 등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러한 협력이 실제 공급망 확보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지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 변화가 이미 산업 현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공급망이 시장이 아닌 정책과 진영에 따라 재편되면서, 기업들은 자원을 확보하고도 가격과 공급 측면에서 제약을 받는 이중 리스크에 놓이고 있다. 기존의 조달 전략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환경이 형성되면서,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배터리와 반도체 등 핵심광물 의존도가 높은 산업일수록 이러한 영향이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자원 확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약이 생산 계획과 투자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산업 경쟁력 자체를 흔드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은아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핵심광물 공급망은 더 이상 수요와 가격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이 아니라,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며 “한국은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지만, 실제 공급망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중국 중심의 가공·정제 구조가 단기간에 바뀌기 어려운 만큼, 핵심광물 이슈는 가격 문제가 아니라 ‘접근 권한’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며 “현재 흐름은 단기적인 공급 불안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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