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구 인하대학교 제조혁신전문대학원 초빙교수
강천구 인하대학교 제조혁신전문대학원 초빙교수
이란사태가 에너지 전쟁으로 확대되면서 미·중 간 자원전쟁 또한 좀처럼 진정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EU, 일본 등 주요국은 對中國(대중국)의 의존도를 축소하기 위해 핵심광물의 공급 안정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주요 제조국임에도 불구하고 리튬, 코발트, 니켈 등 핵심광물 정·제련 제품의 대중국 수입의존도가 70%를 넘는 등 공급망 취약성이 높다.
미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제련 기준 한국의 글로벌 생산 비중은 카드뮴 18.8%, 인듐 16.7%, 비스무트 6.3%, 구리 2.3%, 갈륨 0.4%이다. 우리나라는 광물자원이 부족한 국가로 핵심광물의 평균 수입의존도는 99.9%에 달한다. 따라서 정부는 10대 전략 핵심광물의 특정국 의존도를 50% 이하로 낮추고 재자원화 비중을 20%대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의존하고 있는 중국이 세계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주요 공급자이자 수요국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EU 등 주요국은 이에 맞서 탈중국 공급망 재편을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기업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이 구도에서 가장 주목받는 국내 기업이 고려아연이다. 그런데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19일 고려아연 현 경영진의 일부 후보에 의결권 미행사를 결정하고 또 감사위원 후보는 명시적 반대를 표명했다. '기업가치 훼손 이력'이라는 잣대를 앞세웠지만, 그 결정이 과연 우리나라 산업안보와 국민 노후자금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고려아연은 세계 비철금속 제련 분야에서 1위 기업으로, 아연․납․구리 등 기초금속부터 금․은 등 귀금속, 안티모니․인듐․비스무트․게르마늄 등 핵심 전략 광물까지 총 22종의 비철금속을 생산하는 세계 유일에 가까운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다. 고려아연은 제련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을 다시 추출해 상업적으로 안정 공급하는 독보적 기술을 갖고 있다.
미 행정부가 이 사실에 주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핵심광물을 국방․경제안보에 필수적인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고, 고려아연을 '신뢰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했다. 그 결과가 미 테네시주 클락스빌에서 추진 중인 '프로젝트 크루서블'이다. 총 74억 달러(약 11조 원) 규모로 미 상무부 보조금과 정책 금융 등 미 행정부와 투자자가 전체의 91%를 부담한다. 이는 고려아연의 제련 기술력과 프로젝트 수행 역량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 프로젝트는 미 행정부가 현 경영진에 대한 신뢰 관계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만약 경영권이 교체될 경우 사업이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통상 협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카드 마저 사라질 수 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피투자 기업의 장기적 기업 가치와 국민 경제적 영향을 고려한 책임 투자를 요구한다. 미 행정부가 자금을 투입하며 신뢰를 부여한 기업의 리더십 연속성을 흔드는 이번 결정이 과연 우리 국익에 어떻게 작용될지 냉철히 생각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단기적 거버넌스 잣대를 넘어 대한민국 산업안보와 공급망 확보라는 정부 정책에 부합되는 판단을 해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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