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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기고] 고성과 막말의 국정감사, 언제까지 시청률용 연극을 볼 것인가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국회의 풍경이 있다. 바로 국정감사다. 과거처럼 멱살잡이나 뺨을 때리는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은 많이 사라졌다지만,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차마 귀를 기울이기 힘든 폭언과 고성, 그리고 책임 없는 비판이다.

[기고] 고성과 막말의 국정감사, 언제까지 시청률용 연극을 볼 것인가

우웅택 대구가톨릭평화방송 PD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국회의 풍경이 있다. 바로 국정감사다. 과거처럼 멱살잡이나 뺨을 때리는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은 많이 사라졌다지만,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차마 귀를 기울이기 힘든 폭언과 고성, 그리고 책임 없는 비판이다. 증거나 확실한 증인도 없이, 마치 경찰서 취조실에서나 볼 법한 압박용 질문을 퍼붓고, 상대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마저 서슴지 않는다. 국회선진화법이나 청탁금지법 등 시대의 변화에 맞춘 제도들이 겹겹이 들어섰음에도, 왜 국정감사장은 매년 자극적인 충돌의 무대로 전략하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제도적 허점과 왜곡된 정치 환경의 결합에서 찾을 수 있다. 헌법 제45조가 보장하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은 국회 안에서 행한 발언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보호한다. 취지는 소신 있는 의정 활동을 보장하기 위함이지만, 현실에서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적 언사를 일삼아도 아무런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 ‘방패’로 남용된다. 여기에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의 자율 징계 기능이 정당 간 붕당 정치 속에 실효성을 잃으면서, 막말에 대한 실질적인 페널티는 사라졌다.

더욱 무서운 변화는 ‘팬덤 정치’와 ‘숏폼 미디어’의 결합이다. 과거에는 정당 지도부의 눈도장이 공천을 결정지었다면, 오늘날은 강렬한 팬덤의 지지가 정치인의 생존을 좌우한다. 치밀한 자료 준비와 정교한 정책 질의는 대중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반면 상대 진영을 향해 호통을 치고 삿대질하는 장면은 곧바로 짧은 영상(Shorts)으로 편집되어 온라인에 유포된다. 이 자극적인 영상들은 팬덤 사이에서 ‘사이다 발언’으로 소비되며, 인지도 상승은 물론 엄청난 후원금으로 직결된다. 의원들에게 고성은 일종의 ‘가성비 높은 정무적 행위’가 된 셈이다.

이러한 현상을 언론이 방관하기는커녕 앞다투어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클릭 수와 시청률이 언론사의 생존을 결정하는 환경에서, 복잡한 예산안이나 정책 이슈보다는 ‘누가 누구에게 소리를 질렀는가’ 하는 감정적 충돌이 훨씬 매력적인 상품이다. 깊이 있는 취재나 정책 분석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지만, 국감장의 고성 현장은 발언록과 영상 clip만으로도 순식간에 기사를 생산할 수 있다. 여기에 자극적인 진영 논리를 더하면 상업성과 결집력을 동시에 얻을 수 있으니, 언론 역시 이 시청률용 연극의 공범으로 전락하고 만다.

국외 사례를 보면 이러한 파행이 결코 의회 정치의 불가피한 속성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영국 하원은 비록 논쟁은 매우 격렬할지라도 원내 질서 규율이 매우 엄격하다. 의원은 상대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대신 “영예로운 의원”이라는 호칭을 써야 하며, 의장이 품위를 해친 의원에게 퇴장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미국 의회의 청문회는 전문 위원회 스태프들이 수개월간 조사한 구체적인 증거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무엇보다 위증에 대한 처벌이 매우 엄격하여, 말싸움이 아닌 법적·사실적 책임 공방으로 귀결된다.

달라진 세태 속에서 우리 국회도 변해야 한다. 매년 가을 20일 동안 수백 개 기관을 벼락치기로 감사하는 지금의 구조를 현안 중심의 ‘상시 청문회·감사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AI와 데이터 분석을 적극 도입하여 말싸움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 검증이 이루어지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동시에 솜방망이에 불과한 국회 윤리 규정을 강화하여 막말과 명예훼손을 일삼는 의원에게는 강력한 불이익이 돌아가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신해 정부의 행정을 감시하고 바로잡는 엄중한 자리다. 고성과 막말로 점철된 국감장은 결국 국민의 정치 유혐오증을 키우고 민주주의의 질을 떨어뜨릴 뿐이다. 자극적인 연극에 박수를 보내는 대신, 차분하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정부를 견제하는 진정한 ‘정책 일꾼’을 알아볼 수 있는 국민의 매서운 눈초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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