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태양광· 전기차·AI 산업에 필수 비메모리반도체
한국, 90% 수입 의존··· 정부, 2030년 국산화 50% 추진
삼성전자· DB하이텍 ·SK하이텍· LX세미콘 등 생산체계 구축 나서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로 전력반도체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 규모가 연평균 50% 성장하고, 올해 가격이 최대 85%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제품. 요즘 인공지능(AI) 시대의 주역인 GPU나 고대역폭메모리(HBM) 얘기가 아니다. 전력반도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AI데이터센터와 친환경차 확산이 맞물리며, 차세대 전력반도체가 미래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수요의 90%를 수입에 의존해, 전력반도체 산업 육성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산업의 폭발적 확장으로 전력을 변환하고 제어하는 '전력반도체' 시장이 가파른 우상향 곡석을 그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9일 유안타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GaN 전력반도체 시장은 2023년 2억 7000만 달러에서 2030년 43억 8000만 달러(약 6조 5000억 원)로 연평균 49% 성장이 예상된다. SiC 전력반도체 시장은 2034년 186억 달러(약 28조 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기업들은 필요한 전력반도체를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인버터·전기차 거쳐 AI 데이터센터로 확장
전력반도체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전력을 기기가 필요로 하는 형태로 변환·제어하는 비메모리 반도체다. 초기에는 풍력·태양광 발전 설비의 인버터나 산업용 모터 제어 장치에 주로 쓰였다.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배터리의 고전압을 구동 모터에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핵심 부품으로 자리잡았고, 이제는 AI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최대 수요처를 만났다.
최근에는 AI 연산 처리를 위한 데이터센터가 전력반도체의 최대 수요처로 부상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외부 송전망에서 유입되는 고압의 전력을 서버 내 GPU와 CPU가 사용할 수 있는 저압 직류 전력으로 변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서버용 전원공급장치(SMPS)와 정전 상황에 대비하는 무정전 전원장치(UPS)에 질화갈륨(GaN) 및 탄화규소(SiC) 전력반도체가 탑재된다.
이 과정에서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다. 전력 소자의 발열을 줄이고 전원 장치의 부피를 축소할 수 있어, 동일한 공간 내 서버 밀도를 높이는 고집적 설계에도 기여한다. 유관 기관 전문가는 "전력반도체 성능 향상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효율과 발열 문제를 동시에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평균 49% 고성장 시장에도 글로벌 전력반도체 단가 인상
글로벌 전력반도체 시장 규모 및 전망((단위: 백만 달러), 2022~2035년. /Global Market Insight
시장 수요 증가와 구리, 알루미늄 등 원자재 비용 상승이 겹치면서 전력반도체를 포함한 전력관리 반도체 일부 제품의 가격 인상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제품군별로 두 자릿수 수준의 가격 조정을 진행하는 중이며, 특히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는 전력 관리 반도체 등 일부 품목 가격을 최대 85% 인상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메모리 편중… 다품종 소량생산 전력반도체는 투자 공백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전력반도체의 시장 가치는 메모리 반도체 대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돼 왔다. 규격화된 제품을 대규모로 생산하는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의 메모리 반도체는 단일 품목으로 수백조 원의 시장을 형성한다. 반면 전력반도체는 자동차, 산업용 설비 등 개별 고객사의 기기 규격에 맞춰 제작해야 하는 다품종 소량생산 구조다.
이 같은 생산 구조 차이는 국내 반도체 산업에서 전력반도체 투자 불균형으로 이어졌다. 한국 기업들은 첨단 미세 공정을 기반으로 한 메모리 반도체 대량 양산 체제에 자본을 집중해 왔다. 반면 전력반도체는 주로 8인치(200mm) 이하 웨이퍼를 사용하는 성숙 공정에서 생산되며, 전기차와 산업 설비 적용을 위해 장기간 신뢰성 검증이 요구되는 특성이 있다.
이처럼 초기 투자 대비 단기간 수익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로 인해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그 결과 현재 국내 전력반도체 수요의 90%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설계·소재·생산 밸류체인 구축… 정부, 기술 자립도 50% 추진
국내 반도체 업계는 설계부터 파운드리(위탁생산)에 이르는 전 주기에 걸쳐 차세대 전력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기흥캠퍼스에 MOCVD(유기금속화학증착) 설비를 구축하고 생산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독자 개발한 에피 웨이퍼 투입과 함께 평판 구조 SiC MOSFET 샘플 양산 등 설계부터 생산까지 일괄 제공하는 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파운드리 기업들의 양산 체제 전환도 가시화되고 있다. DB하이텍은 650V GaN 공정 수율 안정화를 거쳐 하반기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미 자동차 및 데이터센터 전원 공급장치 시장을 대상으로 고객사 시험 생산을 마쳤다. SK키파운드리는 650V GaN 기반 HEMT 소자 특성을 확보했으며, 다양한 전압 소자와 GaN IC를 포함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여 고객사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설계 영역의 LX세미콘은 소재와 설계를 통합한 사업 구조를 구축 중이다. 과거 인수한 방열 기판 기술을 전력 모듈 설계에 접목하여 자동차용 전력반도체 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맞춰 정부는 '반도체 세계 2강 도약 전략'에 따라 화합물 반도체 개발에 2031년까지 총 2601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산업통상부는 SiC, GaN 등 차세대 소재의 국산화율을 끌어올려 전력반도체 자립도를 2030년까지 50%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기획재정부 또한 국가전략기술에 전력반도체를 포함해 시설 투자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민간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전체 반도체 시장 중 비메모리 영역이 점유하는 비율은 70%"라고 강조하며 "국내 기업들의 전력반도체에 대한 투자는 향후 AI 시대 전력 제어 인프라 구축과 함께 국가 반도체 포트폴리오를 뒷받침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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