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림소극장 25, 26일 공연
슬픈 상황 만들려 유머로 비틀어
현실과 떨어져 현실 보는 것 중요
문제 외면 아닌 다른 선택하도록
극단 열혈단 정창윤 연출가(가운데)와 관계자들이 극단 연습실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유채현기자
막내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12년 만에 다시 모인 가족. 서로를 위로해야 할 장례식장은 오히려 오래 묵은 원망과 상처가 터져 나오는 공간이 된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비극으로만 비춰지지 않는다. 서로를 향한 폭력과 갈등 속에서도 예상치 못한 웃음이 피어나고, 관객은 그 웃음 뒤에 숨겨진 가족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대구 극단 열혈단의 창작극 ‘3.3kg’이 25~26일 한울림소극장 ‘2026 베스트3 소극장전’ 마지막 무대에 오른다. ‘3.3kg’은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 수상작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대학로 인기작 ‘보도지침’ 등 전국에서 주목받은 작품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며 대구 창작극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밀양공연예술축제 차세대 연출가전에서 연출상과 고마나루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3.3kg’은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상처를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야기는 막내 아들 기태의 죽음을 둘러싸고 가족들이 12년 만에 다시 모이며 시작된다.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가족들은 서로에게 쌓아둔 감정과 기억을 꺼내놓고, 관객은 그 안에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져 있던 균열을 마주한다.
정창윤 연출가는 ‘3.3kg’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하게 여겨지는 희생과 책임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족이지만 모두가 개인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보다 더 미워하기도 한다”며 “그런데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들이 오히려 모순적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작품 속 가족은 따뜻한 공동체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에 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 존재로 등장한다. 다만 정 연출가는 갈등과 상처를 비극적으로만 소비하기보다 유머를 통한 비틀기를 택했다. “작품 속 등장하는 이야기와 인물들의 서사는 굉장히 암울하지만, 그 상황을 너무 비극적으로만 보여주면 극적인 효과가 오히려 줄어들어요.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이 관계의 아이러니함을 느끼고, 그 안에서 웃음을 발견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그가 말하는 웃음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비극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그는 “비극적이고 슬픈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머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웃기고 재미있는 상황이 있기 때문에 그 뒤에 오는 아픔과 슬픔이 더 크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들에게 웃기려고 하지 말고 그 상황 속에 실제로 존재하라고 이야기한다”며 “인물들이 정말 그 상황에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이 바깥에서 바라봤을 때 웃음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작품 속 기태라는 인물 역시 단순히 죽은 가족 구성원이 아니다. 가족들이 외면했던 과거와 마주하게 만드는 존재다. 정 연출가는 “기태는 한 인간으로서의 주체적인 인물이라기보다 폭력이라는 존재 자체로 보였으면 했다”며 “물리적으로는 죽은 사람이지만 극 안에서는 살아 있는 것처럼 등장한다. 결국 가족들이 과거의 기태를 마주하는 것은 자신들이 행했던 폭력을 다시 마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혈단이 추구하는 연극적 방향은 ‘비일상성’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오히려 현실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연극의 힘이라는 설명이다.
정 연출가는 “우리는 연극이 가진 한계 없는 상상력과 공간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가족들과 만나는 것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연극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현실에서 조금 멀어져 연극을 통해 다시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지점, 그런 비일상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 고문은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무대의 막이 내려간 뒤,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관객들에게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또 누군가를 탓하거나 문제를 외면하는 선택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 극단은 대구에 기반을 두고 정말 치열하게 각자의 삶을 바쳐가며 연극을 하고 있어요. 저희의 고민과 과정은 관객들이 극장에 와주셔야 완성됩니다. 작품을 통해 그 시간을 함께 느껴주시길 바랍니다.”
유채현기자 ych@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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