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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갈등의 시대를 건너는 단 하나의 지혜 '역지사지(易地思之)'

오늘날 우리 사회는 확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알고리즘은 내가 보고 싶은 뉴스만 보여주고,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매일 강화해 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만의 확신이 강해질수록 타인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사회 곳곳은 오해와 갈등으로 타오른다.

갈등의 시대를 건너는 단 하나의 지혜 '역지사지(易地思之)'

허령 (전)울산광역시의회 부의장

오늘날 우리 사회는 확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알고리즘은 내가 보고 싶은 뉴스만 보여주고,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매일 강화해 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만의 확신이 강해질수록 타인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사회 곳곳은 오해와 갈등으로 타오른다.

너도 나도 "내 말이 맞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덕목은 무엇일까? 바로 예로부터 내려온 지혜 역지사지(易地思之)이다. 역지사지란 글자 그대로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함"을 뜻한다. 서양 속담 중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많은 사람들이 역지사지를 상대방의 의견에 무조건 동의하는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역지사지는 무조건적인 동조나 굴복이 아니다. 상대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더라도, 상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과 가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적극적인 시도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용기. 그렇다고 왜 우리는 타인의 입장에 서는 것을 그토록 어려워할까요? 지적 겸손의 부재, 내가 틀릴 수도 있다거나 내가 겪지 못한 단면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속도의 사회, 사실을 깊이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 빠르게 겉모습만 보고 편을 가르고 단정 짓는 것이 훨씬 쉽고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역지사지는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와 태도의 문제이다. 내 시선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겸손함, 그리고 나와 다른 삶을 사는 타인을 향한 다정한 호기심이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대화의 시작은 질문 하나로부터, 거창한 사회적 갈등의 해결도 결국 개인과 개인의 미시적인 소통에서 시작된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이, 혹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웃이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기 전에 딱 3초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내가 지금 저 사람의 상황과 지나온 환경에 있다면, 과연 나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작은 질문 하나가 단단한 오해의 벽에 균열을 내고, 비난 대신 대화의 물꼬를 터트린다.

갈등과 분열의 골이 날로 깊어가는 요즘이다.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고 상대의 신발에 발을 넣어 보는 것, 그 작은 노력이 타인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성숙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위대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허령 (전)울산광역시의회 부의장

허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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