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울트라 시리즈3를 탑재한 9개 제조사 30여개 AI PC 노트북 [사진: 석대건 기자]
[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글로벌 IT 기기 시장에 '가격은 오르고 사양은 떨어지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이 본격화하고 있다. 스마트폰, 노트북, 콘솔, 데스크톱까지 전방위적이다.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가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로 사업을 재편하면서 범용 메모리 공급이 줄어든 탓이다. 가격 결정력을 쥔 메모리 업계는 슈퍼사이클을 이어가는 반면, 세트업체는 마진 압박을 소비자 가격 인상과 사양 축소로 전가하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슈링크플레이션의 근본적인 원인은 메모리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있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는 AI 데이터센터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에 맞춰 사업을 조정해왔다. 그 결과 디램과 낸드플래시 등 범용 메모리 공급이 줄어들면서 RAM 가격은 향후 2년 이상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스마트폰에서 변화가 가장 먼저 나타나고 있다. 폰아레나(PhoneArena)에 따르면 구글 차세대 폴더블폰 '픽셀 11 Pro Fold'는 RAM이 이전 모델 16GB에서 12GB로 4GB 줄어들 수 있다. 픽셀 11 계열은 온도계 기능도 사라지고 작은 RGB LED 배열로 대체될 것으로 알려졌다.
모토로라 폴더블폰 'Razr' 2026년형은 가격이 700달러에서 800달러로 100달러 오르는 동시에 기본 저장공간이 256GB에서 128GB로 절반으로 줄어든다. 모토로라 Razr+는 2026년형도 2025년 모델과 같은 퀄컴 스냅드래곤 8S Gen 3 칩을 그대로 쓰면서 2배 망원 렌즈를 5000만 화소 초광각 카메라로 대체했다.
노트북과 PC 부품도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 노트북 제조사 프레임워크(Framework)는 최근 몇 달간 RAM 모듈 가격을 반복적으로 인상했다. 신형 '프레임워크 13 Pro'는 LPDDR5X RAM과 M.2 SSD 가격 상승의 직격탄을 맞았고, '프레임워크 노트북 16'에 들어가는 엔비디아 RTX 5070 모바일 GPU의 12GB VRAM 모듈은 1200달러로 8GB 모듈보다 500달러나 비싸다. 대만 PC 부품 제조사 ASRock은 D램 제조사들과 함께 일반 DDR5 메모리 대비 대역폭과 밀도가 절반 수준인 저가형 'DUDIMM DDR5' 모듈을 개발해 인텔 600·700·800 시리즈 칩셋과 함께 공급할 예정이다.
콘솔과 휴대용 게임기에서도 같은 흐름이다. 소니는 지난해 10월 플레이스테이션5 슬림 모델의 시스템 저장공간을 1TB에서 825GB로 175GB 줄였다. 레트로 휴대용 게임기 제조사 AYN은 지난달 듀얼스크린 휴대용 기기 'AYN Thor'의 저장장치를 UFS 4.0에서 읽기·쓰기 속도가 훨씬 낮은 UFS 3.1 표준으로 낮췄다고 밝혔다. AYN은 이후 16GB RAM 옵션을 추가하면서 최대 1TB 저장공간 구성 가격을 550달러로 올렸다.
메모리값 폭등 현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애플에는 오히려 이득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진: Reve AI]
◆메모리 3사 협상력 강화…DDR6 양산까지 슈링크플레이션 지속
애플도 예외가 아니다. 애플은 지난주 256GB 저장공간 사양의 2024년형 보급형 맥미니 600달러 모델을 조용히 단종시켰다. 현재 애플 소형 데스크톱은 800달러부터 시작하며 512GB 버전을 선택해야 한다. 최근 실적 발표에서 퇴임 예정인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여러 맥 모델"에 영향을 주는 칩 부족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네트워크 장비 업체 유비쿼티(Ubiquiti)는 결제 단계에서 5유로의 '메모리 서차지(memory surcharge)'를 별도로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 구도에서 메모리 3사의 가격 결정력은 강화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향 HBM은 단기 고가 수요를, 애플 같은 대형 고객은 장기 안정 수요를 제공하면서 양쪽 모두 메모리 3사에 유리한 협상 환경을 만들고 있다. 반대로 세트업체들은 마진 압박 속에서 가격 인상과 사양 축소를 동시에 진행하며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업계는 차세대 RAM 표준인 DDR6 본격 양산 전까지 이 구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사이 글로벌 IT 기기 소비자는 더 비싸지고 더 나빠진 제품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둔화되지 않는 한 범용 메모리 공급 부족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며 "차세대 표준 전환기까지는 소비자 가전 시장 전반에서 가격 대비 사양 저하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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