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 유치로 HBM 경쟁력 강화
최태원 회장 강조한 'AI 병목 문제' 해결 추진
밸류업 기대 속 주주가치 희석 논란도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사진=연합뉴스
[포인트데일리 권상희 기자] SK하이닉스가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하면서 인공지능(AI) 반도체 경쟁이 기술을 넘어 자본시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AI 인프라 전반의 병목해소를 강조해온 가운데, 글로벌 자금을 직접 끌어들이는 이번 행보가 투자 확대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SK하이닉스가 기업가치 재평가와 함께 AI 메모리 주도권 경쟁에서도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위한 등록신청서(Form F-1)를 비공개 제출했다. 회사는 올해 연내 상장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으나 공모 규모와 방식, 일정 등 세부사항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종 상장 여부는 SEC 심사와 시장 상황, 수요예측 등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다.
ADR은 외국 기업이 미국 증시에서 자사 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발행하는 증권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이 달러로 직접 투자할 수 있는 통로다. 업계에서는 이번 상장이 단순한 자본시장 진출을 넘어, AI 반도체 투자 확대를 위한 실탄 확보의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AI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밸류에이션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자본을 직접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평가다.
최근 AI 수요 급증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한 메모리 시장에서는 슈퍼사이클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기업 간 설비 투자 경쟁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번 상장 역시 이와 같은 시장 상황이 반영된 결정으로 해석된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25일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열린 제78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100조 실탄 확보…AI 메모리 투자 속도전
SK하이닉스는 이날 주주총회에서도 공격적인 투자 기조를 재확인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투자를 집행할 수 있도록 순현금 100조원을 확보해 글로벌 AI 메모리 주도권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SK하이닉스의 재무 건전성은 개선됐지만, AI 기술을 주도하고 메모리 수요를 견인하는 글로벌 탑 기업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라며 "구조적 수요 성장을 지원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무건전성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 시장 확대에 따라 HBM 수요가 폭증하면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ADR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이 HBM 생산능력 확대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등에 집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 상장을 통해 글로벌 투자자 기반을 확보할 경우, 대규모 설비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보다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반도체 산업은 매우 자본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밸류업 기대…"주식도 수출" vs 주주가치 희석
시장에서는 이번 ADR 추진이 기업가치 재평가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 상장을 통해 글로벌 투자자 유입이 확대되면, 국내 증시 대비 낮게 평가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완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시장을 통해 높은 밸류에이션을 인정받고 있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이제 주식도 수출하는 단계"라며 "ADR 상장은 고밸류 시장 진입에 따른 리레이팅 효과뿐 아니라, 발행 과정에서 자사주 매입이 병행될 경우 수급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우려도 적지 않다. 신주 발행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기존 주주 지분 희석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날 논평을 통해 "ADR 발행은 찬성하지만 잉여현금흐름이 넘치는데 기존 주주 입장에서 지분이 희석되는 신주 발행 방식은 반대한다"며 자사주 활용 방식 등을 제안했다. 포럼이 추산한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말 현금 보유 규모는 약 35조원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 경쟁이 기술력을 넘어 자본 경쟁으로 확대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글로벌 투자 유치에 성공할 경우 기업가치 재평가와 함께 시장 판도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