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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HYUNDAI 탈환 전쟁①] 왜 현대 상표는 '美 테크놀로지'로 넘어갔나

◆ 반도체 2위 영광 덮친 '왕자의 난'⋯공중분해된 IT 상표권 현대의 전자부문 상표권 역사는 지난 1983년... 당시 고(故) 정주영 회장은 중화학 공업 중심의 그룹 체질을 첨단 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반도체 진출을...

[HYUNDAI 탈환 전쟁①] 왜 현대 상표는 '美 테크놀로지'로 넘어갔나

2000년 현대그룹 ‘왕자의 난’ 이후 계열분리 과정에서 정리되지 못한 ‘HYUNDAI’ 상표권 문제가 미국 법원의 배심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현대그룹의 ‘적통’으로 평가받는 현대자동차는 이 명칭의 사용 권리를 완전히 탈환하기 위해 소송에 나섰으나, 피고의 저항에 부딪히며 한 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번 재판에서 국내 외로 흩어진 ‘HYUNDAI’ 상표의 최종 권리자가 가려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편집자주]

현대차·기아 한국 본사. 사진=현대차그룹

[서울와이어=정윤식 기자] 2000년대 현대전자 구조조정의 여파로 쪼개진 전자기기 상표권이 현대이미지퀘스트, 현대아이비티 등을 거쳐 미국 현지 기업인 현대테크놀로지의 손에 들어갔다. 과거 현대코퍼레이션이 내준 파격적인 라이선스 계약이 IT 브랜드 통제권을 외부로 넘겨준 결과가 된 것이다. 국내에서는 본가가 브랜드의 저명성을 근거로 방어에 성공했으나, 미국과 유럽 법정에서는 과거 계약의 효력을 인정하는 상반된 판단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현대자동차는 유럽 지식재산권청(EUIPO) 항소를 취하하며, 유럽 내 일부 전자기기 상표 출원을 포기해야만 했다. 미국 역시 현대테크놀로지가 과거 계약을 앞세워 권리를 주장하며 소송을 이어가고 있어 범현대가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에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 뼈를 깎는 생존을 위해 선택했던 과거의 자산 유동화가 오늘날 해외 시장에서 '현대' 브랜드의 발목을 잡는 결과로 되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  반도체 2위 영광 덮친 '왕자의 난'⋯공중분해된 IT 상표권

범현대가 'HYUNDAI' IT 상표권 분쟁 타임라인

현대의 전자부문 상표권 역사는 지난 1983년 2월 현대전자산업(現 SK하이닉스, 이하 현대전자)의 설립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고(故) 정주영 회장은 중화학 공업 중심의 그룹 체질을 첨단 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반도체 진출을 전격 선언했다. 이는 단순한 계열사 확장을 넘어, 미래 핵심 산업인 IT 및 반도체 분야에서 ‘현대’라는 브랜드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전문 기지를 구축했다는 의미를 가졌다.

이후 1985년 7월 현대전자는 IT 및 전자기기를 포함한 제9류 분야에서 ‘HYUNDAI’ 상표권 출원을 통해 독자적 권리 확보에 나섰다. 당시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건설 등 주요 사업별로 상표권을 분산 관리하는 구조를 취했다. 특히 전자 부문만큼은 현대전자가 실질적인 소유주이자 운영 주체로서 지위를 공고히 했다.

현대전자는 반도체와 PC, 모니터 사업에서 파격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1990년대 글로벌 IT 시장의 주역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1999년 LG반도체를 흡수합병하는 ‘빅딜’을 통해 단숨에 세계 2위의 D램 생산 업체로 도약했다. 이를 통해 그룹 내 핵심 캐시카우이자 글로벌 전자기기 시장을 호령하는 거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현대’ 브랜드를 고성능 IT 기기의 상징으로 각인시켰다.

하지만 무리한 덩치 키우기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LG반도체 인수에 2조5600억원이라는 거액을 쏟아부으면서 전체 부채 규모 16조원이라는 재무적 과부하 상태에 빠진 것이다. 여기에 2000년 정몽구·정몽헌 형제가 주축이 된 ‘왕자의 난’ 여파로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HD현대)이 계열 분리되자, 그룹 차원의 자금 지원이 단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180%가 넘는 부채비율과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현대전자는 모니터 사업부인 ‘현대이미지퀘스트‘를 필두로 ‘카일렉트로닉스(현대오토넷)‘, ‘통신시스템(현대시스콤)‘ 등을 잇달아 분사시켰다.

결국 2001년 3월 현대전자는 사명을 ‘하이닉스반도체’로 변경하고, 현대 브랜드와의 단절을 선언했다. 또한 같은해 8월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돼, 채권단 공동관리 체제에 돌입했다. 결국 2012년 2월 SK그룹에 최종 인수된 시점부터는 과거 모든 사업적 유산이 SK의 정체성으로 재편됐다. 이 과정에서 분산된 IT 상표권은 이후 범현대가와 분사된 기업들 간의 법적 분쟁을 야기하는 핵심 원인이 됐다.

이중 현대큐리텔은 팬택에 인수되기 전 현대자동차와 브랜드 사용료 및 기한에 합의하며 정면 충돌을 피했다. 현대오토넷도 현대모비스에 흡수합병되면서 상표권 등의 모든 권리 관계가 본가인 현대차그룹으로 귀속됐다.

문제는 ‘이미지퀘스트(2001년 3월 사명변경)‘였다. 이미지퀘스트는 현대멀티캡과 IT 브랜드 사용권 다툼 끝에 2002년 1월 상표권 침해 소송을 냈고, 그 해 5월 법원으로부터 정당한 대가를 치른 적법한 권리자임을 인정받았다.

◆ '상표권 확장' 노린 현대아이비티⋯法 "본가 신용승계 안 돼"

현대바이오사이언스 전경(사진=현대바이오사이언스)

이미지퀘스트는 2003년 10월 가이거계산기와 광디스크 등을 시작으로 IT 기기 전반에 대한 상표권 확장 등록을 시도했다. 또한 2004년 3월 ‘현대이미지퀘스트‘로 사명을 환원한 데 이어, 2006년 3월 ‘현대아이티(HYUNDAI IT)‘로 변경했다. 또한 2008년 9월에는 개인용 컴퓨터와 프린터 등 핵심 IT 사무기기까지 지정상품 범위를 넓혔다. 이후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은 2010년 7월 이미지퀘스트를 상대로 상표 등록무효 심판을 청구하며 대응에 나섰다.

2012년 3월 현대아이티는 사명을 현대아이비티(HYUNDAI IBT)로 변경하고, '바이오 화장품 및 양모제 제조·판매업'을 목적 사업에 추가했다. 이와 동시에 최대주주였던 투자회사 엘리파트너스가 지분을 매각하고, 씨앤팜이 새로운 최대주주로 등극하며 바이오 사업을 위한 체질 개선을 단행했다. 이듬해 10월 개최된 임시주주총회에서는 오상기 변호사가 사내이사로 선임됨과 동시에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2015년 1월 대법원이 개인용 컴퓨터와 프린터 등에 대한 상표권 추가 등록 무효를 확정함에 따라 현대아이비티는 기존에 추진하던 사업 확장의 법적 근거를 상실하게 됐다. 재판부는 현대이미지퀘스트가 하이닉스 분사 과정에서 현대 명칭이 없는 상호로 변경한 전력(이미지퀘스트)이 있어 브랜드 신용을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세부적으로 대법원은 범현대가 계열사들이 자동차와 조선 등의 분야를 선도하며, 현대 브랜드의 신용을 실질적으로 승계한 주체라고 판시했다. 반면 현대아이비티는 하이닉스 분사 이후 본가와 경제적·조직적으로 아무런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아 브랜드의 정당한 권리자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이들이 추진한 IT 관련 상표권 확장이 일반 수요자에게 출처의 혼동을 일으킬 염려가 크다고 밝혔다.

◆ '전권 이양' 라이선스 계약 대참사⋯엇갈리는 국내외 탈환전

사진=현대코퍼레이션, 현대아이비티 라이선스 계약서 발췌

2015년 HD현대에서 분리한 현대코퍼레이션에서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계열 분리 직후인 2016년 1월 정몽혁 현대코퍼레이션 회장이 오상기 현대아이비티 대표와 미국 내 ‘현대(HYUNDAI)’ 상표권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는 표면적으로 IT 품목에 한정된 사용권 부여 형태를 취했다. 하지만 실상은 ▲제3자에 대한 무제한 재하청(Sub-license) 권한과 ▲독점적 상표 침해 소송권까지 포함된 ‘전권 이양’으로 풀이된다.

이후 2018년 현대아이비티는 현대바이오사이언스로 사명을 변경하며 바이오 전문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당시 오상기 대표는 "현대아이비티는 전신이 IT 회사이나 2012년 인수 때부터 표적항암제를 목표로 한 바이오 사업을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바이오 사업을 하려면 많은 자금과 시간이 소요돼 일단 수익을 낼 수 있는 화장품 사업을 했고, 이제 준비가 됐다고 판단해 원래 목표인 바이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현대바이오사이언스는 2018년 기준 약 318억원의 매출과 약 15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안정된 실적을 바탕으로 최대주주인 씨앤팜으로부터 비타브리드C 관련 특허권 등을 양수하며 신약 개발 사업을 위한 뼈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따라서 바이오 사업 전환 과정에서 과거의 IT 자산들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았다.

이 과정에서 현대바이오사이언스는 2017년 설립된 미국 푸에르토리코 소재의 현대테크놀로지(Hyundai Technology, Inc.)를 대상으로 ‘현대(HYUNDAI)’ 상표권과 그에 부수되는 영업권(Goodwill) 일체를 이전했다. 2019년 작성된 계약서에 따르면 양도 대상은 데스크톱·노트북·태블릿 컴퓨터를 비롯해 모니터, SSD, DRAM 등 IT 및 컴퓨터 주변기기 전반을 포괄하고 있다. 계약 효력에는 과거와 현재 및 미래의 상표권 침해에 대한 독점적 소송권과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포함됐다.

이후 2020년 시작된 범현대가와 美 현대테크놀로지의 상표권 분쟁은 현재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커넥트’와 ‘물방울 현대’ 상표 관련 소송에서 HD현대가 승소했다. 여기에 2025년 5월 28일 특허심판원이 현대테크놀로지가 국내에 보유하고 있던 'HYUNDAI' 전자기기 상표에 최종 무효 결정을 내렸다.

반면 미국에서는 과거 계약을 근거로 현대테크놀로지가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며, HD현대·현대차가 상표 무효와 사용 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지속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현대 상표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2021년 12월 20일 유럽 지식재산권청(EUIPO) 취소심판부는 HD현대 측이 제기한 말소 청구를 일부 받아들였다. 개인용 컴퓨터 지정상품은 취소됐지만 컴퓨터 모니터 관련 상표권은 현대테크놀로지에 남겼다. 또한 2025년 2월 5일에는 현대테크놀로지가 보유한 선등록 상표를 근거로 현대자동차의 추가 출원 일부가 거절됐다. 같은 해 4월 7일 제기된 항소도 6월 4일 철회되면서 현대테크놀로지의 기존 권리가 재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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