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택 전 카카오 대표, 방아잎 술 제조
18개월 간 7평 작업실서 치열하게 치른 양조 탐험기
수양하듯 빚으며 얻은 인생의 맛
‘술을 출시하겠다며 책 속에 자신이 개발한 레시피와 제조 공정을 모두 공개하다니 미친 것 아닌가’. 『술 이름은 코리안 민트』를 처음 받아 들었을 때 든 생각이었다. 책의 부제는 ‘카카오 전 대표의 열렬한 양조 탐험기’. 네이버와 카카오 전 대표를 거친 홍은택 전 대표는 IT계의 첨병이 되는 미디어 대표를 마다하고, 어쩌다 15세기 ‘태종실록’ 속에서 찾은 ‘과하주’라는 술을 빚기로 마음 먹었을까.
『술 이름은 코리안민트』커버
“위태위태하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의 파도로 옮겨 탔고 인터넷에 이어 스마트폰 시대까지 어찌 어찌해서 물결을 잘 타고 넘어오긴 했는데 아뿔싸, 이제 블랙홀 같은 AI 시대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렇게 변화의 물결만 좇다가 평생을 좇고만 사는 건 아닐까.”(-p4)
잘 나가던 정치부 기자로 일하다 마흔을 넘겨 신문사를 관두고 떠난 유학길에서 석사를 딴 뒤 미 대륙을 무려 자전거로 횡단하고 라디오 PD, 교수와 번역가 등을 거쳐 중국 대륙을 자전거로 달렸던 작가는 네이버에선 ‘네이버캐스트’라는 역사적인 서비스를 만들고, 다시 옮긴 카카오에선 ‘카카오페이지’를 만든다.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따라 모험하듯 갈아탄 그의 과거 행보와 술의 양조과정은 놀라우리만치 닮아 있다.
국내 최대 IT 플랫폼 기업의 선두에 있던 그가 전통주 사업가로 변신한 이유는 바로 손보다 근육을 쓰고 싶어서였다. 2024년 3월 카카오 대표직을 내려놓은 그는 “개 뒷발 수준으로 손재주가 없었다”고 자신을 설명하며 내 손으로 뭔가 만들고 싶다는 창조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근육의 움직임으로 할 수 있는 ‘양조’를 택한다. 그리하여 만들어낸 것이 방아잎 과하주 ‘코리안 민트(Koran Mint).
홍은택 전 대표가 빚어낸 방아잎 과하주 ‘코리안 민트’. 방아잎의 영문명이다.
“양조는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다. 그 결과물은 시각과 촉각뿐 아니라 후각, 미각을 자극하고 소비하면(마시면) 몸에 즉각적인 효과(취기)를 미친다. 심지어 기분까지 좋아지니 이보다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며 공감각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5p)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발효주에 증류주를 섞어 만드는 ‘과하주(過夏酒)’는 조선 최고 명주였지만 일제 강점기에 명맥이 끊긴 술로, 포르투갈이 와인을 영국으로 보낼 때 변질을 막기 위해 만든 포트와인과 주정 강화 방식의 원조를 다툴 정도로 유래가 깊다.
전통주 소믈리에와 우리 술 제조 관리사 1급 자격증을 딴 그가 개발한 ‘코리안 민트’는 궁중 술 빚기 대회에서 특별상을 받고 사람들로부터 별 다섯 개를 얻어낸다. 노트북만 들여다볼 것 같은 이 남자가 만들어낸 술이 업계에서 엄청난 평가를 받은 이유는 1년 반 동안 7평 북향 방에서 100여 종의 술을 빚었던 책 속 모험담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대표를 거친 홍은택 대표가 술 책을 펴냈다.
쌀을 100번 씻고, 종일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을 닦는 지난한 과정을 읽고 있자면 한숨이 푹 나오다가도, 본문 곳곳에서 각종 실패담을 읽으면서는 껄껄 웃게 된다. 술은 ‘담근다’고 하지 않고 ‘빚는다’고 표현하는데, 도중에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100여 종의 술을 빚으며 가장 많이 그의 술을 마신 것은 ‘싱크대’. 실패하면 모두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맛있어요!”라는 말 뒤로 붙는 지인들의 미묘한 뉘앙스를 간파하며 점점 술 맛을 다듬었다는 부분에선 ‘피식’ 웃게 된다. 발효 과정에서 고체가 액체가 되고, 곡물로 빚었지만 과일 향이 될 수도 있는 양조 과정은 신비하기 그지 없다.
‘어떤 것도 완전한 실패는 없다’던 카카오 대표 시절 교훈을 다시 소환한 것도 이 지난한 양조 과정 속에서였다. “이 길이 아닌가 싶다면 다른 길을 가면 되고, 어떤 일을 하든 3번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런 그가 양조 작업실을 얻어 느꼈던 소중한 행복감에 대한 부분은 작가의 가치관을 짐작케 한다.
『술 이름은 코리안 민트』 북토크 현장
‘작업실 바깥에는 여전히 불안한 일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 손에 내 운명이 달린 시간 같은 것. 하지만 작업실에 들어오면 안온했다. 바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 작은 공간에서는 크게 음악을 틀고 치대고 주무르고 뭉치고 젓고 비틀고 쥐어짜고 펴고 오므리고 집고 깎고 담고 흔들고 씻고 닦고 문지르고 빻고 돌리고 재고 널고 털고 밀고 당기고 올리고 내리고 들고 나를 뿐이다. 사서 하는 고생이지만 자유롭다.’(p141)
양조 관련 용어뿐 아니라 여우취, 맥주 순수령, 전설의 약주 샤르트뢰 등 다양한 양조 과정에 대한 내용도 다양하게 실려 있다. 양조를 꿈꾸는 초보자들에겐 좋은 연구 일지가 된다. 책장을 덮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미지 제공 브.레드
다들 감추려는 자신의 술 레시피를 구체적으로 공개한 이유는 같은 제조법이라도 빚는 사람, 공간, 양조하는 날의 온도와 효모 조건에 따라 술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감압 펌프, 삼각 플라스크, 규조토 등을 가지고 장비를 조립해 여과까지 마치는 양조의 최종 과정을 혼자 해낸 후의 자부심은 독자까지 뿌듯하게 만든다.
술 빚는 과정은 온라인과는 달리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남긴다. 책장을 빠르게 넘기면 움직임이 되살아나는 ‘플립북’ 형태로 쌀알이 서로 만나는 듯한 그림이 쪽 번호 자리에 그려져 있다. 술이 익어가듯 책 속 시작 페이지의 색이 진해지고, 제목의 위치도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이제 기대하게 된다. 그의 말처럼 언젠가는 미슐랭 2스타를 받은 뉴욕 한식당에서 마주할 코리안 민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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