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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AI시대, 길을 묻다-달라지는 산업지도] 실을 잣던 대구, 데이터를 잣는 도시로

지난 30년, 대구는 대한민국의 산업 지형이 통째로 바뀌는 것을 지켜봤다. 섬유에서 전자로, 전자에서 IT로. 그때마다 이 도시는 조금씩 뒤처졌고, 3대 도시였던 위상은 5대 도시 언저리로 밀려났다.

지난 30년, 대구는 대한민국의 산업 지형이 통째로 바뀌는 것을 지켜봤다. 섬유에서 전자로, 전자에서 IT로. 그때마다 이 도시는 조금씩 뒤처졌고, 3대 도시였던 위상은 5대 도시 언저리로 밀려났다. 대구신문은 그 30년을 곁에서 지켜보며 조언을 보탰지만, 쇠퇴의 흐름을 완전히 되돌리지는 못했다. 이제 AI라는 또 한 번의 전환점 앞에서, 이 도시가 같은 실수를 반복할지 다른 길을 찾을지 지켜볼 시점이다.

지난해, 사람들은 처음으로 AI에게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문서 요약과 이메일 작성을 부탁했다. 생성형 AI가 낯선 도구에서 익숙한 습관으로 바뀐 해였다. 올해 그 습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은 2026년을 AI가 산업 전반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는 전환점으로 지목했다. ‘도입’, ‘확산’, ‘인프라’, ‘에이전트’ - 이 몇 단어가 지금 세계가 AI를 이야기하는 방식을 요약한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에이전트 AI다. AI는 이제 질문에 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문서를 처리하고 고객을 응대하며 업무를 이어간다. 은행 창구에서, 병원 접수처에서, 공장 관제실에서 사람과 AI가 뒤섞인 일터가 늘어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피지컬 AI다. 화면 안에 갇혀 있던 AI가 로봇의 몸을 빌려 현실로 걸어 나오는 단계다. 기존 로봇과 달리 스스로 인식하고 배우며 판단하며, 가정에서는 고령자를 돌보고 공장·재난 현장에서는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간다. 4차 산업혁명이 구호에 머물렀다면, 피지컬 AI는 그 구호가 마침내 몸을 얻는 순간이다. 정부도 올 초 인공지능 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피지컬 AI 세계 1위를 목표로 내걸었다.

그러나 이 낙관의 이면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올여름 미국에서는 짓겠다고 선언한 데이터센터의 절반 가까이가 착공도 못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픈AI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조차 텍사스에서 전기와 물을 구하지 못해 발이 묶였다. 반도체는 마련해도 돌릴 전기가 없다는 것이다. 마치 최신 미싱을 사들이고도 배선을 놓지 못한 꼴이다.

이 전환의 뒤편에서는 조용한 힘겨루기도 벌어진다. 누가 더 좋은AI 칩을 만드느냐, 그 칩을 돌릴 전기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이 싸움이 다음 세대의 산업 지도를 결정한다.

대한민국 산업지형 급격한 변화 속

쇠퇴 흐름서 벗어나지 못한 대구

AI로 또 다시 찾아온 산업전환기

‘데이터’로 새로운 기회 잡기 나서

이 물결은 국가 간의 경쟁이자, 도시 간의 경쟁이다. 지방일수록 변화에 올라타느냐 마느냐가 흥망을 가른다. 그리고 지금, 대구가 그 물결 한복판에서 자신의 오래된 손끝의 기억을 데이터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대구가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골목 하나에서부터 들여다볼 만하다.

대구 서문시장 뒷골목의 봉제공장은 한때 숙련공의 손끝이 눈보다 먼저 원단을 읽던 곳이었다. 새벽 여섯 시, 밤새 돌아간 미싱대 위로 먼지가 앉고 실밥이 흩날린다. 손목이 꺾이는 각도, 실이 팽팽해지는 순간의 저항감-그 감각은 도제식으로만 전수되었다.

1970~80년대 대구는 ‘동양의 맨체스터’라 불릴 만큼 방직공장 굴뚝이 즐비했다. 섬유 수출의 상당 부분이 이 도시를 거쳐 세계로 나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값싼 노동력에 밀려 섬유산업은 저물었고, 기술을 물려받을 청년도 드물어졌다. 지금의 30~40대에게는 낯선 풍경일 것이다. 부모 세대가 겪은 일이거나, 이야기로만 전해 들은 세계일 테니까. 그러나 그 손끝의 기억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되살아나는지는, 지켜볼 만하다.

지금 그 골목에서 멀지 않은 곳,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안에 ‘AI봉제자율제조센터’라는 새 작업대가 들어섰다. 로봇 팔이 원단을 재단하고, 숙련공의 손동작은 데이터로 축적돼 AI가 학습한다. 158억 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자동화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숙련 기술을 데이터로라도 붙잡아 물려주려는 시도다. 실 잣던 손이 데이터 잣는 손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대구는 곳곳에서 같은 전환을 겪고 있다. 대구시는 모빌리티 부품산업에도 ‘제조 AI 확산센터’를 세운다. 내연기관 부품 의존 기업들이 전동화·자율주행 부품으로 옮겨가도록 돕는 사업이다. 초기 투자 부담을 줄여준다는 발상은 합리적이지만, 인프라를 활용할 역량을 기업이 얼마나 빨리 갖추느냐가 관건이다.

여기에 에이전트 AI, 피지컬 AI, 블록체인을 3대 분야로 정한 산·학·연 협의체가 반도체·로봇·모빌리티에 AI를 접목할 과제를 발굴 중이다. 대구시는 스스로를 ‘AI 로봇 수도’라 부르기 시작했다. 전통 제조업에서 벗어나려는, 어쩌면 절박한 몸부림이다.

최근 대구시는 여기에 손발을 더 붙였다. 8개 도심 산단의 업종 규제를 내년 1월부터 전면 풀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제조업체는 IT 업종 등록이, 드론·관제시스템 업체는 공장 등록이 안 됐다. 업종 칸막이가 산업 융합의 발목을 잡던 셈이다. 이제 봉제공장 옆에 소프트웨어 회사가, 부품공장 옆에 로봇 스타트 업이 들어설 길이 열린다.

이 지면에서 K2 부지와 군위 신공항을 잇는 헬스케어 AI 벨트를 제안한 적이 있다. 대구 상급종합병원들의 임상 데이터를 묶어 아시아 헬스 데이터 허브를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난 7월, 대구시는 5대 상급종합병원과 케이메디 허브 등 14개 기관과 ‘의료데이터 활용 활성화 협약’을 맺었다. 25만여 건의 의료데이터를 한 포털에서 조회할 수 있게 된다. 예견이 정책이 되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흔치 않은 보람이다.

AI봉제자율센터·제조AI확산센터

지역 산업현장 인공지능 전환 속도

내년 8개 산단 업종규제 전면 완화

산업 융합 발목잡던 칸막이 해소

그러나 대구가 이 지도 그리기에서 늘 원하는 자리를 얻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AI 메가 프로젝트에서 반도체 생산 거점은 호남에, 패키징은 충청에 돌아갔다. 대구·경북엔 AI 데이터센터와 ‘제조업 AI 전환’ 역할만 주어졌다. 지역 상공계가 재검토를 촉구했지만, 대구시는 신공항 연계 반도체 산단을 별도로 요청하며 자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큰 상은 놓쳤지만, 이미 쥔 패로 다른 판을 짜보겠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봉제와 부품과 의료, 이 셋은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실은 한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숙련공의 손목이 기억하던 감각도, 부품업체 사장이 다뤄온 금형의 요령도, 병원 서랍에 잠들어 있던 환자의 기록도-대구가 가진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오래된 경험이었다. AI를 남보다 먼저 만들어 내는 도시는 못 되어도, 자신의 시간을 남보다 잘 짜내는 도시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환이 모두에게 축복인 것은 아니다. 봉제 공장에서 삼십 년 넘게 일해온 어느 숙련공은 최근 자신의 손동작을 촬영하는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AI가 학습할 데이터가 되기 위해서였다. 평생 몸에 새긴 기술이 숫자로 환산되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부품업체 사장들도 제조 AI 확산센터 소식에 반가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초기 투자 부담은 줄여준다지만, 새 설비와 데이터를 다룰 인력은 결국 자신들이 갖춰야 한다.

대구, 20대 순유출 전국 상위권

청년인재 정착 중심 정책 수립

데이터센터 증가 대응 전력망 확충

차근 차근 미래산업시대 준비해야

대구는 오랫동안 20대 청년 순유출 전국 상위권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인재가 계속 떠나는 도시에서 AI 대전환이 뿌리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청년을 붙잡아 둘 이유를 만드는 일이 정책의 밑동이 되어야 한다. 전력도 함께 챙겨야 할 몫이다. 데이터센터가 늘수록 전기 수요도 불어나는데, 전국 전력망이 그 속도를 못 따라가는 지금, 청사진이 변전소 하나에 걸려 늦춰지지 않도록 미리 챙겨야 한다.

십 년 뒤 대구의 아침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홀로 사는 노인의 방에서는 밤새 돌봄 로봇이 걸음걸이의 변화를 살피고, 성서공단의 부품공장에서는 AI가 불량을 미리 걸러내며, 대학병원에서는 흩어진 기록이 한데 모여 환자에게 꼭 맞는 치료법을 찾아줄지 모른다. 거창한 구호로는 잘 그려지지 않던 미래가, 이런 작은 장면들 속에서는 오히려 또렷해진다.

변화에 먼저 올라탄 도시가 앞서고 망설인 도시는 뒤처진다. 대구는 섬유의 전성기 이후 방향을 잃었고, 반도체 흐름에도 늦었으며, 이번 메가 프로젝트에서도 자리를 놓쳤다. 절박함이 조급함으로 흘러 껍데기만 남지 않도록, 갈림에 선 대구는 규제는 풀되 인력은 미리 기르고, 청사진은 그리되 전기는 미리 챙겨야 한다.

대구신문이 창간한 지 서른 해가 되었다. 그 서른 해 동안, 신문은 대구의 서른 해를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받아 적었다. 방직공장의 굴뚝이 꺼지던 날도, 청년이 짐을 싸 서울행 기차를 타던 날도, 지금 이 도시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 애쓰는 순간까지도. 신문의 서른 해는 지면이 쌓여온 시간이었고, 도시의 서른 해는 손이 바뀌어 온 시간이었다. 실을 잣던 손에서 데이터를 잣는 손으로, 활자를 짜던 손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짜야 할 손으로.

두 개의 서른 해가 나란히 여기까지 왔다. 다음 서른 해도 그럴 것이다. 이 도시가 무엇을 잣든, 대구신문은 그 곁에서 그것을 기록할 것이다.

김종갑 대신대학교 교양학과 특임교수·(인천)재능대학교 유통상품기획과 특임교수·출판사 ‘오후의 글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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