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발표회서 생애·사상·학문적 지향 재조명
성균관유도회 경북본부·문경지부 공동 주최·주관
근암서원 연계 전시·강좌·답사로 확장 가능성
▲ 문경시가 8월 28일 문경문화원 다목적실에서 개최한 ‘식산 이만부 선생의 생애와 학문’ 학술발표회에서 지역 유림과 시민들이 발표를 경청하며 식산 이만부 선생의 학문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시간을 갖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 후기 학자 식산 이만부(1664~1732)의 학문 세계가 3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문경에서 다시 조명됐다. 단순히 지역과 인연을 맺은 옛 학자를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시와 편지에 담긴 생각을 오늘의 시각으로 읽어내면서 문경의 유교문화 자산을 새로운 인문 콘텐츠로 확장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문경시는 지난 28일 문경문화원 다목적실에서 ‘식산 이만부 선생의 생애와 학문’을 주제로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성균관유도회 경상북도본부와 문경지부가 공동 주최·주관했으며 지역 유림과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이만부의 방대한 학문 가운데 문학과 서간에 초점을 맞췄다. 이규필 경북대학교 부교수는 ‘식산 이만부의 시 세계’를 발표했고, 황만기 국립경국대학교 교수는 ‘식산 이만부의 편지글에 나타난 학문 고찰’을 주제로 그의 사상과 학문적 지향을 살폈다.
특히 개인적 기록으로 여겨지기 쉬운 시와 편지를 학문 연구의 자료로 끌어내면서 이만부가 어떤 시대 인식을 갖고 살았으며 학문과 삶을 어떻게 연결하려 했는지를 입체적으로 살피는 데 무게가 실렸다.
이만부는 본관이 연안이며 자는 중서, 호는 식산이다. 어려서 가학으로 학문을 익혔고 정주학에 깊이 천착했다. 서울에서 생활하다 영남으로 이주한 뒤 후학 양성과 저술에 힘썼다. 1729년 학행으로 장릉참봉과 빙고별제에 임명됐지만 모두 사퇴했다. 『식산문집』을 비롯해 『역통』, 『대상편람』, 『사서강목』, 『도동편』 등 여러 저술을 남겼다.
그의 학문은 관념에 머무르기보다 실제 삶에서 학문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아 왔다. 일상의 실천과 진실한 마음을 중시한 학문 태도 때문에 후대 연구에서는 ‘실심실학’의 관점에서 그의 사상을 해석하기도 한다.
문경과 이만부를 잇는 공간은 산북면 서중리의 근암서원이다. 문경지역 최초의 서원인 근암서원에는 홍언충·이덕형·김홍민·홍여하·이구·이만부·권상일 등 7현이 배향돼 있다. 1544년 근암서당으로 시작해 1669년 서원으로 승격됐으며,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다가 지역 유림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복원됐다.
이번 발표회가 갖는 의미는 지역의 역사적 인물을 학술연구의 대상으로 다시 불러냈다는 데 있다. 근암서원이라는 공간과 배향 인물, 남겨진 문헌을 서로 연결한다면 지역사 교육은 물론 인문학 강좌, 전시, 답사 프로그램 같은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킬 여지가 있다.
결국 학술발표회의 성과를 일회성 행사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다음 과제다. 이만부를 비롯한 근암서원 7현에 대한 연구 성과를 시민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풀어내고, 지역의 유교문화 유산과 연계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지역 역사 자산의 현재적 가치도 높아질 수 있다.
이재업 성균관유도회 경상북도본부장은 “이번 학술발표회가 식산 이만부 선생의 학술적 위상을 높이고 지역 문화 자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뜻깊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학홍 문경시장은 “식산 이만부 선생의 학문적 가치와 유교문화의 전통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지역의 소중한 역사·문화 자산을 계승하고 널리 알리는 데 유림과 시민이 함께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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