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주년 광복절인 15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고려인마을에서 열린 봉오동전투 재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물총을 이용해 전투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판영석 기자
이역만리를 떠돌아야 했던 고려인 선조들의 숭고한 항일 정신이 106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시원한 물줄기로 고려인마을에서 되살아났다.
단순한 광복절 기념행사를 넘어 항일 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선조들의 긍지와 역사를 꿋꿋하게 이어가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명이었다.
15일 오전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이하 전남광주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일대에서는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역사를 이어가는 고려인마을' 행사가 열렸다.
항일 투쟁의 역사를 간직한 고려인들이 모여 사는 전남광주시 광산구 월곡동에서 열려 그 의미가 남달랐던 이날 행사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1920년 '봉오동 전투'의 뜨거운 승리를 재현하는 대규모 물총 싸움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태극문양 독립군 대열, 거리를 가른 환호와 일본군의 패배 선언
㈔고려인마을과 동포체류지원센터가 주최하고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후원한 이날 행사에는 월곡 1·2동 주민과 대성여고, 경신여고 학생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고려인마을은 선조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23년부터 매년 광복절마다 자체적인 재현 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다.
오전 10시께 출발지인 광산구 월곡고려인문화관 앞. 집결한 독립군 대열은 복장부터 남달랐다.
태극 문양을 상징하는 붉고 푸른 우비를 맞춰 입은 시민들은 모형 소총과 물총, 비눗방울 총으로 무장했다.
대열 한가운데에는 태극기가 선명하게 그려진 우산과 깃발을 치켜든 민초들이 자리하며 결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모아어린이공원까지 이어지는 이동 경로를 따라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독립군 진영의 거센 선창과 함께 일본군 역할을 맡은 이들을 향해 맹렬한 물줄기가 쏟아졌다.
대한독립이라는 열망으로 뭉친 거센 저항에 일본군은 점차 뒷걸음질을 쳤다.
행렬이 지나는 길목마다 상가 주민들과 행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함께 만세를 외치며 힘을 보탰다.
거리 끝자락에서 물총 세례를 견디지 못한 일본군이 쓰러지며 패배를 인정하자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졌다.
참가자들은 러시아어로 대한민국 만세를 뜻하는 "코레아 우라"를 연신 외치며 과거 선조들이 쟁취했던 벅찬 환희를 나눴다.
제81주년 광복절인 15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고려인마을에서 열린 봉오동전투 재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물총을 이용해 박을 터트렸다. 박을 터트리자 안에서 '대한 독립 만세'와 '불멸의 영웅 홍범도 장군' 문구가 공개됐다. 판영석 기자
홍범도 흉상 앞에서 갈라진 박…"뿌리와 아픔 잊지 않을 것"
퍼포먼스의 열기는 종착지인 다모아어린이공원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곳에 세워진 홍범도 장군 흉상 앞에서 특별한 '박 터뜨리기'가 이어졌다.
공원 한편에 매달린 두 개의 커다란 박을 향해 시민들의 물줄기가 일제히 뻗어나갔고, 굳게 닫혀 있던 박이 마침내 갈라졌다.
그 속에서 '대한 독립 만세'와 '불멸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 새겨진 대형 현수막이 드러나자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뜻깊은 소감을 털어놨다.
고려인 김아나스타샤(24)씨는 "물총으로 일본군을 물리치는 과정이 통쾌했다"며 "행사를 통해 선조들의 아픔과 잊지 말아야 할 뿌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군 역할을 맡은 김제냐(18)군은 "결국 독립군이 승리하는 역사적 사실을 재현한 것이라 기분이 좋았다"며 "이곳 월곡동을 내 고향으로 여긴다. 전쟁의 아픔과 역사를 미래 세대도 함께 기억하길 바란다"고 답했다.
선주민과 이주민의 온기…광복절마다 피어나는 역사 문화 축제
거리 퍼포먼스 이후 이어진 기념식에서는 지역 선주민과 이주민 간의 화합과 연대가 빛을 발했다.
행사장 한편에서 간식을 나누며 봉사하던 마을해설사 김정순(58)씨는 "마을 행사인 만큼 자발적으로 돕고 있다"며 "고려인 동포들이 지역 사회와 활발히 소통하며, 이 행사가 광주 전체의 축제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편 이날 행사의 모티브가 된 봉오동 전투는 1920년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 부대가 만주 봉오동에서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거둔 역사적인 대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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