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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호일당에서] 인생의 봄·여름 지나 왔으니 ‘가을 소리’ 들을 수 있는 것

김홍도 작 ‘추성부도’(부분). 송나라 구양수가 가을의 소리를 듣고 그 감흥을 읊은 산문 ‘추성부’를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무덥고 기후재난 많았던 여름

폭우·산불이 삶의 터전 휩쓸어

고통스럽고 지난한 나날 보내

자연의 원리는 문제없이 작동

땅·하늘 기운이 가을의 길목에

김홍도 작 ‘추성부도’(부분). 송나라 구양수가 가을의 소리를 듣고 그 감흥을 읊은 산문 ‘추성부’를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난히 무덥고 기후재난도 많았던 여름이었다. 지구촌이 심한 몸살을 앓았다. 유럽과 캐나다에서는 엄청난 산불이 대지를 삼키며 주변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곳곳에서 극한 폭우와 홍수가 삶의 터전을 휩쓸었다. 여름 막바지에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빙하붕괴 대홍수가 히말라야에서 발생, 인간의 무력함을 실감하게 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이 대홍수는 지난달 26일 네팔 카트만두 북쪽, 네팔과 중국 티베트의 국경 지역 히말라야 계곡에서 발생했다. 빙하 녹은 물을 식수원으로 삼아 계곡 가에서 삶을 이어가던 주민들의 터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덮어버린 암석과 진흙 더미만 남았다. 암석과 토사 등을 품은 대홍수의 속도는 시속 180㎞나 되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경고를 계속 무시하며 제대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 초래한 지구 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콜롬비아 지진(8월10일 규모 7.4), 베네수엘라 연속 지진(6월24일 7.2·7.5 규모), 일본(구마모토) 지진(7월28일 규모 7.1) 등 엄청난 피해를 불러온 지진까지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하게 했다. 우리나라도 극한 폭염 속에 기록적인 가뭄과 폭우로 고통스럽고 지난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원리는 여전히 큰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9월에 들어서고 나서는 자연의 기운이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태양의 매서움이 누그러지고, 새벽녘 창문으로 스며드는 바람의 결이 달라지고 있음을 체감한다. 결국 가을이 온 것이다. 재난과 폭염으로 얼룩졌던 무더운 여름이 물러가고, 땅과 하늘이 가을의 자리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우리의 마음도 달라진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기도 한다. 거칠고 뜨거웠던 시간 동안 시달렸던 마음은 청명한 기운을 느끼며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가을 기운을 느끼며 갖게 되는 마음은 연령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가을을 읊은 최고의 문장으로 꼽히는, 중국 송나라 구양수(1007~1072)의 ‘추성부(秋聲賦)’가 있다. 가을에 삶을 돌아보면서 읽을 만한 글이 아닐까 싶다.

중국 송나라 구양수의 ‘추성부’

밤하늘서 오싹하는 느낌의 소리

“처량하고 애절하며 분노하는 듯

머리가 백발이 되는 것도 당연

◇구양수의 ‘추성부’

내(구양수)가 마침 밤에 책을 읽고 있다가 서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오싹하는 느낌으로 듣고는 “이상하구나!”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우수수하며 나무에 부는 바람소리더니, 갑자기 물결이 거세게 일며 파도치는 소리같이 변하였다. 마치 파도가 밤중에 놀라 철석거리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그것이 물건에 부딪히자 쨍그랑거리며 쇠붙이가 울리는 것 같았다. 또 마치 적진으로 다가가는 병사들이 입에 재갈을 물고 질주하는데, 호령 소리는 들리지 않고 단지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만 들리는 듯했다.

내가 동자에게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 네가 나가서 살펴보아라.”

동자가 대답하기를 “별과 달이 밝게 빛나며 하늘엔 은하수가 걸려 있습니다. 사방에는 인기척이라고는 없고 소리만 숲 속에서 들립니다”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아, 슬프도다! 이것은 가을 소리로구나. 어찌하여 이것이 왔는가? 가을의 모습이란 그 빛깔은 차분하고 맑아 안개와 구름이 걷히고, 그 모양은 청명하여 하늘은 드높고 해는 맑다. 그 기운은 매우 쌀쌀해서 사람의 살과 뼛속까지 파고들며, 그 뜻과 정취는 쓸쓸하여 산천이 적막해진다. 그러므로 그 소리는 처량하고 애절하며 울부짖고 분노하는 듯하다.

풀들은 짙푸르게 무성함을 다투고 아름다운 나무들은 울창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할 만하더니, 풀들은 가을바람이 스쳐가자 누렇게 변하고 나무는 잎이 떨어진다. 그것들이 꺾이고 시들어 떨어지게 되는 까닭은 바로 가을의 기운이 끼치는 위력 때문이다. 가을은 형벌을 집행하는 관리이며, 계절로 치면 음(陰)의 때이다. 또한 용병의 상징이며, 오행으로는 금(金)에 속한다. 이는 천지간의 정의로운 기운이라 하겠으니, 항상 사물을 시들게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하늘은 만물에게, 봄에는 나고 가을에는 열매 맺게 한다. 그러므로 가을은 음악에 있어서는 상성(商聲)으로 서방의 음을 주관하고, 이칙(夷則)으로 칠월(七月)의 음률에 해당한다. 상(商)은 상한다는 뜻이니, 만물은 노쇠하면 마음이 상하고 슬프게 되는 것이다. 이(夷)는 죽인다는 뜻이니, 만물은 전성기를 지나면 죽게 마련이다.

아! 초목은 감정이 없지만 때가 되면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사람은 동물 중에서도 만물의 영장이다. 백 가지 근심을 마음에 느껴 만 가지 일이 육신을 힘들게 한다. 마음속에 움직임이 있으면 반드시 그 정신을 뒤흔든다. 하물며,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일까지 생각하고 지혜로 풀 수 없는 일까지 걱정해서야, 짙게 붉다가도 어느새 마른 나무처럼 시들 듯이 까맣던 머리가 백발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어찌하여 금석(金石) 같은 재질도 아니면서 초목과 더불어 영화를 다투려 하는가? 누가(무엇이) 사람들을 이처럼 해코지하는지 생각해 보면 어찌 가을 소리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동자는 아무 대답 없이 머리를 숙인 채 잠이 들었다. 오직 사방의 담벼락에서 벌레 우는 소리만 들려오니, 마치 나의 탄식을 돕는 듯하였다.

동자와 대화 형식 '가을 감흥'

'인생의 봄' 꼬마에겐 안 들려

김홍도, '추성부'를 그림으로

빛나는 별과 달·입을 벌린 학

가을밤 스산한 분위기 드러나

◇가을을 읊은 대표적 산문

구양수의 ‘추성부’는 1059년 그가 53세 때 가을에 대한 느낌을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을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관조하는 내용인데, 동자와의 대화 형식을 빌려 가을의 감흥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그려내고 있다, 스스로 가을을 불러오지만 가을이 되지 않으면 가을을 깨닫지 못한다. 가을의 소리는 가을이 되어서야 들리듯이, 아직 인생의 봄에 있는 꼬마는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구양수도 인생의 봄과 여름을 지나쳐 왔으니 ‘가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구양수 당송팔대가 중 한 사람으로 산문의 대가였다. 중국의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소식과 그 동생 소철이 그의 제자였다. 야사에 이런 이야기도 있다. 구양수는 과거 시험의 채점관을 맡았는데, 당시엔 부정 채점을 막기 위해 답안지의 이름을 가리고 채점했다. 소식의 답안을 본 구양수는 ‘이렇게 글을 잘 쓴 것을 보니 내가 아끼는 제자의 글이 틀림없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 자체만 놓고 봐도 장원급제 감이지만, 자칫 내 제자라서 점수를 잘 줬다고 뒷말이 나올 수 있으니 차석으로 점수를 주자’라고 생각해서 소식을 차석으로 급제시켰다는 이야기이다.

구양수는 북송의 정치, 사상, 문학 등 여러 방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가장 큰 업적은 문학 방면에서 찾을 수 있다. 당·송 시대는 중국 산문 역사에서 질적·양적으로 가장 풍성한 수확을 하였던 시대이다. 특히 당송팔대가들을 중심으로 한 산문 창작은 역대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당송팔대가들 중에서도 당대의 한유·유종원과 송대의 구양수·소식이 특히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시, 사, 부, 산문 등 문학 장르의 다방면에 걸쳐 볼만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특히 산문 부분에서 더욱 큰 성취가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대표작이 ‘추성부’다.

단원 김홍도는 유명한 이 ‘추성부’를 걸작 그림으로 남겼다. 별세하기 전 해인 61세에 그린 작품이다. 보물로 지정된 이 작품은 2023년 대구박물관에서 개최한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전시됐을 때 볼 수 있었다. 가로 215㎝·세로 56㎝의 대작이다.

‘추성부도’는 중앙에는 중국식 초옥이 있으며, 둥근 창 안에는 구양수가 보인다. 이 그림은 구양수가 책을 읽다 소리가 나자 동자에게 무슨 소리인지 나가서 살피라 했고, 밖으로 나간 동자는 별과 달이 환히 빛나고 숲속에서 나는 소리만 들린다고 답한 장면을 그려낸 것이다. 동자는 손을 들어 바람소리가 나는 쪽을 가리키고 있으며, 학 두 마리는 목을 빼고 입을 벌려 그 바람소리에 화답하듯 묘사되어 있다. 화면 왼쪽 언덕에는 나무가 두 그루 서 있고, 그 옆쪽에는 대나무에 둘러싸인 초가집이 보이며 위로는 보름달이 떠 있다. 가을밤의 스산한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글=김봉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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