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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징인터뷰] 시애틀 한인사회의 '든든한 맏형' 정정이 회장

정 회장의 아들 알렉스 정(한국이름 정승재)은 글로벌 IT 리더로 성장했고, 딸 역시 변호사로 활약 중이다. 특히 아들의 성공스토리(본보 5월11일자 현장인터뷰 참조)는 전 세계 청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전...

[현징인터뷰] 시애틀 한인사회의 '든든한 맏형' 정정이 회장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한인들의 맏형 역할을 하는 정정이 회장.

“성공한 사람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시면 안 됩니다. 그 뒤에는 반드시 남모를 눈물의 골짜기가 있는 법이니까요.”

지난 5월6일(현지시간) 창밖으로 시애틀의 푸른 하늘이 내다보이는 사무실. 워싱턴주 사격연맹 회장이자 시애틀 한인사회의 ‘든든한 맏형’으로 불리는 정정이 회장은 마주 앉은 기자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미국 대통령 평생봉사상을 받고, 자녀들을 글로벌 리더로 키워낸 오늘날의 영광 뒤에는 밤마다 흘린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던 청년 이민자의 지독한 사투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 기자는 직감했다.

정 회장은 앞서 2일 총기 사고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닌 일이라며 한인들을 대상으로 처음 안전세미나를 열었다. 기자는 당시 현장취재를 하면서 정 회장에게 인터뷰 제의를 했고, 4일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알람 시계 하나와 밴트럭 침대, 2년의 사투

1970년대, 낯선 미국 땅에 첫발을 디딘 청년 정정이에게 현실은 겨울바람처럼 냉혹했다.

“돈이 아주 많거나, 영어가 완벽하거나, 특출난 기술이 없다면 청소부밖에 할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정면 돌파였다. 중고 밴트럭 한 대를 사서 뒷좌석을 개조해 침대를 만들었다. 낮에는 보잉 계열회사에서 기계공 보조로 땀을 흘렸고, 밤에는 시애틀 커뮤니티 칼리지로 달려가 청운의 꿈을 품고 설계도(블루프린트)와 컴퓨터 미싱 프로그램을 파고들었다.

차디찬 밴트럭에서 알람시계 하나에 의지해 쪽잠을 자기를 2년. 편안한 잠자리를 포기한 그 지독한 노력 끝에 그는 마침내 직장에서 최고 임금을 받는 베테랑 기사로 우뚝 섰다.

인종차별의 설움을 ‘지혜와 성실’로 녹여내다

안정적인 직장을 나와 시작한 비즈니스의 길은 또 다른 가시밭길이었다. 처음 인수한 식당에서 만난 미국인 종업원들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과 횡포를 일삼았다.

“참 서러웠습니다. 밤마다 눈물이 쏟아져 잠을 못 이뤘죠.”

정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잠시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는 대신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진심으로 다가갔다.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사서 마침내 ‘내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 단단한 리더십을 밑거름 삼아 그는 이후 인쇄소, 세탁소, 호텔, 쇼핑몰 등 총 9개의 비즈니스를 성공 궤도에 올려놓았다.

끈기와 진심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정정이 회장

놀라운 것은 그 많은 건물을 관리하며 사람을 쓰기보다 직접 설계하고 수리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성실함, 그것이 오늘날의 정정이를 만든 진짜 동력이었다.

‘품앗이 정신’으로 후배들의 울타리가 되다

사업가로 대성한 그가 한인사회 봉사에 뛰어든 계기는 의외로 소박했다. 인쇄소를 운영하며 형편이 어려운 한인들의 소식지와 식당 메뉴판을 무료로 만들어주던 것이 인연이돼 상공회의소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93년 회장직을 맡으며 그의 본격적인 ‘맏형 행보’가 시작됐다.

이후 한인회장, 체육회장, 한글학교 이사장 등 수많은 직함을 맡았지만, 그는 늘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저 불러주니 심부름을 한 것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실제로 정 회장은 자신을 도왔던 후배 임원들이 이제 각 단체의 수장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며, 지금도 묵묵히 그들의 뒤를 받쳐주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신의를 지키고, 받으면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던 선친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우리네 ‘품앗이 정신’이죠. 먼저 자리 잡은 형이 동생들을 챙기는 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정정이 회장과 작고한 신호범 워싱턴주 상원의원. 신 의원은 그의 후원을 받고 정계에 진출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자녀들에게 물려준 최고의 유산

그는 지금도 매달 적지 않은 금액을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쏟아 붓고 있다. 차세대 정치인들의 후원금부터 크고 작은 한인 행사 비용까지, 그의 지갑은 한인사회를 위해서라면 언제나 열려 있다.

이러한 ‘나눔의 삶’은 자연스럽게 최고의 자녀 교육이 됐다. 정 회장의 아들 알렉스 정(한국이름 정승재)은 글로벌 IT 리더로 성장했고, 딸 역시 변호사로 활약 중이다.

특히 아들의 성공스토리(본보 5월11일자 현장인터뷰 참조)는 전 세계 청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전 세계인들이 메시지를 보낼 때 사용하는 움직이는 이미지 GIF, 소위 ‘움짤’의 문화를 만든 주역이다. GIF 파일을 검색·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이자 검색 엔진인 '기피'(Giphy)의 창업자로, 하루 1억 명이 넘는 방문자를 만든 뒤 7년뒤인 2020년 페이스북에 4억 달러(한화 약 5,862억 원)라는 기록적인 액수로 매각해 성공신화를 썼다.

알렉스 정 대표(왼쪽)와 아버지 정정이 회장이 함께한 장면.

그는 자신의 성공을 아버지의 교육 덕분이라고 돌리는 ‘효자’였다.

“아버지로부터 철두철미한 시간관념과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엄격한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지금의 성공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부모님의 사랑 덕분입니다.”

아들은 성공을 발판삼아 “이제는 누군가의 성공을 위해 영국 옥스퍼드대학 강단에서 차세대들의 후견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정정이 회장은 성공신화를 쓴 아들에게 다시 ‘책임감’을 강조한다고 했다.

“해외에 살면 나 개인보다 조국과 민족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내 행동 하나가 한국인의 얼굴이 되니까요. 자식들에게 늘 그 책임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건물을 나서는 기자를 직접 배웅하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정정이 회장의 미소를 다시 봤다. 밴 트럭에서 쪽잠을 자던 청년이 일궈낸 성공은 이제 시애틀 한인사회 전체를 덮어주는 따뜻한 햇살이자,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맏형’의 품이 돼 있었다.

한인들도 총기 사고에 예외가 될 수 없다며 안전세미나를 연 정정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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