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외경제TV=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 야구의 길을 걸어온 지 어느덧 56년째다. 중학교 시절 처음 배트를 잡은 이래로 프로야구 선수와 미국 메이저리그라는 선진 야구의 무대를 거쳤고, 수석 코치와 감독을 지나 이제는 동남아시아의 척박한 땅에 야구를 보급하는 전도사로 살아가고 있다.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대한민국 야구 팬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특히 선수 시절을 보낸 대구에서의 유명세와 애정은 때로 과분하게 느껴질 만큼 뜨거웠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 아래 서 있던 나를 숙연하게 만든 분이 있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묵묵히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20년 넘는 세월을 헌신해 온 사람, 바로 김길현 교수다.
과학자가 배트를 든 이유: '희생'을 가르치기 위해
김길현 교수의 이력은 야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KAIST와 미시간 대학교에서 과학을 공부한 박사이자 이화여자대학교 약학과 교수였던 그는 신학을 공부한 후 캄보디아로 향했다. 그가 2005년 9월, 프놈펜 왕립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며 자원봉사를 하던 중 캄보디아 최초의 야구팀을 창단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는 왜 야구인이 아니면서 야구를 가르쳤을까. 김 교수는 회고한다. “오랜 내전과 '킬링필드'로 불리는 대학살로 인해 교육이 마비된 캄보디아 사람들은 지쳐 있었고 꿈과 희망을 버린 지 오래였다.” 그는 그들에게 법보다 강한 '규칙'과 삶의 '질서'를 가르치고 싶어 했고, 그 최적의 도구로 야구를 선택했다.
“야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아웃이고, 팀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이 있다. 희생 번트와 희생 플라이처럼, 팀을 위해 나를 낮추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가 청년들에게 강조한 것은 기술이 아닌 인생이었다.
잡초를 뽑아 만든 야구장, 그리고 10만 평의 기적
야구단 운영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학교의 도움 없이 손수 잡초를 뽑고 라인을 그려 야구장을 만들었고, 한국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헌 장비를 구걸하다시피 모았다. 그렇게 시작된 ‘프놈펜 블루 웨이브스’는 캄보디아 청년들에게 단순한 스포츠 팀 이상의 공동체가 되었다.
캄보디아 에서 김길현 교수와 함께. (사진제공=헐크파운데이션)
그가 뿌린 씨앗은 20년이 지난 지금 눈부신 결실을 맺고 있다. 당시 그의 제자였던 ‘다라’는 현재 캄보디아 야구협회 회장이자 자수성가한 기업가로 성장했다. 다라 회장은 스승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프놈펜 근교에 야구장과 리조트를 포함한 10만 평 규모의 캄보디아 최초 스포츠 타운 건설을 추진 중이다. 협회 주요 인물들 역시 김 교수가 키워낸 제자들이다.
“야구 선수 출신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유산
김 교수는 모든 기반을 닦아놓고도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지 않았다. 부지와 야구장까지 모두 현지인들에게 넘겨준 채, 그는 배낭 하나 메고 조용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홀로 부산부터 고성까지 국토를 종단하며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가 쓴 책 『야구보다 야구 선수』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언젠가 캄보디아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게 되길 바랍니다. ‘야구 선수 출신이라면 믿을 만한 사람이다’라고.”
그의 헌신은 캄보디아 땅에 정직과 신뢰라는 가장 귀한 가치를 심었다.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위대한 야구의 정신을 실천한 성자(聖者)였다. 그가 힘써 뿌린 씨앗들이 이제 울창한 삼림을 이루어, 고단한 삶을 사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평안한 쉼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이만수 전 SK와이번스 감독은 헐크파운데이션을 세워 국내외에서 활발한 재능기부를 펼치고 있다. 라오스 야구협회 부회장이자 KBO 육성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발달장애인야구소프트볼협회 명예회장직을 맡아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들 모두에게 스포츠를 통한 교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헐크파운데이션)
*내외경제TV에서 알립니다. 본 기사는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 및 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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