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미사이언스 김연옥 기자 |
야간 시간대 생산라인 서버가 갑자기 멈추고, 다음 날 출근한 직원들은 사내 파일이 암호화된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다. 또 다른 기업에서는 회계 담당자가 수신한 이메일 한 통이 내부망 침투의 시작점이 됐고, 수개월 뒤 고객 데이터 유출 사실이 외부 제보를 통해 드러났다. 최근 국내 중소·중견기업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은 단순 시스템 장애를 넘어 생산·물류·재무 전반의 운영 연속성을 흔드는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보안 전문기업 SK쉴더스가 최근 5년간 축적한 침해사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국내 중소·중견기업은 침해 사실을 인지하고 조사에 착수하기까지 평균 106.1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격 발생 후 약 3개월 이상 위협이 내부 시스템에 잠복해 있었다는 의미다.
이번 분석은 SK쉴더스 침해사고 대응 조직 ‘탑서트(Top-CERT)’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국내 기업에서 발생한 보안 사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행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최근 공격은 AI 기반 자동화 기술과 결합하며 탐지 회피 능력과 침투 정교성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랜섬웨어와 정보유출 사고가 전체 피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랜섬웨어 비중은 44.9%, 정보유출은 42.9%로 집계됐으며, 암호화폐 채굴 공격도 주요 위협 유형으로 확인됐다. 공격자는 상대적으로 보안 인력과 인프라가 제한적인 중소·중견기업의 취약한 운영 환경을 집중 공략한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침투 경로를 보면 애플리케이션 취약점 악용이 20.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파일 업로드 취약점(18.9%), VPN 취약점(15.4%) 순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악성 이메일, 워터링홀(Watering Hole) 공격, 외부에 노출된 URL 등이 주요 공격 벡터로 활용됐다. 이는 기업 외부 접점(Attack Surface)이 확대될수록 공격 가능 영역도 함께 증가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2025년 실제 사례에서도 공격 양상은 더욱 복합화됐다. 악성 메일과 워터링홀 기반 내부 데이터 탈취, 무차별 대입 공격(Brute Force)을 활용한 랜섬웨어 감염, 공급망 공격 기반 암호화폐 채굴 사례 등이 산업 현장에서 확인됐다. 특히 공급망 연결성이 높은 제조업 환경에서는 단일 기업 침해가 협력사와 유통망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높게 평가됐다.
분석 결과 산업별 피해 비중에서는 제조업이 47.4%로 가장 높았다. 생산 설비와 운영 시스템(OT·Operational Technology)이 IT 환경과 긴밀하게 연동된 제조 현장의 특성상, 보안 사고가 발생할 경우 생산라인 중단과 물류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어 정보서비스업(15.8%), 금융업(10.5%) 순으로 피해 사례가 많았으며, 교육서비스업과 유통업 등에서도 공격 사례가 확인됐다.
침해 시점의 시간대 분석도 주목된다. 최초 침투의 53.2%가 야간 및 심야 시간대(18시~05시)에 발생했다. 이는 보안 관제 인력 공백 시간대를 노린 자동화 공격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주간 시간대에도 공격 시도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특정 시간대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무엇보다 문제는 탐지 지연이다. 침해 사실 인지와 조사 착수까지 평균 106.1일이 걸렸고, 일부 사례는 최대 700일까지 장기 잠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사례 중 32.6%는 대응 착수까지 90일 이상 지연됐다. 이는 초기 침입 이후 내부망 장악, 권한 상승, 데이터 수집 및 외부 유출까지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최근 APT(지능형 지속 공격) 유형의 특징과도 맞물린다.
보안 업계에서는 이러한 장기 잠복형 공격이 단순 시스템 복구 비용을 넘어 기업 신뢰도와 사업 지속성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생산 중단과 거래 차질이 곧 매출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사이버 리스크가 경영 리스크로 직결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에는 AI 기반 자동화 기술이 공격 도구에 빠르게 접목되면서, 중소·중견기업이 자체 인력만으로 24시간 위협을 감시하고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단순 방화벽이나 백신 중심의 기존 보안 체계만으로는 지능형 공격을 막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실시간 위협 탐지와 사고 대응, 외부 노출 자산 관리까지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상시형 보안 체계’가 새로운 대응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분석을 진행한 SK쉴더스 역시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해 MDR(Managed Detection & Response) 기반 보안 관제와 ASM(Attack Surface Management) 서비스를 통해 중소·중견기업의 대응 체계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MDR은 24시간 위협 탐지·분석·대응을 연계하는 방식이며, ASM은 외부에 노출된 자산과 취약 요소를 지속적으로 식별·분석해 공격 가능 영역을 사전에 관리하는 데 초점을 둔다.
보안 업계에서는 클라우드 전환과 AI 업무환경 확산으로 기업의 디지털 공격 표면이 빠르게 넓어지는 만큼, 단순 예방 중심을 넘어 탐지와 대응 역량까지 포함한 통합형 보안 운영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SK쉴더스 관계자는 “최근 사이버 공격은 특정 시스템 하나를 노리는 수준을 넘어 기업 운영 전반과 공급망 구조를 동시에 겨냥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중소·중견기업도 부담을 줄이면서 지속 가능한 보안 대응 체계를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주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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