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 신축, 한남·반포 제치고 1위
CEO 주거, 강남권 집중 유지
주거 기준 ‘편의성’으로 이동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국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주거지는 강남 개포동 신축 대단지 아파트로 나타났다.
전통 부촌으로 꼽히던 한남동과 반포동을 제치고 개포동이 CEO 최다 거주지로 올라서며 고급 주거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 CEO 11명 몰린 개포 ‘디퍼아’···한남·반포 제쳤다
5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대표이사 640명의 주소지를 분석한 결과,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가 CEO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공동주택 단지로 집계됐다.
단지에는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 최수연 네이버 대표, 이석희 SK온 사장,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사장, 남정운 한화솔루션 대표,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 등 11명이 거주 중이다. 삼성, SK, 네이버, 한화, 두산 등 주요 대기업 경영진이 한 단지에 모인 셈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조감도. / 사진=현대건설
2위는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한남이다. 이곳에는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 강대현 넥슨코리아 대표, 김창수 F&F 회장 등 8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위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로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 등 7명이 살고 있다.
한남더힐은 5명으로 집계됐다. 그동안 고급 주거지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한남동 대표 단지가 개포 신축 대단지보다 낮은 순위에 오른 것이다. 단순히 단지별 숫자 차이를 넘어 고소득층 주거 선호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 CEO 10명 중 9명 수도권 거주···서울 집중도 여전
지역별로 보면 CEO 주거지는 수도권에 압도적으로 집중돼 있다. 전체 640명 중 586명, 91.6%가 수도권에 거주했다. 서울 거주자는 429명으로 전체의 67.0%를 차지했다. 경기 거주자는 152명, 인천은 5명에 그쳤다.
비수도권 거주자는 54명에 불과했다. 부산 11명, 경남과 울산 각 7명, 전남과 전북 각 5명 수준이다. 국내 500대 기업 CEO 주거지가 여전히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는 의미다.
서울 안에서도 쏠림은 더 뚜렷하다. 강남구 거주자가 10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초구 73명, 용산구 56명, 송파구 36명 순이었다. 강남·서초·용산·송파 등 이른바 서울 핵심 주거지에 CEO 상당수가 몰려 있는 구조다.
/ 그래픽=CEO스코어
강남구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업무 접근성과 주거 인프라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강남권은 주요 대기업 본사, 금융사, 전문직 네트워크, 교육 인프라가 밀집한 지역이다. 여기에 재건축을 거친 신축 대단지가 늘면서 주거 선호가 더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 개포, 신축·대단지·강남 입지 삼박자
개포동이 한남동과 반포동을 제친 배경에는 신축 대단지라는 상품성이 있다. 한남동은 고급 단독주택과 저층 고급주거지 이미지가 강하다. 프라이버시와 상징성은 높지만 대단지 아파트가 제공하는 생활 편의성과는 성격이 다르다.
반면 개포동은 재건축을 통해 대규모 신축 아파트촌으로 바뀌고 있다.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는 개포주공1단지를 재건축한 단지다. 6000가구가 넘는 초대형 단지로 조성돼 규모 면에서 강남권에서도 손꼽힌다.
대단지의 장점은 분명하다. 커뮤니티 시설, 보안, 주차, 조경, 관리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 단지 안에서 운동, 교육, 휴식, 생활 편의시설 이용이 가능하다. 고소득층일수록 프라이버시뿐 아니라 일상 관리의 편의성도 중요하게 본다.
특히 CEO나 전문경영인의 경우 업무 시간이 길고 이동이 많다. 주거지 선택에서 관리 부담이 적고 보안이 안정적인 신축 대단지 선호가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단독주택형 고급 주거지가 부의 상징이었다면 최근에는 고급 아파트의 효율성과 편의성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 판교는 직주근접 수요···경기권 분산은 제한적
경기 지역에서는 성남 분당구 백현동 판교푸르지오그랑블이 눈에 띈다. 이 단지에는 김미섭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심상필 세메스 대표 등 4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 그래픽=시사저널e
판교는 IT·게임·바이오 기업이 밀집한 업무지구다. 테크 기업 CEO나 관련 업종 경영진에게는 강남보다 판교 인근 거주가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직주근접 수요가 반영된 결과다.
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경기권 비중은 제한적이다. 서울 거주자가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경기 거주자는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판교가 일부 수요를 흡수하고 있지만 CEO 주거의 중심축은 여전히 서울이라는 의미다.
◇ 호텔 거주 CEO도 등장···외국계는 업무 편의성 중심
일부 외국계 CEO는 호텔을 거주지로 등록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사장은 조선팰리스서울강남 호텔에 거주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노무라금융투자 대표는 그랜드머큐어앰배서더, 오비맥주 대표는 노보텔앰배서더서울강남을 주소지로 등록했다.
이는 장기 거주보다는 업무 편의성과 이동성을 우선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외국계 경영진은 체류 기간과 근무 형태가 상대적으로 유동적이다. 주거 안정성보다 회사 접근성, 서비스, 보안, 단기 체류 편의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호텔 거주 사례는 국내 CEO 주거 패턴과 다른 흐름이다. 국내 경영진은 가족 생활과 자산 가치, 학군, 장기 거주 안정성을 함께 고려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외국계 CEO는 업무 중심의 임시 거주 성격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 고급 주거지 중심축 변화···단독주택에서 신축 아파트로
이번 조사에서 확인되는 가장 큰 흐름은 고급 주거지의 ‘아파트화’다. 과거 고급 주거지는 성북동, 한남동, 이태원동 등 단독주택 중심 지역이 대표적이었다. 넓은 대지, 독립성, 사생활 보호가 핵심 가치였다. 이후 반포, 압구정, 도곡, 대치 등 강남권 아파트가 고급 주거지로 부상했다. 교육과 교통, 자산 가치가 결합되면서 고소득층 수요가 아파트로 이동했다.
업계 관계자는 “CEO 주거지 변화는 단순한 호기심성 통계에 그치지 않니라 고소득층이 어떤 주거 상품을 선택하는지 보여주는 지표”라며 “ 전통 부촌의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실제 선택은 신축, 대단지, 관리 효율, 생활 편의성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개포동의 부상은 강남권 주거 시장이 다시 신축 대단지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