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 지분율 4%로 60% 통제권 행사...사실상 차등의결권과 유사 효과
17배 수준 통제권 레버리지...쿠팡 김범석 29배 차등의결권 보유 비견
日, 수십 년간 거버넌스 개혁 통해 중복상장 상호주 구조 점진적 해소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출발점은 기업 거버넌스와 소유구조 근본적 개혁
서울 도심 빌딩숲. 사진=연합뉴스
주식회사는 본질적으로 주주가 출자한 자본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제도다. 각 주식은 전체 자본의 일정 비율을 나타내며, 그 권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배당과 잔여재산 분배로 이어지는 현금수취권(cash flow rights)이고, 다른 하나는 이사 선임과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의결권 또는 통제권(voting rights)이다.
건강한 자본주의에서는 이 두 권리가 대체로 비례적으로 작동한다. 더 많은 자본을 제공한 주주가 더 큰 통제권을 갖는 구조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고장난 곳에서는 이 두 권리가 분리된다. 통제권은 소수 지배주주에게 집중되고, 경제적 부담과 위험은 다수 일반주주에게 전가된다.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한국 기업집단의 핵심 특징인
피라미딩 소유구조는 소유관계가 마치 반도체 회로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어 지배주주가 적은 자본으로 여러 회사를 연쇄적으로 지배
할 수 있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되는 중복상장이 반복되고, 회사 자금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다른 회사와 교환해 상호주 형태로 보유하면서 지배력을 더욱 강화한다.
그 결과 일반주주는 자본을 제공하지만, 그 자본은 주당가치 상승이 아니라 지배주주의 지배력 확대에 활용되는 왜곡이 발생한다.
이 문제는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일본 역시 과거 유사한 구조를 경험했다. 전후 맥아더에 의한 재벌 해체 이후 일본 기업집단은 상호주 보유와 자회사 상장을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일본은 지난 수십 년간 거버넌스 개혁을 통해 이러한 구조를 점진적으로 해소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히타치다. 한때 20개가 넘는 상장 자회사를 보유했던
히타치는 사업 재편과 공개매수, 완전 자회사화를 통해 대부분의 중복상장을 정리
했다. 도쿄증권거래소 역시 모자회사 중복상장이 소수주주에게 구조적 이해상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피라미딩 구조와 중복상장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 형식적으로 지배주주 지분율이 20~30%에 불과해 보이더라도 현실의 지배력은 훨씬 크다. 개인투자자의 낮은 주주총회 참여율, 기관투자자의 소극적 의결권 행사, 계열 및 거래관계에 따른 이해상충이 결합되면 이사회 구성과 주요 의사결정은 사실상 지배주주의 의중대로 결정되기 쉽다.
이사회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 지배주주의 이해를 우선하는 구조적 유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이사회는 감독기관이라기보다 지배주주의 결정을 추인하는 거수기로 전락
하기 쉽다. 그
근본 원인은 지배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과도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
에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 대기업집단에서는 실질 지분율이 약 4% 수준에 불과하지만, 피라미딩 구조와 중복상장을 통해 내부지분율 기준 약 60% 통제권을 행사한다. 이는 약 17배 수준의 통제권 레버리지에 해당한다. 이러한 구조는 사실상 차등의결권과 유사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쿠팡의 김범석 의장이 차등의결권을 통해 약 29배의 의결권을 보유한 사례와 비교될 정도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자본배분 역시 왜곡된다.
ROE 제고,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비핵심 자산 정리처럼 주당가치를 높이는 결정보다 계열 확장, 내부 자본 이동, 특수관계자 거래처럼 지배력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결정이 우선
되기 쉽다.
결국 시장은 이러한 구조적 위험을 가격에 반영한다. 기업의 순자산과 현금창출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낮은 가격만 지불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이다.
따라서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는 단순히 일부 기업의 도덕성 부족이 아니다. 현금수취권과 통제권의 괴리를 방치해 온 법과 제도의 실패, 그리고 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시장 규율의 실패다.
중복상장, 피라미딩 구조, 자사주의 상호주화가 계속 허용되는 한 지배주주는 적은 자본으로 거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고, 일반주주는 자신의 자본으로 자신의 권익이 희석되는 구조를 감내
해야 한다.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기업 거버넌스와 소유구조의 근본적 개혁이다.
중복상장 구조에 대한 재검토, 완전 자회사화 촉진, 자사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 차단, 그리고 이사회의 실질적인 주주 충실의무(fiduciary duty) 확립과 관련 법제 정비가 필요
하다.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은 단순하다. 자본을 제공한 사람이 그 성과를 정당하게 누리는 것이다. 이 원칙이 바로 서지 않는 한, 한국 자본시장의 할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김봉기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김봉기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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