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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사람을 키울 것인가, 데려다 쓸 것인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바이오 같은 산업에서 속도는 생존 조건이다. 1년을 교육에 쓰느냐, 아니면 당장... 최근 천문학적인 이익에 '백만장자' 성과급을 요구하는 반도체 회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직원들에게 '정거장'에...

[특파원칼럼] 사람을 키울 것인가, 데려다 쓸 것인가

장기간 인재 육성하는 日기업

충성도 높지만 변화에는 취약

신입보다 경력직 선호 韓기업

변화에 빠르지만 결속력 약화

최근 불거진 고액 성과급 갈등

두 방식 사이에서 균형 찾아야

이승훈 도쿄 특파원

매년 4월 1일이면 일본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맞는다. 짙은 감색 정장을 입은 사회 초년생들이 '입사식'을 통해 사회의 일원이 된다.

이들은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지 않는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에 이르는 연수를 거친다. 명함을 건네는 각도부터 기업 철학까지, 사소해 보이는 것조차 반복해서 익힌다.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이를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드는 과정, 곧 경쟁력을 쌓기 위한 투자라고 본다. 이런 방식은 일본 제조업을 떠받쳐 온 '뿌리'였다. 조직은 안정적이고, 품질은 균질하며, 구성원들은 회사를 자신의 연장선으로 여겼다. 오랜 시간 한 회사에 몸담으며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경쟁력이 됐다. '사람을 키우는 기업'이라는 자부심도 여기서 나왔다.

도요타 창업자인 도요다 기이치로는 '모노즈쿠리(물건 만들기)는 히토즈쿠리(사람 만들기)'라는 인재 육성 이념을 만들었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파나소닉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파나소닉은 사람을 만드는 회사"라고 신입사원을 교육시켰다.

그러나 산업의 속도가 달라지면서 일본에서도 이러한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기술은 몇 년이 아니라 몇 개월 단위로 바뀌기 때문이다. 기업이 모든 인재를 내부에서 천천히 길러내는 방식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 조직은 안정되지만 그만큼 둔해질 위험도 커진다. 외부에서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구조는 변화의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일본 기업이 신산업에서 뒤처지는 요인을 여기서 찾는 사람도 있다.

한국 기업들은 정반대 길을 걷고 있다. 공채를 줄이고 수시 채용을 늘렸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사람을 뽑는다. 이미 경험을 쌓은 인재를 곧바로 현장에 투입한다. 겉으로 보면 '키우기'보다 '데려다 쓰기'에 가깝다. 그래서 인재를 '소비'한다는 비난도 받는다.

하지만 이는 선택의 문제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바이오 같은 산업에서 속도는 생존 조건이다. 1년을 교육에 쓰느냐, 아니면 당장 성과를 내느냐의 차이는 작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준비된 인재를 찾는 것이 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두 모델이 각자 다른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사람을 오래 붙잡아 두는 대신 변화에 둔해졌다. 한국은 빠르게 사람을 바꾸는 대신 조직의 결속력이 약해졌다. 회사는 더 이상 평생을 맡길 곳이 아니고, 직원 역시 한곳에 오래 머물 이유를 찾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정거장'이 된 셈이다.

이를 두고 인재의 충성도가 사라졌다고 탄식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종신고용이라는 전제가 무너진 자리에서 충성만을 요구하는 것은 공허하다. 기업이 개인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는다면, 개인 역시 기업의 미래에 자신을 묶어둘 이유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인재가 떠나더라도 남는 것을 만드는 데 있다. 기업의 경쟁력은 결국 그 축적의 방식에서 갈린다. 일본식이 정답도 아니고, 한국식이 해답도 아니다. 사람을 천천히 키울 것인가, 빠르게 데려다 쓸 것인가의 선택이 아니라 두 방식을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가 지금 우리 기업의 과제다.

최근 천문학적인 이익에 '백만장자' 성과급을 요구하는 반도체 회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직원들에게 '정거장'에 불과한 이 회사가 지금의 성장통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이승훈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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