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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태평로] 병자호란 치욕도 ‘내란 누명’ 軍 숙청이 불렀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는 아직 만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인구는 200만~30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반면 조선은 1000만명을 넘었다. 압록강을 건넌 청군은 5만명을 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에는 10만명이 넘는 군대가 있었다. 그런데도 전쟁 6일 만에 인조가 남한산성에 갇혔다.

[태평로] 병자호란 치욕도 ‘내란 누명’ 軍 숙청이 불렀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는 아직 만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인구는 200만~30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반면 조선은 1000만명을 넘었다. 압록강을 건넌 청군은 5만명을 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에는 10만명이 넘는 군대가 있었다. 그런데도 전쟁 6일 만에 인조가 남한산성에 갇혔다. 임진왜란 때와 달리 변변한 전투도 없이 ‘삼전도 굴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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