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제약사들 위상 높아졌지만
자금확보 위해 조기 기술이전
신약 가치 충분히 인정 못받아
후보물질 발굴은 중국 손잡고
상업화 전략은 美경험 활용해
세계무대서 통할 경쟁력 키워야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0년간 제약바이오 산업을 지켜보며 체감한 가장 큰 변화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글로벌 투자자나 다국적 제약사와 대화에서 한국이 중요하게 언급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글로벌 투자자와 제약사가 먼저 한국을 묻기 시작했고, 관련 논의도 눈에 띄게 늘었다. 실제로 기술 수출 건수와 규모는 팬데믹 이전 대비 크게 증가했다. 여기에 더해 싸토리우스(Sartorius)의 송도 캠퍼스, 존슨앤드존슨(J&J)의 제이랩스(JLABS), 일라이릴리(Eli Lilly)의 릴리게이트웨이랩스(Lilly Gateway Labs) 등 글로벌 기업들의 국내 투자와 거점 구축도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와 투자자들이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해 궁금해하는 지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제조 역량이다. 한국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들이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급망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질문한다. 둘째는 혁신 신약 역량이다. 한국에서 어떤 신약 파이프라인이 나오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이 신약 개발을 주도해왔고, 최근에는 중국이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가며, 글로벌 파이프라인 수에서 미국, 중국에 이어 공고한 3위로 올라섰다.
한국이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내수시장, 제네릭 중심의 과거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신약 개발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일부 선도 기업이 해외 파트너와의 협업과 협상 과정에서 축적한 글로벌 경험은 업계 전반에 자신감을 불어넣는 이정표가 됐다.
안팎에서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읽힌다. 그러나 기대감이 커졌다는 사실만으로 다음 단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K바이오 방향성에 대한 냉정한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더 많은 가치를 확보할 수 있을까? 그동안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의미 있는 신약 파이프라인을 발굴하고 이를 글로벌 제약사에 조기에 기술 이전하면서 경쟁력을 입증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에서는 한국 기업이 가져가는 가치가 제한적이다. 임상 개발과 상업화 과정에서 창출되는 가치의 상당 부분이 글로벌 제약사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이 더 많은 가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첫 번째는 신약 밸류체인 후기 단계에서의 자본 병목 현상이다. 후기 개발 단계로 갈수록 자금 공백이 발생하면서 상당수 기업이 파이프라인의 가치를 충분히 끌어올리기 전에 기술 수출을 선택하고 있다. 전임상 또는 임상 초기 단계에서 거래가 이뤄지면서 파이프라인의 잠재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중국은 자본력을 기반으로 임상 후기 단계까지 개발을 이어간 뒤 기술을 이전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더 높은 가치로 거래를 성사시키며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빠르게 넓혀가는 방식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국가신약개발재단(KDDF)을 중심으로 임상 단계 지원을 확대하는 등 후기 개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다만 여전히 자금이 여러 스타트업에 분산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어, 선택과 집중을 통한 자원 배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 번째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에코시스템에서 한국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일이다. 한국이 고립된 시장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혁신 생태계와 연결해 그 안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만들어야 한다. 보스턴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글로벌 바이오 허브들은 공통점이 있다. 공동개발과 파트너십, 투자 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서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제약바이오 산업의 경쟁력은 에코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진다. 단일 기업이 신약 밸류체인의 전 과정을 담당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전문화된 역량을 전략적으로 결합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후보 물질 발굴 단계에서는 속도와 효율성을 자랑하는 중국 수탁연구기관(CRO)을 활용하고, 임상 디자인과 상업화 전략 측면에서는 미국의 풍부한 경험을 접목하는 식의 분산된 역량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 협업 구조가 반복되고 경험이 축적될수록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상업화를 주도할 수 있는 유무형 자산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세 번째 과제는 인재다. 혁신적인 파이프라인이 실제 성공적인 상업화로 이어지려면 개발 역량이 중요한데 이는 사람에게서 온다. 한국은 기초연구와 파이프라인 발굴에서는 강점을 보여왔지만, 임상 디자인과 개발 전략, 규제 전략 등에서 글로벌 프로젝트를 이끈 경험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문제는 이러한 경험을 단기간에 내부에서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험을 가진 인재와 조직을 어떻게 한국 생태계로 끌어들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CRO, CDMO, 글로벌 개발 인재 등 다양한 플레이어를 포함한 형태로 인재 풀을 확장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한국 프로젝트가 늘어나며 업계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지금 한국이 어떤 국가보다 앞서 있느냐"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지금의 순위나 지표가 과연 미래의 위치를 설명해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일본에서 출발한 다케다(Takeda)는 이제 미국 기업처럼 보일 정도로 글로벌화됐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제약사들 역시 각국의 강점을 전략적으로 연결하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암젠(Amgen)이나 버텍스(Vertex)와 같은 글로벌 스케일의 바이오테크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한국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고, 한국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이제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많은 혁신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낼 것인가가 아니라, 파이프라인으로 어떻게 큰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제는 그 답을 글로벌 바이오파마 혁신 생태계 안에서 찾아야 할 시점이다.
[박준형 맥킨지앤드컴퍼니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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