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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취하는 술'에서 '취향의 문화'로…주류 시장 흔드는 경험 마케팅

국내 주류 시장의 경쟁 축이 제품 자체의 스펙(맛·도수·가격)에서 브랜드가 제공하는 독점적 가치와 경험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국내 주류 시장의 경쟁 축이 제품 자체의 스펙(맛·도수·가격)에서 브랜드가 제공하는 독점적 가치와 경험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소주·맥주 중심의 양적 성장기가 끝나고, 소비자가 술을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대변하는 문화 콘텐츠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구조적 패러다임 시프트로 분석된다.

맥주 브랜드 '에비스(YEBISU)'가 갤러리현대의 기획 전시 오프닝 파티와 협업했다. /에비스

◆시장 정체 타개할 생존 방정식

과거 국내 주류 마케팅이 대중적인 연예인을 앞세운 TV 광고나 도매 채널 영업에 의존했다면, 최근에는 소비자가 브랜드의 페르소나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스토리텔링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 됐다.

이같은 변화의 이면에는 주류 시장의 양적 정체와 경기 둔화에 따른 소비 양극화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고물가 기조 속에서 일상적인 음주 지출은 줄이면서도, 한 잔을 마실 때 확실한 심리적 만족을 추구하는 가심비 경향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회식 중심의 폭음 문화가 쇠퇴하고 홈술·혼술이 일상화되면서, 주류 소비는 취하기 위한 수단에서 취향을 향유하는 취미로 재정의됐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내수 주류 시장이 포화 상태에 직면하면서 기업들은 단기 매출 진작보다 브랜드의 수명을 늘리는 고관여 충성 고객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며 "타 산업과의 협업은 브랜드의 진입 장벽을 높이고 가격 저항감을 낮추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맥주 브랜드 '에비스(YEBISU)'가 갤러리현대의 기획 전시 오프닝 파티와 협업했다. /에비스

◆미술관으로 간 주류

가장 두드러지는 흐름은 문화·예술계와의 결합이다. 고가 제품군이 포진한 와인, 위스키, 프리미엄 맥주 브랜드들은 아트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의 헤리티지(유산)를 극대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최근 프리미엄 맥주 브랜드 '에비스(YEBISU)'가 갤러리현대의 기획 전시 오프닝 파티와 협업해 지식인·자산가 층을 겨냥한 마케팅을 펼치거나, 와인 수입사 에노테카코리아가 창립 15주년을 맞아 설치미술가 박선기 작가와 한정판 아트레이블 에디션을 선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단순히 제품을 협찬하는 수준을 넘어, 예술이 가진 고유의 분위기를 제품 이미지에 이식하는 고도의 브랜딩 기법이다. 시장 분석가들은 이를 최근 소비 트렌드인 디토(Ditto·나와 취향이 유사한 인물이나 브랜드의 선택을 추종하는 경향) 소비와 연결 짓는다. 자신이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이나 문화적 수준을 주류 브랜드를 통해 증명하고자 하는 젊은 자산가 및 컬렉터 층의 심리를 정확히 공략했다는 평가다.

국순당이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구테로이테와 협업해 막걸리의 풍미를 빙수나 라떼 등 여름 한정 디저트로 재해석해 선보인다. /국순당

◆파인다이닝부터 MZ 디저트까지

식음료 산업과의 협업은 주류의 음용 지평을 넓히고 진입 장벽을 낮추는 실리적 목적을 지닌다.

싱글몰트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 '더 글렌그란트(The Glen Grant)'가 유명 파인다이닝 셰프들과 전개한 미식 페어링 캠페인은 위스키가 독주라는 정형화된 인식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미식 문화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도록 유도한 사례다. 마스터 클래스를 동반한 이 같은 체험형 콘텐츠는 소비자를 단순 구매자에서 브랜드 서포터즈로 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전통주 업계는 미래 핵심 소비층인 2030 세대와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대중적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국순당이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구테로이테와 협업해 막걸리의 풍미를 빙수나 라떼 등 여름 한정 디저트로 재해석한 시도가 이에 해당한다.

전통주라는 중장년층 중심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SNS를 통한 인증 문화와 이색 경험에 민감한 젊은 층에게 놀이문화로서 다가간 것이다.

◆이종 결합의 경제학

전문가들은 주류업계의 이러한 외연 확장이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구조적 생존 전략으로 고착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도 이종 산업 간의 협업은 강력한 윈-윈(Win-Win) 효과를 유발한다. 주류 기업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자체 팝업스토어나 공간 구축 비용을 절감하면서 기존 협업 파트너가 보유한 인프라와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예술계나 F&B 업계는 주류 브랜드의 자본력과 대중적 마케팅 자산을 활용해 자사의 핵심 타깃층을 넘어선 새로운 성인 소비층을 유입시키는 상생 구조를 완성하게 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 소비 사회에서 주류는 더 이상 단순한 알코올 음료가 아니라 개성 표출의 도구"라며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장기적인 브랜드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타 산업과의 경계를 허물고 소비자에게 얼마나 밀도 높은 정서적 경험과 차별화된 가치를 제안할 수 있느냐가 향후 시장 주도권을 쥐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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