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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취재수첩] 콧대 높던 미국이 K원전 찾는 까닭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미국 원자력의 상징인 웨스팅하우스 지분을 인수한다는 구상은 워싱턴 통상 테이블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카드였다. 2024년 체코 원전 수주전 때도 그랬다.

[취재수첩] 콧대 높던 미국이 K원전 찾는 까닭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미국 원자력의 상징인 웨스팅하우스 지분을 인수한다는 구상은 워싱턴 통상 테이블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카드였다. 2024년 체코 원전 수주전 때도 그랬다. 정부 안팎에 따르면 당시 웨스팅하우스가 제기한 지식재산권 분쟁을 풀기 위해 정부는 아예 지분 인수를 검토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당시 행정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미국 원전산업의 자존심을 한때 기술을 전수받았던 경쟁국 기업에 넘기는 방안은 정치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번엔 미국이 먼저 한국의 웨스팅하우스 지분 참여를 제안했다. 상황을 바꾼 것은 두 가지다. 인공지능(AI) 열풍이 촉발한 폭발적인 전력 수요, 그리고 ‘거래의 달인’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다. 미국 곳곳에 들어서는 거대한 AI 데이터센터를 안정적으로 돌릴 전력원은 원전밖에 없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원전 확대를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문제는 미국의 허물어진 원전 건설 역량이었다. 웨스팅하우스는 원자로 설계 기술을 쥐고 있지만 정해진 기한과 예산 안에 발전소를 완공할 시공 및 공급망 역량은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조지아주 보글 원전에서 겪은 공기 지연과 공사비 폭등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했다. 미국 정부로서도 시공 능력이 바닥난 자국 기업만 믿고 원전 르네상스를 끌고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틈을 파고든 무기가 한국 원전산업이 사막과 바다를 건너며 증명해 낸 ‘실물 제조 역량’이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전(APR1400)의 본토 상륙을 끝까지 경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 능력이 검증된 ‘팀코리아’ 앞에 주정부와 전력회사가 줄을 설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가 결국 한국에 손을 내민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없어서다.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을 공기 내에 성공적으로 완공했고 탄탄한 기자재 공급망까지 갖췄다. 설계 기술만 남은 미국과 시공·제조 역량을 쥔 한국의 결합은 미국 원전 확대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정식이란 계산하에 ‘한·미 원전 동맹’이 가시화하고 있다.

외교와 통상의 기류는 정권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기자재를 생산하고 현장에서 건설할 수 있는 제조업 역량은 단기간에 축적하기 어렵다. 결국 통상의 파고 속에서 나라를 지키는 힘은 상대가 아쉬워하는 제조업 경쟁력이다. 조선업 경쟁력을 앞세운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아이디어로 관세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었던 지난해에 이어 ‘국익은 기업의 경쟁력과 정비례한다’는 교훈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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