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에서 서비스까지 ‘수직계열화’ 완성…전 세계 유일의 ‘AI 풀 밸류체인’
“AI는 국가 안보 자산”…기업 이윤 넘어 대한민국 ‘AI 주권’ 지키는 사명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Summit(서밋) 2025’에서 ‘AI Now & Next’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SK
[편집자주] 1998년 최종현 선대회장의 별세로 서른여덟의 젊은 나이에 SK의 수장이 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취임 28년차를 맞았다. 내수 중심의 선경을 수출 대기업 SK로 변모시킨 최 회장은 이제 석유와 통신이라는 과거의 유산을 넘어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전방위 인공지능(AI) 생태계를 구축하며 SK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SK 창립 100년을 향한 최 회장의 미래 빅피처와 승부사적 면모를 집중 조명한다.
매일일보 = 권선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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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2011년 연간 영업이익은 3691억원. 2026년 1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40조원을 넘는다. 15년 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린 결단인 '하이닉스 인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특히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지배력을 앞세워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을 수익성으로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며 제조업의 한계를 뛰어 넘는 ‘초격차 수익성’을 통해 글로벌 AI 인프라 시장의 독보적인 위치에 안착했다.
SK하이닉스의 올해 1분기 예상 영업이익률 70% 상회는 글로벌 수익성 지표인 대만 TSMC(54~56%)를 넘어서는 수치로 마이크로소프트(46.1%)나 구글(39.1%) 등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들도 도달하지 못한 수익 효율을 제조 현장에서 구현한 것이다.
하지만 최 회장의 구상은 반도체 제조에만 머물지 않는다. 하드웨어 설계와 제조를 넘어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의 구축·운영, 이를 가동할 에너지 인프라까지 AI 산업의 전 과정을 그룹 내에서 수직 계열화하는 ‘AI 풀 밸류체인(Full Value Chain)’의 완성이 최종 목표다.
기획부터 제조, 운영, 에너지 공급에 이르는 전 영역을 그룹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은 전 세계적으로 SK가 유일하다는 평가다. 이 청사진을 실현하기 위해 최 회장은 AI와 반도체 분야에만 올해까지 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AI 컴퍼니’로의 체질 개선 본격화
최 회장의 비전은 그룹 내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실행해 나가고 있다. AI 생태계를 실질적인 서비스로 연결하는 역할은 SK텔레콤이 담당하고 있다. SK텔레콤은 AI 피라미드 2.0 전략을 통해 AI 인프라, AI 전환(AIX), AI 서비스라는 3대 영역을 수직 계열화해 수익을 만들어 가고 있다.
피라미드의 기초인 AI 인프라 단계에서는 앤스로픽 등 글로벌 AI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독자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 현장에 AI를 접목하는 AIX를 통해 제조, 헬스케어, 에너지 등 전 영역의 효율성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최종적으로는 글로벌 개인 AI 비서(PAA) 서비스를 통해 일반 소비자(B2C) 시장까지 선점한다는 청사진이다. 현재 SK텔레콤은 통신업의 한계를 넘어 데이터 처리 기술과 인프라 자산을 결합한 ‘AI 컴퍼니’로의 체질 개선을 본격화하며 그룹 AI 생태계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최 회장이 그리는 AI 풀 밸류체인의 최종 목표는 데이터센터(AIDC)로 집약된다. SK는 현재 아마존웹서비스(AWS)와 10년간 최대 13억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계약을 체결하며 협력의 기틀을 닦고 울산 미포 국가산업단지에 약 7조원을 투입해 국내 최대 규모인 103MW(메가와트)급 ‘SK AI 데이터센터 울산’을 구축 중이다.
2027년 11월 1단계 가동을 시작으로 2029년 완공을 목표로 하며 축구장 5개 넓이(3만6000㎡)의 지능형 공장으로 설계됐다. SK하이닉스는 어드밴스드 MR-MUF 공정을 적용해 열 방출 성능을 이전 세대 대비 10% 향상시킨 6세대 HBM4를 이곳에 우선 공급하고 SK브로드밴드는 축적된 통신망 운용 노하우로 GPU 가상화 기반의 ‘On-demand GPUaaS’ 인프라를 제공한다.
최 회장의 구상에서 울산 AI 데이터센터(AIDC)는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공간을 넘어 SK그룹의 핵심 역량이 집결된 지능형 생산 기지이자 수직 계열화된 AI 생태계의 심장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다. 이는 반도체(SK하이닉스), 통신(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에너지(SK가스, SK에코플랜트) 등 그룹 내 각 계열사의 전문성을 하나로 묶어 외부 의존도를 최소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독점적 플랫폼 지위를 확보하려는 최 회장의 ‘AI 고속도로’ 구상을 상징하는 핵심 전략 거점이란 평가다.
MWC26에서 SK텔레콤이 전시한 AI 서비스(Service) 존. 사진=SK텔레콤
◆전력 병목 뚫는 SMR·ESS
AI 시대의 최대 병목 구간인 막대한 전력 소모를 해결하기 위해 최 회장은 ‘에너지 공급’을 AI 생태계의 핵심 퍼즐로 설정했다. SK그룹은 나래에너지서비스와 여주에너지서비스 등을 운영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차세대 발전원인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해 에너지 주권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TerraPower)에 투자해 2대 주주가 된 배경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테라파워의 SMR 기술인 나트륨(Natrium)은 2026년 3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로부터 상업용 건설 승인을 획득하며 2030년 실증로 가동을 앞두고 있다.
현재 캐즘으로 주춤한 SK온의 ESS 사업은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AI 시대의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SK온은 기존 셀(Cell) 생산 라인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ESS 전용 라인을 확보함으로써 전체 매출 중 ESS가 차지하는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이를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글로벌 에너지 솔루션 시장에서의 대응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AI 생태계의 최전선에서 실제 가치를 창출하는 곳은 SK AX다. SK AX의 최대 경쟁력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 SK에너지의 정유 플랜트 등 난이도 높은 산업 현장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숙련공의 노하우를 AI로 학습시켜 설비 고장을 예측하는 명장 솔루션은 이미 내부 계열사에서 성능을 입증한 뒤 외부 고객사로 확장 중이다. SK에코플랜트도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를 활용해 송전 손실 없는 분산전원 모델을 인천 부평 데이터센터 등에 구축하며 AI 인프라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개최된 퓨처테크포럼 기조연설에서 AI를 국가의 명운을 결정짓는 안보 자산으로 정의했다. 그는 “AI 역량 수준에 따라 국가 간, 기업 간의 격차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질 것”이라며 “AI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는 단순한 경제적 차이를 넘어 국가의 생존권과 의사결정권의 독립성 문제로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 종속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며 “우리가 자체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타국의 AI 인프라에 종속되는 AI 식민지가 될 위험이 있다”며 “SK가 HBM과 AIDC, SMR에 투자하는 것은 기업의 이윤을 넘어 대한민국이 글로벌 AI 대전환기에서 안보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필수적인 인프라를 까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AI 생태계 구축이란 비전이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선 국가적 사명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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