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볼트 II'란 별명을 가진 A-10C 공격기. 미 국방부 영상정보배포시스템
지난해 5월 경기 평택시 오산공군기지에서 열린 미니 에어쇼, ‘에어파워데이’ 행사에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많은 관람객이 찾아 눈길을 끌었다. 관람객 중에는 외국인, 특히 일본인이 많았는데, 이 행사가 외국인으로 붐빈 것은 아시아 유일 A-10 공격기 운용부대의 고별 비행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오산에 주둔하는 미 공군 제51전투비행단은 해외 고정 배치 부대 가운데 유일한 A-10 운용부대였다. 이 부대는 작년 5월 고별 비행을 끝으로 한국에서 철수를 시작해 4개월 뒤인 9월 오산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 고별 비행을 마지막으로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는 A-10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기 때문에 각국 항공기 동호인들이 A-10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오산으로 몰려든 것이다.
지난해 5월 고별비행을 끝으로 한국에서 철수한 A-10 공격기
고별 비행 한 달 뒤, A-10 운용부대인 미 공군 제25전투비행대는 비활성화됐다. 비활성화는 부대의 이름만 남기고 편제된 인원과 장비를 모두 없애는 것이다. 소속 A-10C 기체는 평택 미군기지에 지상 전시용 1대만 남기고 모두 미국으로 철수했고, 그 직후 퇴역했다. 미국이 주한미군 A-10 공격기를 모두 퇴역시킨 것은 2026년까지 모든 현역 비행대의 A-10을 도태시키고, 신형 기종으로 전환한다는 전력 운용 계획의 일환이었다.
미 공군은 낡은 A-10 대신, 첨단 장비를 갖춘 F-35나 F-15EX를 한 대라도 더 갖고자 한다. 그러나 지난 2월 말,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면서 A-10은 퇴역 계획 백지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30여 년 전 걸프전, 20여 년 전 테러와의 전쟁, 10여 년 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 등 중동에서 전쟁이 터질 때마다 퇴역이 번복됐던 A-10이 이번에도 중동에서 터진 전쟁을 계기로 되살아나 전장에서 펄펄 날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 상공에서 A-10 공격기가 비행하고 있다. 뉴스1
레이더도 없고 초음속 비행도 못하는 '탱크 킬러'
레이더도 없고, 초음속 비행도 할 수 없는 데다가 스텔스나 첨단 전자장비 따위와는 거리가 먼 A-10은 많은 이들에게 ‘탱크 킬러’로 불린다. A-10에서 A는 공격(Attack) 임무용 항공기를 의미하는데, 이는 이 기체가 공대공 전투가 아닌, 지상 공격을 위해 만들어졌음을 뜻한다.
A-10은 미 공군이 베트남 전쟁의 교훈에 따라 싸고, 단순하며, 많은 무장을 탑재한 채 전장 상공에서 오래 체공할 수 있고, 대공포 포탄 몇 발쯤 얻어맞아도 살아서 기지로 돌아올 수 있는 지상 공격기 소요를 제기하면서 탄생했다. 한때 우리나라의 주력 전투기였던 F-5를 만든 노스롭이 YA-9A, 우리에게는 생소한 페어차일드라는 회사가 만든 YA-10A라는 모델을 만들어 미 공군에 제안했고, 그 중 페어차일드의 제안이 선정돼 1977년부터 배치된 항공기가 바로 A-10이다.
2008년 경기 포천시 영평 사격장 일대에서 미 공군의 A-10기가 플레어탄을 쏘고 있다. 코리아타임스 자료사진
원래 미 공군이 A-10에 붙인 별칭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탱크 킬러로 이름을 날린 P-47 선더볼트의 후계자라는 뜻에서 ‘선더볼트 II’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전투용 항공기와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워호그(Warthog), 즉 흑멧돼지라는 비공식 별칭이 더 널리 쓰이고 있다.
A-10은 그 생김새가 대단히 특이하다. 현대 전투기들은 엔진이 동체 안에 들어 있지만, A-10은 커다란 엔진 2개가 동체 외부에 노출돼 있다. 병렬로 설치된 엔진은 완전히 분리돼 어느 하나가 고장나거나 포탄·미사일 등에 피격돼 불이 붙더라도 다른 엔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날개는 다른 전투기와 같은 삼각형 형상이 아니라 일자 형태로 되어있고, 랜딩기어도 날개 아래에 돌출된 형태다.
전방에 레이더 대신 기관포 장착한 독특한 디자인
이 A-10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기수에 레이더가 아닌, 기관포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방 랜딩기어도 기관포에 밀려나 동체 오른쪽에 설치돼 있다. 현대 군용 전술기들은 탐지·추적은 물론 항법을 위해 기수에 레이더를 붙이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A-10은 레이더 대신 일명 ‘샤크 마우스’라 불리는 상어 이빨을 그려 넣고, 그 이빨 사이에 커다란 기관포를 넣었다.
GAU-8 기관포로 사격하는 A-10C 공격기. 항공기 주변에 연기가 가득하다. 미시간주방위공군 홈페이지
미 공군 제식명 GAU-8 ‘어벤저’ 기관포는 7개의 포신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30㎜ 포탄을 토해내는 괴물이다. 이 거대한 기관포는 A-10 동체 내부 공간의 4분의 1을 잡아먹고, 최대 장탄수인 1,174발을 모두 채워 넣으면 전체 중량이 1.8톤이나 된다. 덩치도 크고 발사 소음과 반동도 매우 강해 A-10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전투기를 타는 것이 아니라 기관포를 타고 날아다니는 기분"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기관포는 2리터짜리 생수병과 비슷한 크기인 30㎜ 포탄을 1분에 4,200발 쏜다. 심지어 이 포탄은 강철이 아닌 *열화우라늄으로 만들어 그 위력이 매우 강력하다.
열화우라늄(Depleted Uranium)
천연 상태의 우라늄보다 우라늄235의 함량이 낮은 우라늄.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또는 우라늄 농축 공정 후에 발생하는 부산물로 제조하며, 원자량이 커 밀도가 높은 점을 이용해 관통용 포탄이나 장갑재로 사용된다. 미군 에이브람스 주력전차가 사용하는 날개안정분리철갑탄과 복합장갑의 주요 재료다.
미군은 미사일이나 로켓을 쏠 필요 없이 이 기관포만으로 소련 전차들을 사냥할 생각으로 A-10에 GAU-8을 붙였다. A-10 조종사가 적 전차를 조준하고 1초만 방아쇠를 당겨도 이 강력한 포탄 70발이 전차를 덮치게 되므로, 이러한 공격을 받은 전차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 A-10이 처음 배치되던 1970년대는 미국은 물론 서유럽 모든 동맹국이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대규모 전차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던 때였기 때문에, A-10은 일당백의 ‘탱크 킬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배치됐다.
기관포 쏘면 엔진 꺼지는 치명적 결함 발견
그런데 막상 A-10이 배치되자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터졌다. 비행 중 기관포를 쏘면, 포연이 엔진으로 유입돼 엔진이 꺼지는 황당한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는데, 이 때문에 A-10은 기관포 방아쇠를 누르면 자동으로 엔진 재점화 장치가 연속 작동하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달았다.
지난 2017년 경기 평택시 주한공군 오산기지에서 A-10 공격기가 이륙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더 큰 문제는 전장 환경의 변화로 엔진이 꺼질 위험을 감수하고 기관포를 쏘는 것도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미국이 A-10을 배치할 무렵, 소련은 보병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과 자주대공포를 대량으로 깔았다. 기관포를 쏘려면, 유효사거리인 4㎞ 이내로 접근해야 하는데, 이러면 적의 대공화기에 피격될 위험이 커진다. 결국 미 공군은 A-10을 산 지 10년도 안 된 1980년대 중반부터 이 공격기를 퇴역시키려 했다. 미 공군에서는 A-10을 육군에 넘겨 버리려는 계획도 논의됐었다.
천덕꾸러기였던 A-10...걸프전 터지며 극적 부활
그렇게 실패작으로 퇴장을 준비하던 A-10은 1990년 극적으로 부활했다. 걸프전이 터진 것이다. 사실 A-10은 걸프전 초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F-117A 스텔스 공격기나 패트리엇 방공시스템과 달리 A-10은 ‘최첨단’과는 거리가 먼 투박한 항공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A-10은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퇴역론을 단숨에 잠재웠다. 쿠웨이트와 이스라엘을 위협했던 이라크군의 스커드 미사일을 사냥하는 킬체인에서는 물론, 지상군에 대한 공중 화력 지원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애초에 A-10은 많은 무기를 싣고 전장에서 장시간 체공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종이라 다른 전투기보다 전장에 훨씬 오래 떠 있을 수 있었고, 어지간한 대공포나 미사일 파편에는 격추되지 않을 정도로 맷집도 강했다. 물론 A-10의 주무장인 GAU-8 기관포는 큰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공대지 미사일인 ‘매버릭’과 찰떡궁합을 보여주며 스커드 미사일 발사대를 사냥하고 다녔다.
페르시아만에서 공대함 지원 임무를 수행 중인 A-10C 공격기. 미 중부사령부
걸프전에서 A-10은 ‘탱크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사실 A-10은 대전차 공격 작전에서는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이라크군 전차부대에는 항상 자주대공포가 동행했고, 레이더나 전자광학 조준 장비가 없는 A-10은 이러한 대공포 사정권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조종사가 쌍안경으로 표적을 찾고 미사일을 조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걸프전이 미국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A-10도 개선장군으로 돌아왔고, 퇴역 대신 성능 개량 사업을 통해 수명을 연장하게 됐다.
A-10C라는 이름을 달고 극적으로 되살아난 A-10의 위기는 10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왔다. 탈냉전 시대 군축의 물결에서 A-10은 우선 정리 대상이었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가 터진 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연달아 침공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체공 시간이 길고 많은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던 A-10은 B-1B 폭격기와 함께 당시 미군에게 가장 사랑받은 항공기였다. 무장을 가득 싣고 전장 상공을 돌다가 지상군의 화력 지원 요청을 받으면 단 몇 분 만에 나타나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강력한 항공기였기 때문이다.
걸프전 때와 달리 개량된 A-10C는 수십 킬로미터 밖 표적을 정밀 추적·조준할 수 있는 ‘스나이퍼 XR’ 또는 ‘라이트닝’ 타기팅 포드와 JDAM·페이브웨이 등의 정밀유도무기로 무장했고, 신형 전자전 장비와 채프·플레어 사출 장치를 달아 적의 지대공 미사일 공격도 극복할 수 있는 높은 생존성을 확보했다. 이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 때 A-10은 ‘죽음의 십자가’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미국의 국방비 삭감에 정리 대상 됐지만...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A-10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후 미국이 대규모 국방비 삭감에 나서면서 또다시 최우선 정리 대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나 2014년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가 이라크에서 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중동을 휩쓸자, A-10은 다시 중동으로 돌아왔다. 이 때문에 미국은 2016년 A-10 퇴역을 무기한 연기했지만, IS가 정리되고 국제 정세가 다시 잠잠해지자 2020년대 초부터 다시 퇴역론이 고개를 들었다. 미국은 이번에는 작정하고 A-10을 퇴역시키려 달려들었고, 결국 2023년 모든 A-10을 2026년까지 퇴역시킨다는 계획이 확정됐다. 주한미군 A-10 철수도 이 과정에서 결정됐다.
그런데 2022년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드론 전쟁으로 발전하면서 미국 내에서는 A-10 퇴역 결정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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