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금융기관 앞에 대출상품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집값이 상승세를 이어가는 동안 주택 매입에 활용되는 담보대출 비중은 오히려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강도 높은 대출 규제로 집값 상승분을 대출로 충당하기 어려워지면서 자기자금 동원력이 높은 매수자들이 서울 핵심지 시장을 주도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주택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대출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면 자산이나 부모 지원이 없는 2030 청년층 등의 주거 사다리만 끊길 수 있다는 불만이 확산되며 대출 제한을 풀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2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의 ‘서울 집합건물(아파트·빌라·오피스텔 등) 소유권이전등기(매매) 신청 거래가액 대비 채권최고액 비율’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 평균 비율은 45.67%로 집계됐다. 지난해 6월 52.97%와 비교하면 1년 만에 7.29%포인트(p) 낮아졌다. 채권최고액은 금융기관이 대출 원금과 이자·연체이자 등을 회수하기 위해 부동산 등기부에 설정하는 최대 담보 한도다. 통상 실제 대출금의 120% 안팎으로 설정된다. 거래가격에 견준 채권최고액 비율이 낮아졌다는 것은 최근 거래된 집합건물에서 담보대출에 의존한 자금 조달 비중이 줄어들었음을 뜻한다.
자치구별로는 집값 상승 폭이 컸던 성동구의 하락세가 가장 두드러졌다. 성동구 내 비교 가능한 16개 동의 채권최고액 비율은 지난해 6월 평균 52.71%에서 지난달 37.82%로 14.89%p 급락했다. 동작구도 54.47%에서 39.31%로 15.16%p 낮아졌다. 강동구는 51.85%에서 40.05%로 11.80%p, 송파구는 44.83%에서 33.81%로 11.01%p 하락했다. 강남구 역시 43.55%에서 35.58%로 7.97%p 떨어졌다. 다만 이미 채권최고액 비율이 낮았던 서초구는 39.69%에서 37.40%로 2.29%p 낮아지는 데 그쳤다.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는 하락 폭이 더욱 컸다. 용산구 이촌동은 같은 기간 채권최고액 비율이 36.06%에서 15.70%로 20.36%p 하락했다. 송파구 신천동은 35.33%에서 15.70%로 19.63%p 내렸다. 강남구 압구정동은 34.17%에서 18.70%로 15.47%p, 강남구 대치동은 38.64%에서 27.37%로 11.27%p 각각 떨어졌다.
정부가 지난해 6·27 대책을 통해 수도권 주택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한 데 이어 10·15 대책에서 고가주택 대출 한도를 가격별로 6억·4억·2억 원으로 차등화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수도권과 규제지역에서 시가 15억원 이하 주택은 최대 6억 원, 15억 원 초과~25억 원 이하 주택은 4억 원, 25억 원 초과 주택은 2억 원까지만 주담대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억 원짜리 주택을 매입하려면 취득세와 중개보수 등 부대비용을 제외하고도 최소 16억 원을 자기자금으로 마련해야 한다. 30억원짜리 주택은 대출 한도가 2억원에 불과해 매수자가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하는 금액이 최소 28억원에 달한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기존 부채까지 고려하면 실제 대출 가능 금액은 이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
이번 통계는 아파트뿐 아니라 오피스텔과 상가 등을 포함한 집합건물을 대상으로 한다. 오피스텔 등 비주택 부동산은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담보 비율로 거래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파트만 분리할 경우 매매가격 대비 채권최고액 비율은 전체 집합건물 통계보다 더 낮게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출 규제가 무주택 실수요자의 시장 진입까지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23일 대통령 주재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를 앞두고 마련된 온라인 정책 제안 창구에는 약 일주일 만에 4800건 넘는 의견이 접수됐다. 이 중 주택금융 관련 제안이 과반수에 육박하며 가장 많고, 무주택자와 청년·신혼부부에 대해서는 대출 규제를 완화하거나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주를 이뤘다.
시장에서는 대출 한도를 일률적으로 제한할 경우 자산이 부족한 실수요자부터 밀려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 집값이 대출 한도보다 빠르게 오르는 상황에서는 소득이나 상환 능력보다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 규모가 주택 구매 가능성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증여를 받거나 현금 조달 능력이 있어야만 내집 마련이 유리해지는 상황”이라며 “특히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8%에 육박하고 있어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게 힘든 시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수요자에게는 한도를 차등적으로 확대하고 청년 대상 정책대출 금리를 낮추는 등 주거 사다리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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