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형 인간
[진행형 인간] 서서히 말라죽는 나무처럼
글쓴이
허필윤
2026-04-16
14:56
대구경북의 쇠퇴는 갑자기 찾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 공장이 문을 닫고, 청년이 떠난 것이 아니다. 잎은 한동안 무성했다. 그러나 뿌리가 얕았다. 바람이 불자 가장 먼저 흔들린 건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들이다. 1960~70년대 경부축 개발은 대구경북에 실질적인 수혜를 가져왔다. 구미공단이 들어섰고, 포항에 제철소가 세워졌다. 일자리가 생겼고, 인구가 모였고, 지역 경제가 돌아갔다. 그 시절의 기억이 아버지 세대의 정치적 충성심을 만들었다는 점은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초기에는 뿌리도 함께 자라는 듯했다. 지역에는 연구소가 있었고, 기술 인력이 모였고, 산업 생태계가 형성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뿌리에 해당하는 기능들이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연구개발 인력은 수도권으로 이동했고, 본사 기능이 올라갔고, 의사결정 권한이 집중됐다. 생산은 지방에, 설계와 소유는 수도권이라는 분업 구조가 굳어지면서, 지역은 성장에 기여했지만 그 과실을 온전히 누리기 어려운 구조로 변해갔다. 잎은 여전히 무성해 보였지만, 뿌리는 이미 다른 곳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잎은 여전히 무성해 보였지만, 뿌리는 이미 다른 곳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이미지=ChatGPT)
수혜가 종속이 되기까지
반복된 패턴
섬유산업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1980년대다.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후발 국가들과 경쟁에서 밀리면서, 대구의 주력 산업은 빠르게 쇠퇴했다. 대구는 소비도시로 전락해갔고, 구미·포항·울산의 후방기지가 되어가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문제는 그 이후다. 구미의 전자산업 생태계는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기반이 있었다. 반도체 관련 부품·소재 기업들이 집적돼 있었고, 숙련 인력도 존재했다. 뿌리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차세대 반도체 투자의 상당 부분은 수도권으로 향했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진보 정부도, 보수 정부도 수도권 중심의 첨단산업 육성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수도권의 지가는 꾸준히 올랐고, 대기업 입장에서는 더 큰 레버리지를 기대할 수 있는 수도권 입지가 합리적 선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구미의 지가 상승은 이에 턱없이 못 미쳤다. 개별 기업의 선택을 탓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남아있던 뿌리마저 서서히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국가경쟁력’이라는 언어
균형발전은 왜 실패했는가
이 집중을 정당화한 논리가 있다. “수도권이 강해야 나라가 산다.” 첨단 산업일수록 집적 효과가 크고, 연구개발·인력·금융·협력 기업이 밀집된 환경에서만 경쟁력을 갖는다는 논리였다. 한 번 형성된 산업 중심지는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뒤따랐다. 이 담론은 정책 결정의 언어를 서서히 장악해갔다.
지역균형발전을 이야기하면 “고추 말리는 공항” 사진이 올라왔고, 수도권 규제 강화를 언급하면 “기업 죽이기”이라는 딱지가 붙는 경우가 많았다. 뿌리를 살리자는 이야기는 잎을 탐내는 소리로 들렸다. 국가경쟁력이라는 언어는 수도권 집중을 시장의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포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언어 안에서 대구경북의 쇠퇴는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에서 뒤처진 지역의 문제로 재해석되기 쉬웠다.
혁신도시를 만들고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했다. 각종 법률을 만들고, 수도권 집중을 제도적으로 제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뿌리를 다시 심으려는 시도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 흐름을 끊었다. 경제 위기 앞에서 성장의 논리가 다시 전면에 등장했고, 균형발전은 뒷순위로 밀렸다. 위기 앞에서는 언제나 뿌리보다 당장의 열매가 급했다.
공공기관 이전은 행정 분산에는 일정 부분 기여했지만, 민간 기업과 자본의 이동을 유도하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이전한 기관 직원들조차 주말이면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몇 그루의 나무를 옮겨 심었지만, 토양 자체가 바뀌지 않은 셈이었다. 산업, 교육, 의료, 문화 등 모든 인프라가 수도권으로 수렴된 구조에서, 흐름을 바꾸려면 훨씬 더 근본적인 개입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균형발전 정책의 한계는 의지의 부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위기 앞에서 성장 논리가 분배 논리를 압도하는 패턴은 반복됐고, 그때마다 지역 문제는 유예됐다. 뿌리를 살리는 일은 늘 다음으로 미뤄졌다. 이렇게 40년간 누적된 선택들이 지금의 대구경북을 만들었다. 그 선택들이 처음부터 특정 지역의 쇠퇴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뿌리는 한쪽으로 쏠렸고, 다른 쪽의 나무들은 서서히 말라갔다.
허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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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 박사이지만, 정치와 세상에 대한 글을 씁니다.
비록 서울에 살지만, 대구경북에 대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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