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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역을 넘어 문학의 중심으로

모든 것이 중심을 향해 흐르는 시대다. 사람도 자본도 문화도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린다. 문학 역시 그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출판과 언론, 작가들의 활동 무대가 중앙에 집중되면서 지역에서 시작된 문학은 자칫 '지역의 것'이라는 이름 아래 변방으로 밀려나기 쉽다.

지역을 넘어 문학의 중심으로

구글 선호출처 추가

전기작가·수필가

모든 것이 중심을 향해 흐르는 시대다. 사람도 자본도 문화도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린다. 문학 역시 그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출판과 언론, 작가들의 활동 무대가 중앙에 집중되면서 지역에서 시작된 문학은 자칫 '지역의 것'이라는 이름 아래 변방으로 밀려나기 쉽다. 그러나 문학은 본래 중심에서만 태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문학은 가장자리에서 피어났다. 골목과 장터, 바닷가와 산골 마을, 이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문학의 오래된 뿌리였다. 우리가 지역의 문학과 문학상을 소중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11월이면 울산 신문이 주최하는 서덕출 문학상의 계절이 다시 찾아온다. 울산이 낳은 아동문학가 신월 서덕출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우리 아동문학의 창작을 북돋우기 위해 이어져 온 문학상이다.

이제 서덕출 문학상을 단순히 '울산의 지역문학상'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이름과 무게가 제법 커졌다. 전국의 많은 아동문학가들이 작품을 내고 관심을 두는 문학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역문학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역문학상이 꼭 지역 작가만을 위한 상이에야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고장이 낳은 문학인의 정신을 품고 전국의 좋은 작품과 작가를 불러 모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역 문화가 가진 힘이다.

서덕출은 울산이 낳았지만, 그의 문학까지 울산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의 동요와 동시는 세대를 건너 어린이들의 마음을 만나왔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동심과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의 문학 정신 역시 한 지역의 경계를 넘어 우리 아동문학이 함께 기억하고 이어가야 할 자산이다. 문학상을 만든다는 것은 바로 그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불러내는 일이다.

한 문학인의 이름을 기념관이나 책 속에만 남겨둔다면 그것은 과거를 보존하는 일에 머문다. 그러나 그의 이름 아래 오늘의 작가들이 작품을 쓰고 전국에서 새로운 작품들이 모여들며 그 가운데 좋은 작품이 독자와 만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과거의 문학 정신이 현재의 창작으로 이어지고 다시 미래의 문학을 낳기 때문이다.

울산에는 이러한 문학적 전통을 이어가는 또 하나의 축이 있다. 울산매일이 울산 출신 소설가 난계 오영수의 문학 정신을 기리는 오영수 문학상을 이어가고 있다. 울산 신문의 서덕출 문학상과 함께 지역 언론이 울산이 낳은 문학인의 이름을 오랫동안 지켜왔다는 사실은 산업도시 울산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가을 우리가 특별히 눈여겨볼 것은 서덕출 문학상이 걸어온 길이다. 처음에는 울산이라는 지역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전국의 많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문학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문화의 흐름이 반드시 중앙에서 지역으로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지역에서 만든 문학상으로 전국의 작가들이 모여들고 그곳에서 선정된 작품이 다시 전국의 독자를 만난다. 중심과 지역이라는 오래된 구분이 문학 앞에서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지역성이란 무엇인가. 지역성은 울타리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으로 나아가는 뿌리다. 세계적인 문학작품들도 처음부터 '세계'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느 작은 마을과 골목, 한 가족과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에서 출발했다. 그 구체적인 이야기가 인간의 보편적인 기쁨과 슬픔을 건드렸을 때 지역의 이야기는 세계의 이야기가 되었다.

울산 역시 그런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도시다. 태화강과 영남알프스가 있고 동해의 바다가 있다. 농촌과 어촌의 오랜 기억 위에 거대한 산업도시가 세워졌으며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와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었다. 산업화의 거센 시간을 살아온 노동자들의 삶이 있고 오래된 골목과 장터, 바닷가 마을과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서덕출과 오영수 같은 문학인이 태어났다.

우리는 울산을 말할 때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을 먼저 떠올린다. 그것은 울산의 오늘을 만든 소중한 역사다. 그러나 한 도시의 품격이 생산량과 수출액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도시가 어떤 사람을 기억하는가, 어떤 정신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가도 중요하다. 산업이 도시의 몸을 세운다면 문학과 예술은 그 도시에 기억과 마음을 입힌다. 그런 점에서 서덕출문학상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지역 언론이 한 문학인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서 출발해 전국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문학의 장을 만들었다는 것은 지역 문화의 건강한 힘을 보여준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동안 쌓아온 문학적 권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다. 문학상의 권위는 상금의 크기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얼마나 좋은 작품이 모이는가, 얼마나 공정하고 엄정하게 작품을 가려내는가, 어떤 작가들이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고 그들이 이후 어떤 작품을 남기는가가 한 해 두 해 쌓이면서 문학상의 무게가 만들어진다.

울산이라는 도시가 오랜 시간 한 문학인의 정신을 지켜왔고 그 이름 아래 좋은 작품을 가려내는 문학적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전국의 작가들이 자기 작품을 들고 울산을 찾는다는 그것 자체가 이미 지역문학상이 만들어낸 소중한 문화적 성과다. 이제 서덕출 문학상은 울산에서 태어난 문학상을 넘어 한국 아동문학의 좋은 작품들이 만나고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나는 자리로 더욱 성장해야 한다.

문학의 중심은 반드시 서울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면 어디든 문학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지역에서 시작한 좋은 문학상이 전국의 작가를 불러 모으고 그곳에서 태어난 작품이 다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면 이미 그곳은 하나의 문학적 중심이다. 가장자리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새로운 중심이 피어난다.

서덕출 문학상이 울산이라는 뿌리를 단단히 내리면서도 전국의 작가와 독자를 품는 큰 나무로 오래 자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에서 더 많은 좋은 작품과 작가들이 만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올가을 우리가 다시 서덕출이라는 이름을 기다리는 이유다. 최경호 전기작가·수필가

최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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