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후 수시간 뒤 뇌, 기계로 기초 활동 복원
세포는 살아있지만 의식·신경 활동은 없어
쥐 뇌에선 반응 없던 신약, 인간 뇌서 효과 확인
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생성한 이미지. 챗GPT
몸에서 분리된 인간의 뇌가 관에 연결된 채 약을 흡수하고, 그 반응을 기록한다. 철학 시간에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통 속의 뇌’ 사고실험이 절로 떠오른다.
이는 사실 뇌 질환을 고칠 신약 개발용 실험 장면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뇌로는 할 수 없는 실험을 통해 신약 개발 기간을 줄이고 부작용을 미리 잡아내는 것이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20일(현지시각) 뇌의 생명 활동을 단기간 유지하면서 필요한 연구를 진행하는 기술을 소개했다.
◆몸 없이 살아 있는 뇌=
미국 바이오테크 스타트업 벡스오그(Bexorg)는 사망자의 뇌를 되살려 신약 반응을 확인하는 플랫폼을 운영한다.
엄밀히 말하면 죽은 뇌를 ‘다시 살리는’ 것이 아니다. 벡스오그는 산소와 영양 공급이 끊겨 기능을 잃은 뇌에 인공혈액과 산소를 강제로 공급해 세포가 산소를 소비하고 포도당을 분해하는 등 기초 생화학 반응을 보이도록 만든다. 신경세포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거나 의식이 생기는 것과는 다르다. 뇌세포가 살아는 있지만 활동은 하지 못한다.
사망 후 수시간이 지나 업체에 도착한 뇌는 외과의가 약 30분간 혈관을 정비하고 튜브와 밸브를 삽입한 뒤 장치에 연결된다. 이후 세포와 단백질 반응 등 수백개의 데이터를 수집한다. 24시간이 지나면 뇌를 수백조각으로 나눠 정밀분석한다.
인공적으료 생명활동을 되살려내는 장치와 뇌 모습. 벡스오그 누리집
◆왜 사람 뇌를 가지고 실험을?=
신약 개발의 걸림돌 중 하나는 동물 실험과 사람의 반응이 다르다는 점이다. 쥐의 뇌에서 효과적인 약이 인간 뇌에서는 막히기도 하고, 쥐에게 안전한 용량이 사람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즈보니미르 브르셀랴 벡스오그 최고경영자는 “60~80년간 살아온 사람의 뇌 세포는 그 시간의 환경과 약물 노출, 유전적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며 이 실험이 실제와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체에 따르면 제약사 바이오헤이븐(Biohaven)이 해당 기술로 파킨슨병 관련 약물을 실험했다. 그 결과 쥐 실험에서 반응이 없던 약이 인간 뇌에서는 예상 용량의 20분의 1 수준에서 효과를 보였고 개발 기간을 1년 단축했다고 전했다.
◆“의식이 살아나는 건 아닌가요?”=
벡스오그 측은 의식을 차단하고자 이중 안전장치를 갖췄다고 설명한다. 사망한 지 수시간 지난 뇌는 이미 의식에 필요한 신경 활동이 거의 없는 상태이고, 여기에 더해 마취제 프로포폴로 전기 활동을 차단한다.
브렌던 패런트 뉴욕대학교 생명윤리학자는 실험에 사용되는 뇌엔 의식을 발현하기 위한 신경 발화가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뇌 기증은 장기이식 기증 단체를 통해 이뤄지며, 회사 측은 목적과 과정을 이해한 가족 대부분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몸 전체의 순환계가 없어 뇌척수액 배출 같은 일부 생리 기능이 생전과 다를 수 있다. 또한 전기 활동을 차단한 상태라 약이 발작을 일으키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회사 측은 향후 일부 뇌 조각에서 마취를 풀고 전기 활동을 관찰하는 실험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용어설명] 통 속의 뇌
철학자 길버트 하먼이 고안하고 힐러리 퍼트넘이 발전시킨 사고실험. “악한 과학자가 살아 있는 사람의 뇌를 몸에서 꺼내 영양액이 담긴 통에 넣고, 신경 말단을 슈퍼컴퓨터에 연결해 모든 것이 정상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관이 이 사고실험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