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영의 칸타빌레-삶을 관통하는 클래식 큐레이션] “끝까지 살아보라!” 삶을 응원하는 90분 대서사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끝장 보고 싶은 마음 (어쨌든 피날레)-마지막 악장
클롭슈토크의 시 ‘부활’ 듣고 영감 얻어 완성
‘인간은 왜 사는가’ ‘고통은 왜 존재하는가’ 질문
행복했던 순간·인생의 허무함 등 5악장 구성
“휘둘리지 말고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가라”
세상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인생의 답’
전곡 부담스럽다면 5악장 합창부터 듣기 추천
2026년 10월 13일(화) 19:15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은 대규모 관현악 편성과 합창이 어우러진 대작이다. 올해 창단 50주년을 맞은 광주시립교향악단(상임지휘자 이병욱)이 창단 기념 연주로 광주예술의 전당에서 진행한 ‘부활’ 연주 모습. <광주시향 제공>
42.195km! 이 거리를 달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달리기라면 중학교 때 체력장에서 4km 오래달리기도 포기했던 내가 아니던가! 그런 사람이 올해 두 번째로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코로나 시기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5km, 10km, 하프까지 몇 번의 대회에 참가했고, 마라톤의 맛을 느끼고 나니 나도 모르게 정식(Full)마라톤 욕심이 생겼다. 첫 풀마라톤의 경험은 아주 감동적이었지만 몸은 힘들었다. 30km 지점부터 확실히 체력이 떨어지고, 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어떻게 결승선에 들어섰는지,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어쩌다 보니 나는 다시 풀마라톤 출발선에 서 있었다. 출발선의 매트를 밟는 순간부터 넷타임 (Net Time)은 기록된다. 독주회에서도 첫 음이 제일 많이 긴장되고 중요한데 마라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첫 곡의 첫 음이 울리는 것처럼 매트를 밟는 첫 스텝이 내는 소리는 뭔가 쫄깃하다.
달리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주변 사람의 말도 들리고, 옆의 풍경도 보이고, 햇살과 바람과 공기도 한껏 느낀다. 반환점을 돌고부터는 정말 나와의 싸움이었다. 반환점을 돌고 나면 한두 명씩 걷는 사람이 등장한다. 나 역시 걷다가 뛰기를 반복했다. 37km 지점부터는 한계에 도달했는지 정말 회송 차량이 타고 싶었는데, 시각장애인 러너와 80대 장애인 러너의 뒷모습을 보며 묵묵히 달렸다. 빨리 달리는 것은 이미 포기했고 나의 목표는 피니쉬(결승선)였다.
마라톤에서는 DNF라는 단어를 쓰는데, ‘Do not finish’의 줄임말이다. 많은 사람이 중도 포기를 의미하는 DNF만은 하지 않길 바란다. 꾸역꾸역 달리다 보니 2km 정도의 마지막 업힐(언덕길)을 지나서 드디어 피니쉬에 도착했다.
사점(死點)인 37km부터는 더 이상 남은 거리를 보지 않고 음악 들으며 그냥 달렸다. 나의 마지막을 함께한 음악, 바로 그 음악이 구스타프 말러(G.Mahler 1860~1911, 오스트리아) 교향곡 2번 ‘부활’이다.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두 명의 독창자와 합창단 그리고 방대한 오케스트라가 함께 펼쳐내는 웅장한 곡이다.
구스타프 말러
◇웅장한 구성과 합창이 결합된 대작
기원전 47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젤라 전투에서 이긴 후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re, videre, vincere)’를 외쳤지만, 나는 풀코스 마라톤을 마친 후 ‘왔노라, 들었노라, 이겼노라!’를 외치고 있었다. 마지막에 말러의 음악이 없었더라면 나는 피니쉬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의 마지막 5악장 피날레 합창 부분이 날 이기게 했다. 피날레(Finale)는 이탈리아어로 ‘마지막’ 또는 ‘종결’을 뜻하는 단어로 음악에서는 교향곡이나 소나타, 협주곡 등의 마지막 악장을 의미한다. 곡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때문에 대체로 빠르거나 모든 악기가 등장하는 웅장한 사운드로 연주되는데, 그 의미에 아주 적확하게 어울리는 곡이 바로 말러 교향곡 2번이다.
말러는 번호 대신 제목이 붙은 ‘대지의 노래’와 미완성인 교향곡 10번까지 합하면 모두 11곡의 교향곡과 수많은 가곡을 작곡했다. 말러 교향곡 2번 다단조 ‘부활’(Resurrection)은 1888년부터 1894년에 걸쳐 완성된 대작으로, 말러 생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교향곡 중 하나다.
이 곡은 말러가 평생 치열하게 고뇌했던 주제인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후세계와 영혼의 구원을 장엄한 음악 서사로 풀어낸다. 전체 5악장 구성이고 평균 연주 시간은 90분이다.1889년부터 작곡을 시도했지만 1894년에 완성됐다. 사랑하는 동생 오토가 자살한 1895년 베를린에서 말러의 지휘로 초연되었지만, 청중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5년 뒤 1900년 뮌헨에서의 연주가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08년 뉴욕과 파리에서도 크게 호평받게 된다. 이때부터 ‘말러’의 곡은 대중으로부터 호불호가 나뉘었다. 그의 음악은 초연에 실패하고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이 넘어서야 진가를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1악장 ‘영웅의 죽음과 장송 의식’, 2악장 ‘죽은 영웅의 행복한 과거 회상’, 3악장 ‘일상의 어수선함’, 4악장 ‘태초의 빛’, 5악장‘절망의 울부짖음, 심판, 부활, 영생’ 등 각 악장에 제목이 붙어있다.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GMW 30 c-moll’
지휘 레너드 번스타인,
런던교향악단/에든버러페스티벌합창단.
◇인간은 왜 사는가 질문을 던지다
처음 1악장은 현악기가 동시에 연주하는 총주가 굉장히 익숙한 선율이다. 광고나 TV 프로그램의 인트로에서도 무서운 분위기를 조장하며 등장하는 멜로디다. 저음의 콘트라베이스가 심판의 날을 상징하는 거대한 선율을 울리고 현악기가 죽음을 상징하는 선율과 용서를 구하는 테마를 함께 연주한다. 인간은 왜 사는지, 고통은 왜 존재하는지 등 원천적이고 진지한 질문을 음악에서 펼쳐낸다.
말러는 1악장을 작곡하고 나서도 교향곡에 합창이 삽입되었던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아류가 될까 두려워서 마지막 합창 피날레의 가사와 구성을 정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그러다 자신을 혹평했던 당대 최고의 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급사를 하게 되는데,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프리드리히 클롭슈토크의 시 ‘부활(Die Auferstehung)’을 듣고 영감을 얻어 마침내 곡을 완성했다.
2악장은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노래하는 듯 평온한 선율이고, 3악장은 겉보기에는 유머러스하고 분주하게 흐르지만 사실은 인생의 허무함과 세상의 소란스러움에 대한 냉소가 담겨 있다. 4악장에서는 메조소프라노의 독창으로 시작되며 5악장은 한 악장만 해도 35분을 넘는 긴 악장이다. 5악장은 무대 뒤나 멀리 객석에서 연주되는 호른과 트럼펫 등 금관 악기의 소리를 통해 음악의 원근감을 느껴보고 대미를 장식하는 두 독창자와 파이프오르간의 긴 울림에 빠져 황홀감을 느껴보길 추천한다.
연주 시간이 긴 말러 음악의 특징상 전곡을 다 듣는 일은 꽤 인내를 필요로 하는데, 처음이라 부담스럽다면 2번 교향곡의 5악장 중에서도 마지막 부분 합창부터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 믿음을 가지라,
그대의 탄생은 헛되지 않다.
그대의 존재, 고통 모두 헛되지 않음을 믿으라!
피조물은
멸하기 마련이고
멸한 것은 다시 부활하기 마련이다!
이제 두려움을 버리고
부활할 준비를 갖추라!
-말러 ‘교향곡 2번’ 5악장 합창 가사 발췌
합창은 모든 악기가 심판의 날에 있는 혼돈스런 상황을 불안하고 절규하듯 울부짖다가 클라리넷과 피콜로의 조용한 연주에 이어 합창단이 그 어떤 소리보다 고요하게(pppp) ‘일어나라’를 읊조리며 시작된다. 이 부분은 온몸이 찌릿할만큼 전율이 돋는다. 공연장에서 실연을 듣는 경우 숨을 쉬는 것도 조심스럽다. 관현악이 총출동하며 엄청난 음량의 음악이 작렬하는 최고의 악장이면서 마지막 부분의 합창에서는 스스로 되돌아보게 되는 엄숙한 악장이다.
◇살아내라, 끝까지 살아보라
말러는 “중요한 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실패로 좌절하거나 세상의 칭찬에 으쓱해져 한눈팔지 말고 흔들림 없이,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가라”는 말을 남겼다.
사는 게 만만하지 않을수록,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무너지는 순간에 말러는 손을 내밀어 우리를 부활시킨다. 달리는 도중 머릿속에서 수많은 잡념이 나를 주저앉게 했지만 말러 덕에 끝까지 달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쨌든 피날레! 불안과 두려움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전체 5악장까지 연주되는 동안 음악은 인생처럼 쉼없이 엎치락뒤치락한다. 하지만 그런 부침(浮沈)은 5악장 피날레에 도착해서 인생의 답을 알려준다. 살아내라고! 어쨌든 끝까지 살아보라고! 말러교향곡은 당신의 지난 과정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말해준다. 말러와 마라톤 덕택에 인생을 배워간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현영 전문가
▲피아니스트·아트 앤 소울 대표
▲독일 쾰른 국립음대 전문연주자과정 졸업·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최고전문연주자과정 졸업
▲저서 ‘365일 클래식이라는 습관’ ‘네 인생에 클래식이 있길 바래’ ‘연표로 보는 서양음악사’ 등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전남도교육연수원 등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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