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리스크 넘어, 원전·재생에너지·ESS·수소를 묶는 선단형 에너지·산업 전략으로 ‘에너지 수입국’에서 ‘에너지 시스템 설계국’으로 가야
조선규의 문제 핵심. 조선규 편집위원
[뉴스클레임]
대한민국 경제는 중동 정세가 흔들릴 때마다 기로에 선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석유제품의 약 5분의 1, LNG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핵심 병목지대로, 이 지역의 긴장은 곧 우리 산업 원가·물류비·환율·전력비용으로 직결되는 위험이다.
한국은 1차 에너지 소비의 약 85%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그 대부분을 수입하는 나라로서, 에너지 가격 변동이 곧 제조업 수익성과 국가 안보를 동시에 흔드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사건 대응보다는 경제 안보의 시스템이 중요하다.
우선 정부·공공기관·무역·금융·연구기관에 흩어진 공급망, 원자재, 통상, 운송 정보를 통합하는 경제 안보 종합 포털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자체 정보망이 취약한 중소기업이 위기 시 대체 수입선, 긴급 금융, 수출입 통제 변화, 물류 리스크를 한눈에 볼 수 있어야 한다. 공급망 안보의 핵심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속도와 연결성이다. 어떤 항로가 막혔는지, 어떤 원료 재고가 위험한지, 어떤 정책금융을 즉시 활용할 수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체계 없이 경제 안보는 작동하지 않는다.
정부 안에는 상설 경제 안보 전략팀, 이른바 ‘리베로형 조직’이 필요하다. 에너지 문제는 산업 정책, 통상 규범, 외교·금융과 맞물려 움직이지만, 현재의 위기 대응은 부처별 분절이 여전해 컨트롤타워 기능이 약하다. 국제에너지기구도 한국의 기후·에너지 정책이 비구속적 계획에 의존해 정치 변화에 취약하다며, 정부 내부 조정 기능 강화를 권고한 바 있다. 중장기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상설 조직 없이는 거시전략이 유지되기 어렵다.
산업 정책 역시 ‘부문별 지원’에서 ‘선단형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반도체를 키우겠다면 전력망과 용수, 무탄소 전력, 인재, 세제, 통상 협상을 한 묶음으로 보고 설계해야 하고, 배터리를 육성한다면 광물 확보, 재활용, 수출 규제, 전력비용, 환경 기준을 패키지로 관리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무탄소 에너지 공급 확대가 전력의 탄소배출을 줄여 반도체·배터리 등 수출품의 탄소 규제 대응력과 경쟁력을 높인다고 밝힌 바 있다.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비용이 아니라 수출 경쟁력의 전제가 되고 있다.
전력 시스템 개혁은 에너지 안보와 산업 혁신의 교차점이다. 한국은 주변국과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은 ‘에너지 섬’으로,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으나 발전 설비는 해안과 지방에 분산돼 있다.
송전망 투자가 지연되면 발전소를 지어도 전기를 보내지 못하는 병목이 발생한다. IEA는 고립 계통인 만큼 안정성과 유연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배터리 저장장치(ESS), 시장 개혁, 계통 투자를 병행하라고 권고하고, 한국도 에너지저장산업 전략과 ESS 중앙계약시장을 통해 2038년까지 23GW 추가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값싼 전기만으로는 더 이상 산업 경쟁력을 보장할 수 없으며, 저탄소·안정·예측 가능성이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에너지 포트폴리오는 단일 해법이 아니라 복합 해법이어야 한다. 원전, 재생에너지, 저장장치, 수소, 스마트그리드를 묶는 현실적 조합이 필요하다. 2024년 기준 한국 발전량 607TWh 중 원전은 약 189TWh로 30%를, 석탄은 33%, 가스는 25%를 차지하며, 원전은 여전히 산업 전력의 기저이자 수출 산업이다.
한국은 26기 원전을 운영하며 해외 신규 원전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등 수출 경쟁력을 재확인했다. 동시에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IEA 회원국 중 최하위권으로, 태양광·풍력·저장장치 확대와 더불어 고효율 유연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등 차세대 기술에서 소재·공정 경쟁력을 선점해야 한다.
수소·암모니아는 만능 해법이 아니라 전략적 자원이다. 한국은 일찍이 수소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산업·중대형 운송 등 대체가 어려운 부문에 집중하지 않으면 비용 부담만 키울 수 있다.
탄소 규제 대응 또한 환경 정책이 아니라 산업 생존 전략이 됐다. 한국 배출권거래제는 국내 배출의 약 80%를 포괄하는 세계적 규모지만, 앞으로는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보다 ‘깨끗하고 안정적인 전기를 확보한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유리해질 것이다.
에너지 위기는 한국에 방어력과 전환 능력을 동시에 요구한다. 방어력은 공급망 정보 포털, 상설 경제 안보 전략팀, 송전망 확충, 비상 대응 체계에서 나오고, 전환 능력은 원전 수출, 차세대 태양전지, ESS, 수소, 스마트그리드 같은 기술·제도 혁신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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