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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정인호 객원기자칼럼] 환율 급등, 정책 점검의 계기로 삼아야

2차 세계대전 후 출범한 브레턴우즈 체제는 달러 본위제와 고정 환율제를 기조로 한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통해 관세 장벽을 낮췄다. 30년에 걸친 황금기는 안정된 통화제도와 자유무역에 힘입어 이어졌다.

[정인호 객원기자칼럼] 환율 급등, 정책 점검의 계기로 삼아야

서울의 한 환전소. 사진=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 후 출범한 브레턴우즈 체제는 달러 본위제와 고정 환율제를 기조로 한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통해 관세 장벽을 낮췄다. 30년에 걸친 황금기는 안정된 통화제도와 자유무역에 힘입어 이어졌다.

1971년 달러의 금태환이 중지되고, 서서히 변동환율제로 전환됐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공식화되면서 금융화와 세계화가 본격화됐다. 미국은 제조업을 포기하고 압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금융을 통해 세계 경제를 지배한다.

달러는 세계 통화이므로 어떤 나라에게나 필요하다. 달러는 이자를 주지 않으므로 대신 미국 국채를 보유한다. 수출을 통해 달러를 벌어들인 나라는 미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달러를 미국으로 돌려보낸다. 이를 수출 달러의 환류라고 부른다.

미국으로 돌아온 달러는 미국 주가를 띄워 올린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은 고수익을 노리고 미국 주식에 투자한다. 미국도 풍부한 달러를 이용해 다른 나라에 투자한다. 주가가 뜨는 곳에 투자하고 꼭지라고 생각하면 팔고 다른 나라로 이동한다. 그러면 환율이 출렁거린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경제성장률이 점진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2010년대는 3%대를 유지했지만, 2020년대 들어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면 1~2%대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기업은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높은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해외 투자 비중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지정학적 요인이 결합된다. 조 바이든 정부 시절부터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도했고, 도널드 트럼프 2기 들어서는 관세를 통해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우리 기업의 미국 투자는 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낙후된 지배구조와 낮은 성장성으로 인해 국내 증시에서는 주가가 낮게 형성됐다. 연기금·보험사와 개인은 국내 증시를 외면하고 주로 미국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렸다. 2015년 대외금융자산 중 기관투자자의 증권 투자 비중은 8.7%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3분기에는 22.8%로 급증했다.

개인의 비중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국내 거주자가 해외 주식을 매수해 예탁결제원에 보관해 두고 있는 금액은 2019년 86억 달러(약 13조 1107억원)에 불과했으나 지난 5월 기준 2003억 달러(약 305조 3574억원)에 이른다. 최근 국내 증시의 활황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줄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2024년 해외 자산 보유 규모는 2조 5100억 달러(약 3821조 2240억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34.4%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6위로 그렇게 큰 것은 아니다. 이는 영국(499.7%), 프랑스(357.7%), 독일(309.2%), 일본(264.4%)에 비해 크게 낮다. 다만 미국 국채 등 준비 자산의 비중이 낮아지고 직접 투자·주식의 비중이 올라가고 있다. 미국에 대한 투자 비중도 현저하게 늘고 있다. 향후 이러한 기조는 지속될 것이다.

최근 환율 급등은 저변의 변화를 반영한다. 애초에는 국내 기업의 미국 시설 투자, 연기금 등의 주식 투자 등에 기인했다. 국내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급등했다. 인공지능(AI) 붐이 불고 가치 사슬의 끝단에 있는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또 다시 환율이 올라갔다.

지금이 고점이라고 판단한 외국인들이 주식을 매각하고 환전하면서 원화 대비 달러 가치가 급등했다. 올해 들어 외국인의 순매도 금액은 121조원에 달한다. 지난 1월 1일 달러 당 1442원이던 환율은 지난 9일 1527원로 급등했다.

2024년 666억 달러(약 101조 5317억원)에 불과하던 외국인의 국내 증권 보유 금액은 지난해 1311억 달러(약 199조 8620억원)로 두 배 늘었다. 그렇다고 시가총액 대비 외국인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다. 2024년 32.2%였으나 지난 3월 기준 36.3%로 소폭 늘었다.

외국인이 특별히 국내 주식에 많이 투자해서가 아니라 국내 주가가 많이 올라 보유 금액이 는 것이다. 문제는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환전한다는 것이다. 시세 차익을 실현할뿐 아니라 환율 상승으로 인한 환차익도 얻는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 흑자액은 1230억 달러(약 187조 5135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그를 능가하는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환율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해외 사업 비중이 늘어난 국내 대기업들도 벌어들인 달러를 현지에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의 매도와 환전이 1차적인 환율 급등의 원인이지만 이에 편승해 투기적인 이익을 노리는 세력도 있다. 기업들이 수입 대금을 앞당겨 지급하거나 반대로 수출 대금을 늦게 수령하는 방식으로 환차익을 거둘 수 있다.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역외 차액결제선물환 거래’(NDF)다. 한국 외환 시장이 문을 닫은 시간에 싱가포르·홍콩·뉴욕 등 해외 시장에서 ‘나중에 원화를 특정 환율로 사고 팔겠다’고 계약하고 차액만 주고받는 거래다.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이 오고 가지만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낮에 열리는 국내 외환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셈이다.

정부가 으름장을 놓지만 막상 제재할 방법도 없다. 외환 시장 개방을 표방하면서 NDF 시장의 문을 닫을 수도 없다. 정부는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만큼 팔면 환율이 안정되고 NDF 시장에서의 투기도 가라앉을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달러 체제에 편입된 개방 경제다. 또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가치 사슬과 국제 금융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흐름이 바뀌고 요동치면 대한민국이라는 배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의 환율 급등은 일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다. 국내의 성장 둔화와 자본의 유출, 그리고 AI 붐 등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다.

성장의 혜택은 AI와 관련된 일부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철강∙석유화학∙자동차 등은 오히려 고전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급등과 가계부채 증가로 소비 여력은 줄고 이는 내수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겉모양만 보고 환호할 상황이 아니다.

정부가 부동산에 몰리는 돈을 주식 등 생산적 분야로 돌리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아직 유통 시장에 국한되고 기업 공개와 증자 등 실질적으로 생산적인 영역으로 흐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중상장 금지 등으로 증자는 억제되고 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은 지배주주의 전횡을 억제한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투자 역량을 저해할 수 있다.

정부는 재정을 동원해 마중물을 붓고 첨단 분야의 경쟁력을 올리려고 한다. 세계적인 경쟁 양상을 볼 때 이 또한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의 AI 투자는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붐이 꺼지면 우리 경제도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정책의 엑셀을 과하게 밟고 있는 것이 아닌지, 속도를 차제가 감당할 수 있는지 주의 깊게 살피며 운전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환율 급등은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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