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 폭염 속에 듣는 농담이 허무하다. “그래도 올해가 낫다. 내년은 더 더울 테니까.” 7월 중순 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가 측정 이래 최고로 높았고, 이런 엘니뇨가 지구온난화와 겹쳐서 내년 여름의 더위를 예고한다. 곳곳에서 가뭄, 홍수, 산불 등 극한기후가 빈발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국제회의와 기업 경영전략의 중심에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공급망, 에너지안보가 있다. 기후변화는 어디서 다뤄지고 있는 걸까. 질문을 정리해보자.
첫째, 미국은 기후변화 대응을 포기한 건가.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고, 35년 무탄소 전력 및 50년 넷제로 달성을 위한 세부 목표를 철회한 것을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화석연료 채굴을 지원하고 재생에너지와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없앤 것도 트럼프 정부의 선택이다. 하지만 에너지의 혁신과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차세대 원전, SMR, 핵융합, CCUS, AI 전력망이 주요 대상이다. 탄소배출이 많은 수입품에 추가 부담을 지우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미·중 경쟁이 주요 판단기준이다. 미국에 에너지와 기술 패권은 최우선 고려사항이다. 주요 기업들의 RE100도 지속된다.
둘째, 탄소배출 억제만으로 지구온난화를 통제할 수 있을까. 2024년 이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높은 수준을 넘나들고 있고, 2도 상승선 돌파도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지구공학을 과감하게 활용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성층권에 에어로졸을 살포해 태양광 반사를 늘리거나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직접 제거하는 기술 등이 논의된다. 지구온난화가 상당 부분 진행된 만큼 게임체인저를 적극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 근거다. 하지만 지구생태계에 미칠 부작용과 국제 거버넌스의 부재, 배출 감축을 회피하려는 도덕적 해이가 걸림돌이다. 배출 감축과 적응 외에 신기술 관리도 기후정책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셋째, 그린 전환과 AI 전환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까. AI는 막대한 전력 수요를 유발해 탄소 감축을 어렵게 하지만, 전력망 최적화, 제조공정 혁신, 에너지 효율 향상, 탈탄소 기술 개발과 적용을 가속화한다. AI로 인한 전력 및 용수 부족 문제는 결국 에너지 전환에 성공해야 해결할 수 있다. 두 가지 과제는 함께 풀어야 할 ‘쌍둥이 전환’인 것이다. AI가 다른 산업, 기술, 도전 과제로 가는 관심과 자금을 구축해 일방적 쏠림과 사회불안을 초래하지 않도록 과정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은 현실인가. 기후변화를 거대한 음모나 사기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매년 눈으로 확인하는 사실, 과학적 증거들로 기후변화가 현실임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문제 해결 방식으로서의 탄소중립에 대해서는, 더 큰 시각차가 있다.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느라 치러야 하는 비용 때문이다. 에너지 가격과 생산비용 상승, 규제 차이에 의한 상대적 경쟁력 약화가 그 사례다. 지구를 지켜내는 것은 최우선 가치이다. 탄소중립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구조 전환에는 승자와 패자, 생존자와 사망자가 나오게 된다. 한국의 기업, 개인이 전환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이 먼저다. 도덕적 해이나 그린워싱과 함께 기후행동에 대한 찬반 양쪽의 종교적, 정치적 도그마도 경계해야 한다. 정부의 균형추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첫째,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은 끝난 것이 아니다. 최근 미·중·일,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에서 공통점을 찾자면, 산업경쟁력과 국가안보라는 목표가 두드러진다. 기후 기술의 중요성은 더 부각된다. 둘째, 기후당사국총회 등 국제 논의도 새로운 목표보다 국가별 이행, 산업별 전환, 기후금융의 활성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셋째,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항로가 점차 열리면서 새로운 무역 기회와 국제 갈등이 생기고 있다. 북극 지역의 가스, 희토류 등 자원 개발도 지리 전략적 고려사항이다.
에너지를 수입해야 하고 국토가 좁고 재생에너지 입지가 제한되는 한국은 이념과 명분에 매달릴 여유가 없다. 성장률을 높이고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투자를 늘리면서도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 가정·교통·산업 등 경제활동 전반을 전기화하되, 전기 가격을 낮추면서 무탄소 전원을 늘려야 한다. 키는 커야 하는데 몸무게는 줄여야 하는 극한 도전인 것이다. 반도체·배터리·ESS·원전·수소·저탄소 제조공정·쇄빙선 건조 같은 우리의 강점을 결합한다면, 기후변화의 도전도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이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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