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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전장에서 못 쓰는 AI는 무용지물…K-방산, 벤처·스타트업에 빗장 풀어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인공지능(AI)과 드론 등 무인전투체계가 전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AI가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피지컬 AI’가 미래 국방혁신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이유다.

전장에서 통하는 AI, 스타트업과 함께 여는 K-방산의 미래를 그린 AI 이미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인공지능(AI)과 드론 등 무인전투체계가 전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AI가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피지컬 AI’가 미래 국방혁신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이유다. 하지만 기술개발만으로 전투력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혁신기술을 실제 군에 도입하고, 이를 개발한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산업생태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는 데이터와 공통 플랫폼, 획득제도를 혁신하고 군은 실증과 신속한 구매를 통해 기술의 전력화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국방 AI 혁신과 K-방산 유니콘 육성은 하나로 연결된 과제다.

지난 반세기 K-방산이 무기체계 국산화와 수출 확대를 통해 성장했다면, 앞으로의 경쟁력은 AI와 소프트웨어, 무인체계 등 혁신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실전 전투력으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준범 국방부 국방인공지능기획국장은 8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국방 AI 혁신생태계 조성과 K-방산 유니콘 육성 전략’을 주제로 열린 제11회 부국강병포럼(위원장 강은호)에서 “미국과 중국이 AI를 군사작전과 의사결정에 적극 활용하는 사이 우리 군의 AI 활용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본격적인 전력화를 위한 기반도 충분하지 않다”고 냉철히 진단했다.

실제로 군이 보유한 데이터는 많지만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제된 양질의 데이터는 부족하다. AI 모델을 개발하고 배포할 공통 플랫폼도 미흡하다. GPU 등 컴퓨팅 인프라와 전문인력, 보안체계, 관련 예산 및 획득제도도 함께 갖춰야 한다. 개별 사업마다 서로 다른 데이터 처리체계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중복투자가 발생하고 기술 축적에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전 국장은 “국방 AI 공통 플랫폼과 국방 특화 AI 모델 개발을 통해 독자적인 소버린 국방 AI 역량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며 “국방 AX 거점과 데이터 안심구역을 통해 군 데이터의 수집·정제·활용을 지원하고 민간기업의 AI 실증 기회도 확대하겠다”고 피력했다. 이어 “국방 AI는 개별 기술개발을 넘어 데이터와 플랫폼, 실증, 획득제도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혁신체계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준범 국방부 국방인공지능기획국장이 정부의 국방 AI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정부가 독자적인 국방 AI 역량 확보에 나선 배경에는 해외 기술 의존에 따른 우려도 있다. 팔란티어 등 해외 기업의 AI 플랫폼을 활용하면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지만, 핵심 플랫폼을 특정 외국 기업에 의존할 경우 기술주권과 국가안보 측면에서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국방 AI 공통 플랫폼과 국방 특화 AI 모델, 국방 AX 거점 구축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를 뒷받침할 지속적인 투자와 제도 혁신이 병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재봉 SNT다이내믹스 실장은 드론과 로봇 등 유·무인복합체계 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군이 당장 필요로 하는 기술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신속하게 제공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근 전쟁에서 무인지상로봇의 활용이 확대되는 데 주목하면서 피지컬 AI와 자율화 기술을 실제 전장 운용에 연결하기 위한 기술개발과 실증체계 마련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국방 AI의 성과지표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개발 과제나 시제품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보다 실제 군부대에서 얼마나 활용되는지, 작전의 효율성과 생존성을 얼마나 높였는지가 중요하다. 실증사업이 전력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연구개발 단계에 머무는 악순환도 끊어야 한다. AI는 기술 변화가 빠른 만큼 신속한 도입과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성능개량이 가능한 획득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전 국장은 “AI 스프린트 등 신속 실증사업을 확대하고 실증 성과를 실제 군 전력화와 연계할 것”이라며 “드론과 로봇, 자율주행 등 피지컬 AI의 군 활용을 확대하는 한편 AI 소프트웨어의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구독계약 등 새로운 획득·운영 방식도 검토하겠다”고 소개했다.

정부와 군, 방산 대기업, 중소벤처기업, 대학 관계자들이 국방 AI 혁신과 K-방산 유니콘 육성방안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포럼에서는 AI·소프트웨어·로봇 등 첨단기술을 보유한 벤처·스타트업이 방산시장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국방 AI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스타트업에 연구개발 지원금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기술을 검증할 실증 기회를 확대하고, 그 성과가 정부의 최초 구매와 후속 조달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또 정책금융과 민간투자, 수출지원도 유기적으로 연결해 기업이 연구개발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매출과 사업 기반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이 대기업의 부품 공급자나 하청업체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적인 기술과 제품으로 성장해야 방위산업 전체의 기술 저변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팔란티어와 안두릴은 기존 방산산업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소프트웨어와 자율화 기술을 앞세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사례로 꼽힌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방산 AI 기업을 육성하려면 기업 지원을 넘어 시장 진입과 조달, 투자, 수출을 연결하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원준희 방산중소벤처기업협회 회장은 “혁신 중소·벤처기업이 뛰어난 AI 기술을 보유하더라도 군 수요에 접근하기 어렵고 실증·인증·조달의 장벽을 넘지 못하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며 “정부의 초기 구매와 실증 기회 확대, 투자·정책금융 및 수출 지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대기업·하드웨어 중심의 방위산업을 AI·소프트웨어·플랫폼 기반 혁신기업 중심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벤처·스타트업의 성장을 뒷받침하려면 무기체계의 설계와 획득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사업 초기부터 개방형 설계와 상호운용성을 확보하고, 특정 체계기업이나 기술에 대한 종속을 줄여 다양한 기업의 기술을 경쟁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원준 전북대 교수는 “AI·소프트웨어 중소·벤처기업의 방산시장 진입을 확대하기 위해 모듈형 개방형 시스템 접근법(MOSA)의 제도화가 시급하다”며 “MOSA 도입이 지지부진한 근본 원인인 리더십과 책임 주체의 불명확성을 해소하고 정부 주도의 강력한 추진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MOSA는 무기체계를 모듈화하고 표준화된 인터페이스를 적용해 구성요소 간 교체와 통합을 쉽게 하는 방식이다. 이를 활용하면 새로운 AI 소프트웨어와 센서, 자율화 기술을 기존 무기체계에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다. 특정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경쟁을 촉진해 비용 절감과 기술혁신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미군의 협동전투기사업(CCA·Collaborative Combat Aircraft) 등 유·무인복합체계 발전 사례도 개방형 구조와 모듈화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CCA는 유인 전투기와 협력하는 무인 전투기를 개발하는 사업으로, 개방형 설계와 다양한 기술의 통합은 미래 전력 발전의 주요 과제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접근법을 정착시키려면 명확한 추진 주체와 책임체계를 마련하고, 사업 초기부터 개방형 설계와 상호운용성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와 군, 방산 대기업, 중소벤처기업, 대학 관계자들이 국방 AI 혁신과 K-방산 유니콘 육성방안을 경청하고 있다.

김득화 펀진 대표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력이 기존 하청구조의 확대로 끝나서는 진정한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제2의 팔란티어와 안두릴을 키우려면 중소기업 지원금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혁신기업의 우수한 기술을 군이 채택할 수 있도록 방산시장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석 브라이스톤 부사장도 “방산 중소기업이 더 이상 대기업의 부품 공급자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적인 기술과 제품, 플랫폼으로 대기업과도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탰다.

방산 대기업들도 체계통합과 사업화 역량을 바탕으로 혁신기술을 접목하고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하윤철 한화시스템 상무는 “AI 기반 해양무인체계와 지휘통제, 유·무인복합체계 발전을 추진하고 있으며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활용해 무기체계를 시험·검증하고 실전 운용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며 “방산 디지털 트윈 생태계 구축을 위해 혁신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방 AI가 기술 중심에서 ‘임무 중심 AI’로 진화해야 한다”며 “무인체계와 지휘통제, 디지털 트윈 기술의 발전과 함께 대기업과 혁신기업 간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광섭 LIG D&A 무인플랫폼연구소장은 소버린 AI와 클라우드 기반의 국방 AI 산업생태계 구축을 강조했다. 그는 “실제 전쟁 수행능력과 방산 수출 경쟁력을 중심에 두고 기존 획득 절차와 규제를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며 “혁신기술의 실증과 무기체계 적용, 사업화로 이어지는 방산 스타트업의 성장 경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AI와 무인체계의 활용이 확대될수록 사이버보안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자율주행 센서와 통신망, AI 모델과 데이터가 공격받거나 변조되면 무기체계의 오작동은 물론 임무 수행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준수 전북대 교수는 “기존 방산 공급망 보안을 넘어 실제 방산제품과 무기체계의 사이버보안으로 정책의 중심을 확대해야 한다”며 “국방 AI와 무인체계 발전을 위해서는 사이버보안을 개발 초기부터 반영하고 관련 기술기업과 전문인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I 기반 무인체계의 센서 교란과 데이터 변조, 해킹 등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려면 설계 단계부터 보안을 반영하고 시험평가와 운용,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사이버 복원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강은호 부국강병포럼 위원장이 개회사를 통해 국방 AI 전력화와 방산 유니콘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날 포럼에서 방위사업청장 시절 K 방산 수출에 앞장섰던 강은호 부국강병포럼 위원장은 “K-방산이 무기 수출을 넘어 국가안보와 외교적 영향력을 뒷받침하는 전략산업으로 성장했다”며 “그러나 지금의 성과가 미래의 성공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AI와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기술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역 시절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방산 수출에 힘을 보탰던 원인철 전 합참의장은 “독자적인 국방 AI 역량 확보를 위해 혁신 벤처·스타트업과 대기업간 상생, 군의 조달 체계 혁신이 절실하다”며 “다만 독자 AI 역량 구축에만 무게를 두다보면 선도국들과의 차이를 좁히기 힘들어 해외 국방 AI 역량도 동시에 도입해 탄력적으로 응용해서 우리 것으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피지컬 AI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는 전북특별자치도 측에서도 포럼에 참석해 “지난 6월 방산혁신클러스터 사업 선정을 계기로 첨단소재와 AI·자율주행 기술을 결합한 미래 방산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하겠다”(고정삼 경제부지사), “드론과 무인수상정, 무인지상체계 등의 실증을 통해 국가안보와 지역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전춘성 진안군수)는 의지를 보였다.

부국강병포럼의 정책 제언

1. 국방 AI의 전력화 촉진: 기술개발 중심에서 전력화 중심으로 전환하고, 공통 플랫폼과 데이터 기반을 구축해 실증을 통과한 혁신기술을 군이 신속하게 도입할 수 있는 획득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2. 피지컬 AI·유무인복합체계 발전: 야전 실증을 확대하고 운용 데이터를 수집해 AI 모델을 지속적으로 개선함으로써 실제 전장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3. 혁신기업의 방산시장 진입 확대: 스타트업과 중소·벤처기업의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정부의 초기 구매와 투자·정책금융을 연계해야 한다. 민간 혁신기술이 군 전력 강화와 방위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로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4. 대기업·스타트업의 동반성장: 체계기업의 사업화·수출 역량과 스타트업의 AI·소프트웨어·로봇 기술을 결합하되, 혁신기업이 독자적인 기술과 제품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개방형 협력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5. 사이버보안 역량 강화: AI 모델과 데이터, 무인체계의 사이버 복원력을 확보하고 관련 기술기업과 전문인력 육성을 강화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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