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예 작 ‘Landscape’
“누군가를 파악하는데 단 3초면 된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0.1초 만에도 상대의 신뢰감이나 호감도를 판단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도 있다. 상대의 표정, 말투, 시선, 자세, 목소리의 속도와 높낮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 등을 보고 직관적으로 그 사람의 본질을 간파한다는 것.
첫인상이 정확하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첫인상의 신빙성을 어느 정도는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상대의 몸과 표정, 시선, 제스처 같은 비언어적 표현 속에 그 사람의 내적 상태와 감정, 태도가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은 의식적으로 말을 꾸밀 수는 있어도 몸의 긴장과 움직임, 말의 리듬과 표정까지 완벽하게 숨기기는 어렵다.
이런 논리로 “예술을 예술가의 내면을 투영하는 거울”로 바라보는 관점은 타당하다. 창작품은 단순한 기술이나 형식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예술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감각과 감정, 기억, 사유의 방식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작품 세계에서 작가가 어떤 고민 속을 지나왔는지, 무엇에 흔들리고 무엇을 갈망하는지가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창작물에는 예술가의 내면이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김건예 작 ‘Landscape’
26일, 아트스페이스 펄에서 개인전 ‘산·세·풍·경’을 개막하는 김건예 작가의 최근 작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전시작 ‘Landscape‘ 연작에서 그의 내적 감정 상태와 사유의 정수들이 설득력 있는 조형 언어로 치환되고 있다. “내면의 움직임과 화면의 형식이 맞아떨어질 때 작품은 비로소 높은 완성도를 획득할 수 있다”는 그의 언급에서 그와 작품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간파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괄목할 만한 변화를 제시했다. 인물이나 실내외 풍경을 격자무늬적인 장치로 표현하며 사회적 이슈를 다뤘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산 풍경을 매개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다.
그가 화풍의 변화 이유로 “인물 작업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서”라고 귀띔했다. “인물로 콘셉트를 만들고 사회적 이슈를 화면으로 번역하는 과정은 점점 저 자신을 소진시키는 일이 될만큼 힘들었어요.”
인물 이전, 그는 실내외 풍경을 그렸다. 이때 격자무늬(그리드)로 풍경을 덮은 방식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이후 그는 인물을 연극무대처럼 설정한 화면에 집중했다. 이때 모델의 표정과 제스처, 소품과 배경, 색채와 구도에는 격자무늬와 또 다른 붓 터치가 부가됐다.
인물이나 실내외 풍경을 그렸지만 그의 화풍은 단순한 재현으로 흐르지는 않았다. 작가는 화면에 인간 소외와 익명성, 자본주의 구조 속 개인의 불안과 정체성 등의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을 격자무늬나 인물을 미세하게 덮는 방식으로 아로새겼다. “당시 저의 화면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위한 창구였어요.”
사회 구조와 인간의 관계, 도시와 자본, 노동과 소외 같은 문제들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독일 유학 때였다. 독일이라는 환경은 전후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담론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었고,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다.
그의 생산적 비판 의식은 귀국 이후 더욱 선명해졌다. 반복적인 붓질로 형성된 격자무늬를 통해 현대사회의 구조와 얽힘을 표현했고, 화면 속 인물들은 흔들리는 현대인의 초상이 됐다.
김건예 작가가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펄에 걸린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트스페이스 펄 제공
인물 작업이 지속되자 뜻하지 않은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런 가운데 산 풍경으로의 변화가 시작됐다. 아침에 일어나 작업복을 갈아입고 붓을 드는 일 자체가 괴로웠을 만큼 인물 작업은 즐거움이 아닌 고뇌로 자리를 잡아갔다. 사회 비판적인 시각은 여전했지만, 그것을 반복적으로 시각화하는 과정이 그를 힘겹게 했다.
“붓을 놓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지독하고도 깊은 슬럼프를 겪었어요.”
슬럼프를 겪던 무렵,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대상은 ‘산’이었다. 답답할 때마다 작업실 옥상에 올라 바라본 앞산의 능선, 그 단순한 풍경이 어느 순간 그의 내면에 내리꽂혔다. 그러면서 작업의 변화가 시작됐다.
산을 시각화한 초기에는 산의 능선과 결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으나, 점차 선과 면이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산세의 깊이감, 능선이 만들어내는 리듬감에 매료됐다. 산의 리듬들은 인물 작업에서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각을 불러왔다.“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산을 통해 작업이 즐거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어요.”
산 풍경으로의 변화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인물 작업을 오래 한 그에게 산 풍경은 스스로에게도 낯설었다. 설상가상 산은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형상화되는 대상이고, 그런 만큼 그들과 다른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커졌다. “산을 그린다고 말하는 것조차 처음에는 쑥스러웠다”는 그의 말은 당시 그의 심정을 대변한다.
산 풍경 초기 작업은 인물과 격자무늬로 대변되는 실내외 풍경 등의 전작들을 지워내는 과정에 가까웠다. 기존 작업의 핵심이었던 격자무늬가 화면에 남았다가 사라지고, 선이 면으로 바뀌었다 다시 해체되기를 반복했다. 그는 이 시간을 “나를 버리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김건예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펄 전시장 전경. 황인옥기자
전작인 인물 작업의 흔적은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정서를 제시하는 것이 그에게는 당면 과제였다. 그는 해결책으로 끊임없이 색을 덧칠하고 지우기는 것을 반복했다. 완성했다고 생각한 화면을 다시 덮고, 사인을 한 뒤에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반복적으로 화면을 덮으면서 캔버스는 점점 두꺼워졌고, 어떤 작품은 여러 번의 수정 끝에 무게감 자체를 획득했어요. 시행착오 끝에서 지금의 산이 나왔죠.”
김건예의 산은 자신이 본 산을 눈에 담거나 사진으로 찍지만 그것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는다. 산등성이를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하며,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덜어낸다. 화면에 남는 것은 결국 선이다. 화면 속 산은 때로는 웅장하고, 어떤 화면에서는 어머니의 품속처럼 따뜻하지만, 그 모든 기운은 부드럽고 유연한 몇 가닥의 절제된 선으로 구성된다.
작가는 “산의 선이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익숙한 산의 형태가 아니라, 능선 사이사이에서 발견되는 긴장감과 리듬이 중요하다는 것”. 그 중심에 그는 선을 놓는다.
부드럽고 연약한 선들은 색을 만나면서 비로소 산 특유의 웅장함으로 거듭난다. 화면 속 산은 초록이 주도한다. 초록은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색이다. 그에게 초록은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운 색이었다. 하지만, 계속된 반복 속에서 이제는 가장 자연스러운 색이 됐다. 산의 깊이감은 초록의 다양한 농담조절로 완성된다.
“산을 초록을 중심으로 표현하지만, 멀고 가까운 능선은 다양한 초록으로 변주하고 있습니다.”
김건예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펄 전시장 전경. 황인옥기자
대상을 그리고 마지막에 화면을 격자무늬로 덮는 방식은 이번 신작에서 지속된다. 하지만 격자무늬 대신 붓 터치로 변화를 모색했다. 선과 색채로 구현한 산 풍경에, 붓을 건조하게 만든 뒤 가볍게 스치듯 지나가는 행위가 더해진다. 건조한 붓 터치의 효과는 의외로 높았다. 때로는 안개가, 때로는 구름이 추가되며 풍경의 서사를 확장했다.
그가 선과 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신의 붓 터치를 “풍경에 숨결과 속도감을 더하는 장치”라고 했다. 그의 말에는 “지금의 산 작업이 풍경이면서 동시에 오랫동안 인물 작업을 통해 축적해온 회화적 감각의 연장선”이라는 의미가 부가돼 있다.
그의 산 풍경에는 버들강아지나 풀이 근경으로 등장한다. 산은 원경, 풀은 근경으로 처리됐다. 산과 버들강아지의 대비에서 그는 존재 방식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설파한다. 짧은 시간 살다 사라지는 버들강아지와 유구한 시간 자리를 지키는 산의 대비되는 관계를 인간 존재의 나약함에 빗댄다.
젊은 시절 사회적 분노를 전면에 드러냈던 그의 작업이 이제는 존재와 시간, 삶의 태도 같은 보다 근원적인 질문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작은 존재들은 쉽게 사라지지만 산은 묵묵히 그 자리를 유지한다”는 것이 깨달음의 핵심이다.
실제로 그는 이전 작업과 현재 작업의 차이를 “밖을 보던 시선이 안으로 들어온 변화”라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사회적 이슈와 구조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자신을 들여다보게 됐다”는 것이다. 사회를 향한 분노를 걷어내고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게 되면서 비로소 그는 편안함을 만끽한다.
김건예 작. 황인옥기자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작업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다. “작가는 무엇보다 작업이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에게 재미는 “스스로 몰입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생동감”이다. 창작이 정답 재현이기보다 예상하지 못한 세계를 발견해가는 과정이고, 그런 과정 속에서 탐색의 즐거움은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기에, 재미라는 가치는 그가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오랫동안 사회적 메시지와 콘셉트의 무게를 견디며 작업해 그가 산 풍경을 매개로 내적 세계로 선회한 이유도 작업이 곧 재미있는 놀이라는 소신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작업의 즐거움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즐거움 속에서 자기만의 언어를 다시 발견하는 것. 이번 전시는 바로 그 회복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아트스페이스 펄 김건예 개인전은 6월 13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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