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애 연극 '당신 좋을 대로'에 출연하는 7명의 장애·비장애 배우들. [사진 국립극장]
“내가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어서요.”
시각장애인이 이런 농담을 한다면 비장애인은 웃어도 될까. 과거엔 대놓고 장애인을 조롱하는 코미디도 흔했지만, 지금은 ‘장애’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할 수 없는 세상이다. 장애인들을 배우로 또는 관객으로 끌어안는 ‘무장애 공연’도 통상 장애 당사자의 고민이나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공익적 담론 중심의 진지한 무대가 대부분이다.
국립극장의 무장애 연극 신작 ‘당신 좋을 대로’(28~3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는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극 ‘좋으실 대로(As You Like It)’를 각색한 배꼽 빠지는 코미디다. 2021년부터 ‘합체’ ‘공생, 원’ ‘맥베스’ ‘헌치백’ 등 무장애 공연을 꾸준히 제작해 온 국립극장이 최초로 코미디로 스펙트럼을 확장한 것이다.
원작은 형의 구박을 피해 집을 떠난 올랜도가 공작의 딸 로잘린드와 사랑에 빠지고, 이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남장을 한 로잘린드를 알아보지 못해 각종 해프닝이 벌어지는 이야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우여곡절 끝에 무려 네 커플이 합동 결혼식을 올리며 이를 통해 사회적 질서의 회복과 화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다.
국립극장 버전은 이 이야기를 전하는 유랑극단 컨셉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인 7명의 배우가 20여 명의 등장인물을 멀티로 소화하며 변장과 빠른 역할 전환으로 웃음을 유발해야 하는 고난도 미션이다. 장애 배우 최초로 제 59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을 수상한 뇌병변장애 배우 하지성이 올랜도 역을 맡고, 청각장애 부모로 인해 수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장혜진 배우가 로잘린드 역을 맡아 열정적인 사랑을 연기한다.
14일 연습실 공개에서 일부 장면을 시연한 배우들은 매우 밝고 의욕이 넘쳐 보였다. 장애 당사자성을 화두로 삼는 무장애 공연은 연습 분위기도 무거운 편이지만, ‘셰익스피어 희극’의 힘은 달랐다. 아담·자크·실비우스 역을 맡은 시각장애 배우 이성수도 “무장애 공연을 하면서도 시각장애인의 특성상 늘 소외되고 배제되는 상황을 경험해 왔기에 이번엔 시작부터 나를 소외시키지 말라며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런데 즐겁고 유쾌한 작품을 하다보니 우려했던 일 없이 너무 즐겁게 만들어지고, 놀듯이 작업하게 됐다”고 했다.
박지혜 연출은 “무장애 공연을 제안받고 작품을 고민하다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모두가 공감하는 고전을 나름대로 재해석해 보고 싶었다”면서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나는 네가 필요해’‘내가 너를 도울게’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의 상태다. 장애와 비장애 배우들이 가진 고유의 리듬과 에너지가 무대에서 각자 빛나는 것을 넘어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함께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모인 ‘유랑극단’의 셰익스피어 희극 도전. 얼마나 웃을 수 있을진 몰라도, 무장애 연극의 새 장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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