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 좌천동에 있는 옛 부산 일신여학교 전경. 국민일보DB
일제강점기 말 조선총독부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섰던 호주장로교 선교회의 ‘교육 인퇴(사역 철수)’가 단순한 교육 사업 포기가 아니라 하나님 주권을 지키기 위한 신학적 결단이자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는 적극적인 공적 증언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정병준 서울장신대학교 교수는 5일 줌(Zoom)을 통해 진행된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446회 학술발표회에서 ‘호주장로교 선교회의 신사참배 반대 신학과 교육 인퇴: 고백, 연대, 그리고 증언’을 주제로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선 호주 선교회는 부산 일신여학교, 마산 창신학교 등 선교회 산하 교육 기관을 자진 폐교하며 교육 선교에서 전면 철수했다.
호주 선교회는 1935년 말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교육정책으로 가시화되자 이듬해 2월 임시 선교협의회를 열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 예배한다”며 거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과정에서 내부 반발도 있었다.
여성 교육을 지속하겠다는 호주 선교회 소속 여선교회(PWMU)와 일부 선교사들이 주장을 고려해 선교회는 국가신도 의식이 없는 시간에 신사를 찾아 하나님께 기도하는 ‘묵도 절충안’을 1년 가까이 묵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절충안도 “선교회의 묵도 방침이 한국인 신사참배 거부자들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며 철회했다.
호주 선교회는 결국 39년 6월 동래 일신여학교와 부산 일신여학교, 진주 시원여학교, 마산 창신학교, 의신여학교 등 5개 학교의 폐쇄 신청서를 조선총독부에 전격 제출했다.
특히 재산 처리 과정에서 호주선교회는 미국북장로회와 뚜렷한 차이점을 보였다. 이미 신사참배를 결의한 한국 장로교 산하 노회에 학교 재산을 이양하지 않고 신사참배 거부에 동의하는 학부모회 등에 교육 선교 재산을 이양하며 교육을 통한 복음 전파의 정신을 지켰다.
정병준 교수는 “호주 선교회는 비록 학교 건물과 부동산 등 눈에 보이는 가시적 자산은 남기지 못했으나 타협 없는 신앙고백과 고난받는 한국인들과의 연대, 그리고 신앙 자유를 위한 공적 증언이라는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남겼다”며 “이 유산은 오늘날에도 기독교 교육의 본질과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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