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10년물 4.6%·30년물 5%대 고공행진
국내 5년물도 2년6개월 만에 4% 돌파
고금리 충격에 AI ‘묻지마 투자’ 제동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중동 전쟁 장기화와 유가 급등이 촉발한 글로벌 채권금리 상승이 인공지능(AI) 투자 랠리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가 연 5%를 넘고 국내 국고채 금리도 한 달 새 급등하면서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한 AI 산업의 자금조달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그동안 글로벌 증시를 밀어올린 AI 랠리도 성장성만 앞세운 ‘묻지마 투자’에서 수익성과 투자 회수 가능성을 따지는 ‘선별 투자’로 시장 흐름이 바뀔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유가 급등이 쏘아올린 고금리 공습…요동치는 국채 금리
18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미국 장기 국채금리는 이날 오후 2시 기준 10년물이 4.628%, 30년물이 5.151%를 기록했다. 10년물 금리는 시장의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4.5%를 웃돌았고, 30년물 금리도 5%대에 머물렀다.
아시아 채권 시장의 상황도 비슷하다.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정상화 기조와 맞물려 2.746%까지 뛰었다. 29년만에 최고 수준이다.
한국 국채 금리 역시 대외 환경 변화에 동조하며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 15일 기준 국내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4.220%로 한 달 전인 4월 15일 3.655%보다 0.565%포인트 올랐다. 국내 5년물 국고채 금리도 같은 날 4.005%를 기록했다. 2023년 11월 3일 이후 처음으로 4%를 넘어선 것이다.
채권 금리 급등의 핵심 원인은 중동발 유가 불안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 등으로 브렌트유가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하자 에너지 가격발 인플레이션 공포가 채권 시장을 강타했다. 물가 불안으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긴축 기조가 길어질 것이란 전망과 전쟁에 따른 각국의 재정 지출(국채 발행) 확대 우려가 겹치면서 국채 금리를 강하게 밀어 올린 것이다.
◇빅테크 속도 조절 우려…AI 랠리 덮친 ‘금리 충격’?
문제는 금리 상승이 그동안 증시를 이끌어온 AI 투자 랠리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AI 산업은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 인프라, 클라우드 등 대규모 설비투자가 먼저 필요한 구조다. 기업이 외부 자금을 조달해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데 금리가 오르면 차입 비용이 높아진다. 미래에 벌어들일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할 때 적용하는 할인율도 함께 올라간다.
이는 당장의 실적보다 미래 성장 기대를 바탕으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온 AI 관련주에는 할인율 상승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S&P500 지수의 향후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21.3배로 장기 평균치인 16배를 크게 웃돌았다. 국채가 연 4~5%대 수익률을 제공하는 상황에서는 변동성이 큰 AI 관련주에 대한 투자 매력도 이전보다 약해질 수 있다.
이은택 KB증권 애널리스트는 “금리는 모든 자산의 ‘중력’이며, 지금 같은 증시 버블 국면 후반부에서는 모든 신경을 금리에 집중해야 한다”며 “지난 120년간 세 번의 증시 버블 붕괴는 모두 금리 상승이 촉발했다. 이때는 ‘실적이 좋다’는 외침도 소용없이 금리 상승이 실물 시장을 타격해 AI 투자마저 먹어 치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고금리 환경이 고착화되면 맹목적인 AI 투자 붐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자본 조달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데이터센터 및 AI 서버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설 경우, 후방 산업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전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AI 투자 붐이 곧바로 꺾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성장 기대만으로 자금이 몰리던 흐름은 이전보다 약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시장은 AI 랠리의 ‘완전한 종료’보다는 ‘질적 전환’에 무게를 두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여전히 AI를 핵심 성장동력으로 보고 있는 데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가 중장기 경쟁력 확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박성우 DB증권 애널리스트는 “AI 붐에 힘입어 빅테크 중심의 이익 성장이 견고하지만, 최근 국채 금리 상승이 주가의 밸류에이션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 통행 정상화 및 고유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국채 시장의 변동성이 글로벌 자산 시장을 짓누르는 장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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