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도드코퍼레이션 최형빈 대표. / 사진=박상민 기자
[파이낸셜리뷰=박상민 기자] 대전 KAIST 창업 센터. 직원 두 명이 두 개의 사업을 굴리는 회사 대표를 이곳에서 만났다. 최형빈(21) 르도드코퍼레이션 대표는 중학교 3학년 때 3천만 명이 찾은 코로나19 정보 플랫폼 ‘코로나나우’를 만들었고, 토스 최연소 서비스 팀장(PO)으로 일했다. KAIST 진학 후에는 직접 회사를 차렸다.
인터뷰 내내 그는 같은 표현을 반복했다.
“정의되지 않은 시장에 들어가서 문제를 정의하는 일
.
”
쪽잠에서 담요로, 담요에서 택시로 이어지는 사업 구상도, 언젠가 병원을 짓고 싶다는 말도 모두 거기서 나왔다.
니치 시장을 정의하고, 장악한다
르도드코퍼레이션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회사다. 최 대표가 직접 내린 정의는 이렇다.
“니치 시장에서 제로 투 원을 하는 회사입니다. 시장을 정의하고, 만들고, 장악하는 데 특화돼 있어요. 모바일 제품이 될 수도 있고, 물리적인 공간이나 브랜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포트폴리오를 여러 개 보유한 지주회사가 목표입니다.”
지금까지 런칭한 포트폴리오는 두 개다. 첫 번째는 쪽잠 알람 앱 ‘꼬끼오 알람’, 두 번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플랫폼 ’에딧(ADIT)’이다.
꼬끼오 알람은 독서실, 지하철, 스터디카페처럼 소리를 내기 어려운 공간에서 이어폰으로만 알람이 울리는 서비스다. 창업 전에 국내 최대 쪽잠 ASMR 유튜브 채널을 먼저 인수하고 시작했다. 영상 하나의 조회 수가 수천만 뷰에 달하는 채널이었다. 유튜브 트래픽을 앱으로 끌어오기 위한 포석이었다. 현재 DAU(일간 활성 사용자)는 1만~2만 명, 앱스토어 건강 부문 순위는 마케팅비 한 푼 없이 꾸준히 20위권 안에 든다.
에딧은 인스타그램 매거진들의 지주회사 구조로 운영된다. 매거진을 직접 보유하거나 파트너십으로 묶어, 광고주가 한 번에 여러 채널에 메시지를 뿌릴 수 있는 구조다. 5월에 시작해 3개월 만에 국내 1위 플레이어가 됐다. 콘텐츠 제작은 AI로 자동화한다. 키워드를 입력하면 매거진 포맷 이미지가 생성되고 인스타그램까지 자동으로 올라간다.
“인플루언서가 동시에 광고를 올리면 사람들이 금방 알아채요. 그런데 매거진은 달라요. 에디토리얼 콘텐츠를 쌓아온 채널이라 사람들이 여과 없이 받아들이거든요. 광고주 입장에서는 공신력 있는 목소리로 동시에 메시지를 낼 수 있는 창구인 셈입니다.”
사업의 방향성은 하나로 수렴한다. AI로 만들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면 시야가 좁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쪽잠 시장에서 담요 브랜드로, 담요에서 택시 회사 인수로 확장하는 구상도 가지고 있다. 쪽잠이라는 니치 시장의 유일한 플레이어로서, 전방과 후방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들을 계속 붙여나가는 방식이다.
“아무리 앱 시장 다 합쳐도 이동 시장만큼은 안 나와요. 우리 주변에 더 큰 시장들이 많거든요. AI로 만들 수 있는 거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그 시야가 좁아지는 겁니다.”
토스에서 배운 것: 결과가 좋아야 모두가 좋다
최 대표가 토스에 합류한 건 고등학교 재학 중이었다. 쟁쟁한 어른들 사이에서 최연소 서비스 팀장 자리를 얻었다. DAU 천만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기도 했고, 실패도 겪었다.
“서비스가 실패하면 팀원들의 동기가 떨어지는 걸 봤어요. 아무리 과정이 아름다워도 결과가 좋아야 모두한테 좋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가 이승건 대표에게서 받은 인상도 경영 방식에 영향을 줬다. 서울대 치대 출신에 개발과 영어까지 두루 아는 리더와 함께 일하며, 천재적인 대표가 조직에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는지를 실감했다고 했다. 회사 이름 ‘르도드’가 자신의 개발 닉네임에서 따온 것도 그런 맥락이라는 설명이었다.
외부 투자는 아직 한 번도 받지 않았다. VC 미팅을 수십 차례 했고, 계약 당일까지 간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받지 않았다.
“이익을 내면서 성장하고 있고, 아직 큰 돈이 들어갈 비즈니스가 없어요. 직원이 2명인데도 두 개 사업이 충분히 굴러갑니다. 그게 저희의 자부심입니다.”
중학생의 기부 결정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초기에 중학교 3학년이었던 최형빈은 ‘코로나나우’를 만들었다. 전국 확진자 현황과 검사 진행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이트였다. 처음엔 중국 우한 교민들을 위한 용도였다. 그 플랫폼이 3천만 명이 찾는 서비스가 됐다.
수익을 전액 기부한 건 처음부터 정해둔 약속이었다고 했다. 사이트를 만들기 전에 이미
“수익이 나면 기부하겠다”
고 적어두고 시작했다. 하루에 0.1달러가 벌려도 그 돈을 기부해야지 했던 마음이 그대로 이어졌다.
“연합뉴스 기자님이 이 사이트가 기부를 한다는 걸 보시고 인터뷰를 요청했어요. 중학생인 걸 들키지 않으려고 몇 년생이냐는 질문에 2005년생이라고만 했는데, 그분이 계산해 보시더니 바로 알아채셨죠. 그때 언론의 무서움을 처음 실감했습니다.”
창업을 계속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거창한 말 대신 단순한 답을 골랐다.
“그냥 너무 재밌어요. 다양한 시장을 훑으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요.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일이에요. 지루하지 않은 일이고요.”
창업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보다 이 일을 더 재밌게 하는 팀이 있으면 합류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를 정의하고 푸는 일 자체가 좋다는 뜻이었다.
꼬기오 알람, ADIT 매거진, 토스 최연소 PO까지 르도드 코퍼레이션 최형빈 대표가 걸어온 길. / 사진=박상민 기자
“한국의 버크셔, 그리고 병원 하나”
10년 뒤 르도드의 모습을 묻자, 그는 버크셔해서웨이를 떠올렸다. 다양한 시장에서 기업을 인수하고, 레거시 시장이나 AI 전환이 필요한 산업에 들어가 문제를 풀어내는 지주회사. 방산과 엔터테인먼트가 장기 목표 중 하나라고 했다. 현재 K-POP AR 기업의 사외이사로 이미 들어가 있다.
“코딩을 몰라도 앱은 두세 시간이면 나오는 시대예요. AI가 들어오면서 혼자, 혹은 둘이서 여러 개의 브랜드와 사업을 병렬로 굴리는 게 가능해졌어요. 예전엔 말이 안 됐던 구조죠.”
그가 인터뷰 말미에 꺼낸 목표는 예상 밖이었다. 코로나나우를 만들던 중학생은 앱이 세상을 바꿀 줄 알았다. 3천만 명이 썼는데 확진자는 오히려 늘어났고, 그 절망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했다.
“살면서 병원을 한 번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있어요. 전염병과 중증 외상을 연구하는 병원요. 20대에 장학재단, 30대에 의료재단을 만들자는 목표도 있습니다.”
큰 말이지만,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르도드를 계속 하다 보면 병원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
이라고 했다.
학생 창업, 제도가 따라와야 한다
최 대표는 창업 지원 제도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현재 창업 중심대학 대부분은 휴학을 2년까지만 허용한다. 그는 이 구조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봤다.
“2년 안에 성공을 만들어내는 건 무리예요. 서연고와 KAIST에서 창업하려는 학생들이 늘고 있는데, 무제한 휴학이 가능하다면 훨씬 더 많은 시도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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