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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익숙한 원전'만 붙들다 판 놓치는 꼴···韓 전력 후진국 전락 우려

빅테크들은 전력망 의존을 줄이고 수요지 인근에 직접 전원을 두는 '에너지 자립' 전략을 강화하고 있으며 해당 요구를 가장 잘 충족하는 기술이 바로 '비경수형 SMR'이다. "작게 만든 기존 원전"의 한계 비경수형은...

'익숙한 원전'만 붙들다 판 놓치는 꼴···韓 전력 후진국 전락 우려

데이터센터 건설 3년, 전력 확보에 10년 격차

美 비경수형 상업원전 착공 전력 장기전 대비

韓 리스크 우려로 경수형 i-SMR 우선 과제로

"전력구조 안바뀌면 산업 경쟁력 유지 어려워"

테라파워가 미국 와이오밍주 캐머러시에 345MW 규모로 설치할 4세대 소듐냉각고속로(SFR) '나트륨(Natrium)' 조감도 /HD현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제조업의 자율공장 전환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차세대 전력원으로 비경수형 소형모듈원자로(SMR)의 필요성이 빠르게 부각되고 있다. 미국은 40년 만에 비경수형 상업 원전 건설 허가를 내주며 기술 실증 단계에 본격 진입한 반면 한국은 아직 규제 연구반 출범 수준에 머물러 있어 기술·인허가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는 원자력 파트너십과 전력 확보 프로젝트에 100억 달러(약 15조 500억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AI 학습·추론용 데이터센터가 막대한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소비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태양광·풍력만으로는 전력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들 기업이 원자력 투자 확대에 나선 배경에는 AI 산업 특유의 '전력 병목'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업계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에는 2~3년이 걸리지만 실제 전력 확보에는 7~10년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시설이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 송전망·발전 인프라 확충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안정적인 기저전원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 세계적으로 22기가와트(GW) 규모의 원자력 프로젝트가 개발 중인 것도 이 맥락 위에 있다. 빅테크들은 전력망 의존을 줄이고 수요지 인근에 직접 전원을 두는 '에너지 자립' 전략을 강화하고 있으며 해당 요구를 가장 잘 충족하는 기술이 바로 '비경수형 SMR'이다.

"작게 만든 기존 원전"의 한계

비경수형은 구조 자체가 다르다

미국 테라피워사의 SFR인 나트륨 조감도 /테라파워

원자력 전문가들이 경수형 SMR의 한계로 꼽는 지점은 명확하다.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복수의 모듈을 묶어 운영해야 하는데 결국 기존 대형 원전과 유사한 구조로 수렴할수 밖에 없다. 입지 제약과 송전망 의존 문제도 그대로 남는다는 설명이다.

비경수형 SMR은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물 대신 액체금속·용융염·가스를 냉각제로 사용하는 4세대 원자로 기술로 데이터센터·공장·건물 단위에 직접 설치 가능한 분산형 전원으로 설계할 수 있다. 핵연료를 수십 년간 교체 없이 사용하는 '배터리형 원전' 개념이 적용 가능해 운영 구조가 단순하고 주민 수용성도 상대적으로 높다는 평가다.

미국은 이미 비경수형 상업 원전 건설의 첫 삽을 뗐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지난 3월 테라파워의 소듐냉각고속로(SFR) '나트륨(Natrium)' 케머러 1호기에 건설 허가를 부여했다. 이는 40년 만의 첫 비경수형 상업 원전 건설 허가이자 10년 만의 첫 신규 상업 원전 허가 사례다. 지난달 23일 본격 착공에 들어갔으며 2030~2031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SFR의 핵심은 '열전달 효율'이다. 액체 나트륨은 열교환 성능이 뛰어나 원자로 내부에서 발생한 열을 빠르게 외부로 전달할 수 있다. 원자로 내부에서는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한 열이 액체 상태의 나트륨으로 전달되고 이후 해당 열이 물로 이동하면서 수증기를 만들어 터빈을 돌리는 방식이다.

테라파워의 SFR 프로젝트는 중간 열교환 구조를 적용해 원자로 내부의 액체 나트륨이 직접 물과 닿지 않도록 중간 단계에서 용융염(NaCl 계열 등)을 활용해 열을 한 차례 전달한 뒤 다시 이 열로 물을 가열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나트륨과 물의 직접 접촉 가능성을 줄여 폭발 위험을 낮추는 구조다.

출력 규모는 345MWe이지만 용융염 저장장치와 결합해 500MWe까지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 기술적 특징이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일정 부분 보완하는 구조로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美는 상업 실증 들어갔는데

韓은 이제 규제 연구반 단계에 첫발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뚜렷하다. 2024년 기준 100GW인 원자력 발전량을 2050년까지 400GW로 확대한다는 목표 아래 비경수형 SMR을 포함한 차세대 원전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산업 확대에 필요한 전력을 장기적으로 안정 공급하기 위해 사실상 모든 원자력 수단을 총동원하는 방식이다.

반면 한국의 현주소는 미국과 대조적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달 30일 SFR 규제 연구반을 출범시키고 5월에는 용융염원자로(MSR), 6월에는 고온가스로(HRGR) 연구반을 순차 구성할 계획이다. 기존 경수형 중심 원전 체계에서 비경수형 SMR 규제 기반 마련에 첫발을 내디딘 셈이지만 연구 예산 축소와 반복된 정책 변화로 사업 연속성이 지속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전력 구조 안 바뀌면 끝나는데

'잘하는 분야 집중' 단기 논리에 머물러

혁신형 SMR 모형 /한국수력원자력

정부는 우선 i-SMR의 2026년 표준설계인가 신청·2030년 글로벌 시장 진입을 우선 과제로 잡고 있다. i-SMR은 한국이 추진 중인 '혁신형 SMR'이지만 기술 계열로 보면 기본적으로는 기존 대형 원전과 같은 '경수형' 계열이다. 반면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차세대 원자로로 불리는 비경수형 SMR은 소듐·용융염·가스·납 같은 새로운 냉각재와 고속중성자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구조 자체가 다르다.

i-SMR의 핵심 장점은 현실성이다. 이미 검증된 경수형 원전 기술 기반이라 규제·안전성·운영 경험이 상대적으로 축적돼 있고 상용화 리스크가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APR1400 계열 공급망과 기술 인력도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해당 전략이 결국 '잘하는 분야 집중'이라는 단기 논리에 머무른다고 비판한다. 비경수형 기술 격차가 장기 과제로 쌓이는 동안 미국이 상업 실증 데이터를 축적해 글로벌 표준과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i-SMR은 물을 사용하는 특성상 운전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초고온 산업열 공급 △대규모 수소 생산 △고효율 열 활용 등 비경수형 대비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경수형은 여전히 대규모 냉각수와 기존 원전형 인프라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 '작게 만든 기존 원전'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러 기를 묶어 경제성을 확보하려다 보면 결국 대형 원전과 유사한 구조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여기에 SFR 같은 비경수형은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가능성이 차세대 장점으로 거론되지만 경수형 기반 i-SMR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국내에서는 UNIST를 중심으로 개발 중인 '마이크로 우라누스(MicroURANUS)'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비경수형 사례로 꼽힌다. 납 냉각 방식을 적용한 20MWe급 초소형 원전으로 공장·데이터센터 등 수요지에 직접 전력을 공급하는 '배터리형 원전' 구조를 목표로 한다.

다만 국내 규제 장벽을 이유로 미국 인허가를 우선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2033년 상업화를 목표로 두고 있다. 국내 기술이 국내 규제를 우회해 해외에서 먼저 인허가를 받아야하는 역설적 상황은 한국의 비경수형 생태계가 처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국내 원자력 정책과 산업 구조가 경수형 중심으로 형성돼 있어 차세대 기술에 대한 대응 즉 '넥스트 스텝'에 대한 준비가 늦어지고 있다"라며 "결국 현재 구조는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 집중한 전략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차세대 원자력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AI 시대에는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이 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며 "전력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산업 경쟁력도 유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비경수형 SMR =

물 대신 액체금속·용융염·가스·납 등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다. 기존 경수형 원전보다 고온 운전과 분산형 설치에 유리해 AI 데이터센터·수소 생산·산업열 공급용 차세대 전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SFR(소듐냉각고속로) =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비경수형 원자로다. 열전달 효율이 높고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가능성이 장점으로 꼽힌다. 미국 테라파워의 '나트륨(Natrium)' 프로젝트가 대표 사례다.

i-SMR =

한국이 개발 중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다. APR1400 기반 경수형 계열 기술을 활용해 상용화 리스크를 낮춘 것이 특징이다. 정부는 2030년 글로벌 시장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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