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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영우 칼럼] 호르무즈에서 한반도까지- 트럼프가 그리는 지도

한국은 반도체 하나로 미국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착각, 그리고 혈맹이라는 관성에 기대어 선택권은 한국에게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밀어붙이고 있고, 대만과 일본도 같은...

[이영우 칼럼] 호르무즈에서 한반도까지- 트럼프가 그리는 지도

"우리가 그를 구했다(WE GOT HIM)!"

지난 5일 토요일 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 소셜에 타전한 승전보는 단 세 마디였다. 이란 적진 한복판, 험준한 산악 지대에 고립됐던 미 공군 조종사를 빼내기 위한 전격 구출 작전이 성공한 직후였다.

작전 실행 직전까지 미 국방부 지휘부와 행정부 사이에는 피를 말리는 격론이 오갔다. 랜디 조지 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고위 장성들은 해발 2,130m의 험준한 지형과 이란 혁명수비대의 포위망을 근거로 작전을 만류했다. 1980년 이란 인질 구출 작전의 비극, '데저트 원'의 참사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CIA의 판단은 단호했다. 조종사가 생포돼 인질극의 도구가 되는 순간, 이란 무력화를 향한 전략적 흐름 전체가 와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었다. 결국 트럼프는 반대 장성 3명을 전격 해임하는 초강수를 두며 진격을 명령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부활절 밤에 거둔 이 극적인 승리에 미국 언론은 '이스터 미러클'이라는 이름을 헌정했다.

이 지점에서 이란 전쟁을 보는 관점이 명확해진다. 트럼프의 목표는 테헤란 점령도, 이란 영토의 장기 점유도, 레짐 체인지도 아니다. 더 큰 설계도가 따로 있다. 그 암호키는 구출 성공 직후 그가 연달아 올린 두 개의 메시지에 들어 있다. 하나는 48시간 내에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최후통첩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것이었다. "제3세계를 수입하면, 당신도 제3세계가 된다."

이 두 메시지를 이민 정책과 외교 강경론으로 분리해 읽으면 본질의 절반밖에 못 본다. 실력 행사 직후 연속으로 던진 이 선언들은 하나의 논리로 꿰어진다. 트럼프가 구상하는 신뢰 동맹에 글로벌 사우스, 즉 제3세계의 자리는 없다. 그들을 자유 진영 안에 묶어두려는 의사 자체가 없다. 다음 체제에서 제3세계는 동맹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중동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에게 중동 평화는 도덕적 지향점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계적 필수 조건이다. 미국은 중동의 안정이 필요하되, 미군이 직접 주둔하며 피와 돈을 쏟는 방식은 단호히 거부한다. 그 빈자리를 채울 틀이 바로 아브라함 협정이다. 이스라엘의 기술·정보력과 사우디·UAE의 자본력이 결합한 이 체제는 미국을 대신해 이란을 비롯한 소위 '악의 축' 국가들을 억제하고 해협을 관리하는 중동판 나토를 지향한다. 트럼프가 즐겨 쓰는 "메이크 어 딜"은 파괴의 요청이 아니다. 이 새로운 체제로의 편입 초대장이다.

이 원칙은 중동에서 멈추지 않는다. 트럼프는 동북아에도 같은 요구를 반복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스스로가 지역 안보를 부담하라는 것이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109조 원 전략투자와 호르무즈 안전보장 협력을 패키지로 내놓은 것도, 한국이 방위비 분담과 인도·태평양 역할 확대 압박을 동시에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동은 아브라함 협정 국가들이, 동북아는 한국과 일본이 스스로 지역 질서의 관리자가 되라는 요구다. 이것이 다음 세계체제의 일반 문법이 될 것이다. 미국은 설계자이자 최후의 중재자로 남되, 운영 비용은 현지 동맹이 분담한다.

WTO가 주도하던 보편 규범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라이트하이저가 "현실에는 자유무역이 없다"고 단언하고, 마이런과 그리어가 트럼프 라운드를 선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다음 세계는 미국의 안보·기술·시장 블록 안에 들어오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가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는 신뢰 블록의 세계다. 루비오가 "경제안보가 곧 국가안보"라고 반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 세계체제의 허구를 걷어내고 등장할 다음 질서의 설계도, 그것을 우리는 잠정적으로 '마러라고 협약 체제'라 부른다. 이런 관점에서 이란 전쟁, 48시간 최후통첩, 이스터 미러클, 군 수뇌부 교체, 그리고 동맹에 대한 역할 분담 요구는 모두 이 설계도의 한 페이지씩이다. 미국은 지금 다음 문명을 떠받칠 새로운 세계질서를 건설하고 있다. 이란 무력화는 그 거대한 공정의 일환일 뿐이다. 이것이 현재의 중동 정세와 다가올 세계를 읽는 가장 차갑고도 정확한 관전법이다.

이 설계도 앞에서 한국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는가. 한국은 반도체 하나로 미국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착각, 그리고 혈맹이라는 관성에 기대어 선택권은 한국에게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밀어붙이고 있고, 대만과 일본도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 반도체는 입장권이 될 수 있지만 종신 회원권은 아니다. 마러라고 체제의 문은 어제의 실력이 아니라 내일의 쓸모로 열린다.

※ 본란의 칼럼은 본지의 견해가 아닌 칼럼자의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힙니다.

이영우 박사

하와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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