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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상현의 트렌드 리포트]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시대의 전략

최근까지 구글에서 정부 관계 및 공공정책 부문 디렉터로 재직하며 플랫폼, 디바이스 분야의 글로벌 정책 전략을 총괄했다. 그리고 지난 3월24일부로 오픈AI 아시아태평양지역 대외 정책 및 정부 협력 총괄 책임자가 됐다.

[이상현의 트렌드 리포트]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시대의 전략

이상현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싱가포르의 한 식당에서 늘 먹던 국수 한 그릇이 6.5달러에서 7달러로 오른 것을 확인한 순간, 주문 버튼을 누르던 손이 멈췄다. 그 짧은 멈춤은 우리가 지출의 의미를 다시 계산하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주었다.

이 변화는 글로벌 시장 데이터와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팬데믹 이후 가격 민감도가 꾸준히 상승했고, 아시아에서도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여행·항공·호텔 산업에서 변화는 매우 빠르게 나타난다. 항공권이 10달러 오르기만 해도 예약률이 즉시 흔들리고, 호텔은 조식 포함, 무료 업그레이드, 늦은 체크아웃처럼 작은 가치 요소로 가격 저항을 조정한다. 소비자는 가격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격 변화가 자신의 시간, 편의성, 안전, 감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함께 계산한다.

얼마 전 만난 한 해외 전문 여행사 대표는 보다 명확한 통찰을 들려주었다. 그는 할인 경쟁 대신 여행 경험의 구조를 재설계하는 전략을 택했다. 패키지 일정에서 불필요한 이동을 줄여 피로도를 낮추고, 현지에서 머물거나 쉬는 시간을 두 시간 추가했다고 했다. 단순한 변경이었지만 예약 전환율은 할인 프로모션을 할 때보다 훨씬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상승했다. 사람들은 숫자보다 경험의 질이 개선되었다는 느낌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가격은 ‘얼마를 깎았는가’보다 ‘무엇을 바꿨는가’를 통해 해석된다.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20대와 30대는 이미 최저가 탐색을 생활화했고, 검색 능력과 정보비대칭 해소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한 ‘최저가 중심 소비자’가 아니다. 그들이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가성비와 감성비가 균형 잡힌 상품이다. 가격이 합리적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감정적 만족이 필요하다. 불필요하게 복잡한 정책이나 소비자를 시험하는 듯한 UX는 가격보다 더 큰 이탈 요인이다. 가격은 점점 더 관계와 신뢰의 지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가 가격을 받아들이는 감정과 기준은 분명해지고 있지만, 이는 모든 시장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국가별로 소비자가 가격을 받아들이는 정서와 조건은 크게 달라진다. 싱가포르는 이러한 패턴과 다르게 작동하는 시장이다. 가격이 높더라도 시간 절약과 효율성, 일상의 품질이라는 명확한 이유가 있으면 소비가 유지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가격에 대한 ‘설득 가능한 설명 구조’다. 한 끼 식사도, 서비스 이용도, 그 가격이 왜 그렇게 형성되었는지를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다면 받아들인다. 두 시장의 차이는 단순한 구매력의 차이가 아니라, 가격을 통해 읽는 가치의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핵심은 분명하다.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시대의 전략은 가격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지탱하는 가치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소비자는 지금 이렇게 묻고 있다. “이 가격은 어떤 논리 위에 놓여 있는가?”, “이 선택은 내 시간과 경험, 업무 효율, 혹은 삶의 질을 어떻게 바꾸는가?”

기업이 해야 할 일은 가격을 단순히 조정하는 것이 아니다. 가격이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고 어떤 미래 가치를 제공하는지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생산 과정, 운영 방식, 품질 기준 같은 요소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기업이 신뢰를 얻는다. 또한 할인보다 경험의 설계가 더 큰 잔존 가치를 남긴다. 여행자의 하루가 덜 피곤해지고, 사용자가 앱을 더 쉽게 탐색하며, 고객이 정책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 이 모든 요소가 가격보다 강한 설득이다.

이처럼 가격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소비자가 선택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것은 결국 자신의 시간과 경험, 그리고 삶의 우선순위다. 이러한 맥락을 오래전부터 통찰한 사람이 있다. 19세기 미국의 사상가이자 자연주의 철학자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이렇게 말했다. “가격이란, 우리가 그 대가로 기꺼이 바치는 삶의 한 조각이다(The price of anything is the amount of life you exchange for it.)”

우리가 사고파는 것은 결국 돈이 아니라 시간이며, 효율이며, 경험이다.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소비자와 브랜드 사이의 관계와 태도를 보여주는 언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전략은 가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삶 속에서 그 선택의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설계해 주는 일이다.

*이상현 칼럼니스트는 최근까지 구글에서 정부 관계 및 공공정책 부문 디렉터로 재직하며 플랫폼, 디바이스 분야의 글로벌 정책 전략을 총괄했다. 그리고 지난 3월24일부로 오픈AI 아시아태평양지역 대외 정책 및 정부 협력 총괄 책임자가 됐다.

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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