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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미디어시티, 화면이 도시를 대신할 때

요즘 도시들은 앞다투어 ‘미디어시티’를 선언한다. 대형 LED 스크린이 건물 외벽을 덮고 이미지가 흐르며,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화면처럼 작동한다. 이미 우리는 하루 대부분을 디지털 화면 속에서 보내고 있는데, 도시는 그 환경을 외부로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미디어시티, 화면이 도시를 대신할 때

요즘 도시들은 앞다투어 ‘미디어시티’를 선언한다. 대형 LED 스크린이 건물 외벽을 덮고 이미지가 흐르며,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화면처럼 작동한다. 이미 우리는 하루 대부분을 디지털 화면 속에서 보내고 있는데, 도시는 그 환경을 외부로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다시 화면으로 되돌아온다. 이 순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서울 코엑스 스퀘어의 ‘WAVE’다. 건물 외벽을 입체적 스크린으로 전환한 이 작업은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냈고, 사람들은 이를 촬영해 SNS로 확산시키며 도시 이미지 자체를 콘텐츠로 만들었다. 이후 이러한 방식은 빠르게 복제되며 하나의 도시 연출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그랜드조선 부산의 외벽 미디어 스크린. 그랜드조선 부산 제공

문제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하나의 실험이 어느 순간 하나의 해법으로 굳어지면서, 특정한 맥락에서 출발한 형식이 다른 도시들로 거의 그대로 이식되고 있다. 그 결과 도시마다 다른 조건과 서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펼쳐지는 장면은 점점 비슷해졌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형식은 반복되고, 반복되는 형식은 설득력을 잃는다.

부산 역시 해운대 구남로 일대를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으로 지정하며 이 흐름에 합류했다. 이 맥락에서 제작된 그랜드조선 부산 외벽 미디어 스크린은 해운대의 시각 환경을 변화시켰고, 촬영과 공유를 전제로 한 콘텐츠 소비 구조도 빠르게 정착되었다. 다양한 전광판이 추가되며 하나의 집적된 미디어 환경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 확장은 새로운 방향이라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구조의 반복에 가깝다.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게 만들고 다시 확산시키는 순환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보다 어떻게 더 강하게 보이게 할 것인가가 앞선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과정이 ‘작가’의 영역이 아니라 ‘업자’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지는 프로젝트 단위로 제작되고 납품되며 작품이 아니라 콘텐츠로 소비된다. 도시를 해석하는 시선보다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우선되면서, 화면은 화려해지지만 그 안의 의미는 점점 비어간다.

최근 미디어아트는 인공지능과 결합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레픽아나돌의 데이터 기반 이미지 생성 작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것 역시 새로운 방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도시의 데이터는 이미지로 환원되고, 이미지는 다시 소비를 위해 최적화된다. 무엇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뒤로 밀려나 있다. 여기에 더해 데이터의 출처와 저작권 문제 역시 충분히 논의되지 않는다. 다양한 이미지와 기록이 학습 데이터로 활용되는 과정에서 창작의 주체는 흐려지고, 결과물의 책임 역시 불분명해진다. 기술은 바뀌었지만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관람자와 도시가 데이터를 제공하는 AI 기반 작업은 그렇기에 ‘참여’를 표방한다. 그러나 이 참여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 관객은 데이터를 제공하지만, 구조를 설계하는 권한은 여전히 제한된 영역에 머물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미디어시티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드러난다. 더 나아가 이는 미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의 미디어시티는 감각을 확장하기보다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하며, 도시의 맥락과 관계를 지운 채 경험을 시각적 소비로 축소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참여’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참여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재설계다.

그럼에도 이 흐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확장이 아니라 방향이다. 단순히 화면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도시의 데이터와 지역의 서사, 시민의 경험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관계를 맺을 때, 미디어시티는 비로소 장비나 이벤트가 아니라 도시의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기술도 예산도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조직할 것인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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