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민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앤디 워홀은 상업디자이너로 성공했지만 순수예술가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순수예술이 예술가를 스타로 만드는 신비로운 힘을 지녔다고 믿었고, 자신 역시 스타가 되기를 갈망했다. 그래서 화랑을 방문하고 미술품을 구입하며 금발의 가면을 쓰고 유명인사들과 어울리기 위해 고급 레스토랑을 다녔다.
그는 순수미술에서 느끼는 고상한 감각과 상업미술의 접목을 시도했다. 그것은 미학에 근거하기보다는 ‘새로운 디자인’에 바탕을 둔 작업으로 “어떻게 하면 신선한 충격을 주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다. 완전히 세속적인 그의 감성은 미디어의 집중포화와 유명인사들을 숭배하는 시대의 산물이다. 그는 무자비한 상업주의와 출세 지상주의를 선보인 작가다. 미술작품에 따라다니는 천재와 영감의 산물이라는 르네상스 이래 뿌리 깊게 이어져 내려온 아우라를 말살하고 그것보다는 작가의 명성이 작품의 가치를 대체한다는 사고를 보여주었다. 고급 정통미술과 대중미술의 경계를 부정하는 한편 미술품을 아예 상업시스템에 종속되는 일개 상품으로 파악, 제시했다.
그는 작품값을 올리기 위해 작품의 크기를 키웠고 유명인사의 초상화 제작에 가장 상업적인 방법을 동원했으며 “워홀과 함께 신화를”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자신의 작품을 상품화했다. “사업미술(Business art)은 미술의 다음 단계이다. 나는 상업미술가로 출발했고 사업미술가로 끝마치고 싶다. 나는 ‘미술’이라고 불리는 것을 한 뒤에 사업으로 옮아갔다. 나는 미술사업가 또는 사업미술가가 되고 싶었다. 사업에 수완이 있는 것은 가장 매력적인 예술의 일종이다.”(앤디 워홀)
이후 많은 현대미술가들은 워홀과 같은 작가상을 추구했다. 그리고 이는 현재 한국의 미술가들이 꿈꾸는 것이기도 하다. 근래 작가들은 저마다 연예인에 빙의돼 있다. 자기를 연출하고 과시하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다. 인스타에 작업실과 전시 장면을 올리고 작품이 얼마나 팔렸는지 자랑하고 자기 작업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한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힘들지만 어딘지 심오하고 철학적이며 상당히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려 연기한다. 평론가나 갤러리스트, 도슨트들도 마찬가지다. 마치 사진기자를 동반하고 다니듯이 전시장을 방문한 시시콜콜한 모든 것을 사진, 영상으로 올리고 연예인처럼 차려입고 자기 일상을 선전한다. 모두들 연예인, 유튜버가 되었다. 미술계가 거대한 연극 무대 같고 미술인들은 사업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연예인들이 더 잘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이미 유명인이다. 그러니 그들이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고 작품을 구입하거나 심지어 화랑을 운영하며 작가를 키우고 홍보하는 일련의 상황은 이내 권력이 된다. 연예인들의 전시는 방송에서 친절히 다뤄준다. 대다수 연예인, 방송인 미술인들은 연기하듯 아티스트, 미술전문가 행세를 한다. 작업은 너무 조악한 편인데 다들 현대미술의 거장 같은 얼굴을 하고 포즈를 취한다. 대중들은 그들의 작업이 아니라 그들 존재에 환호한다.
화랑들이 앞다투어 연예인들의 전시를 하는 이유도 그들의 작품이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질적으로 뛰어나서가 아니라 대중성에 기대고자 하는 상술 때문이다. 실제로 판매도 잘된다. 대중들은 그 스타의 명성을 사는 것이다. 연예인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연예인처럼 관리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게 된 것이 우리 미술계의 슬픈 현실이다.
박영택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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