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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 오브 어 서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단 한 줄의 대화도 기적처럼 느껴지길”

누군가에게 반하는 건 순식간일 수 있다.

영화 ‘올 오브 어 서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단 한 줄의 대화도 기적처럼 느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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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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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올 오브 어 서든> 속 두 주인공 마리(오카모토 다오·왼쪽)와 마리루(비르지니 에피라)가 강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네프랑스 스튜디오 제공

프랑스인 마리루·일본인 마리

우연히 만나 인간적으로 반해

돌봄에 대해 하룻밤 동안 대화

비르지니 에피라·오카모토 다오

서로 언어 공부…칸 여우주연상

“배우들, 다언어적 상황 체험”

이상적·현실적인 ‘돌봄’ 그려

“지워지는 것 언급하는 게 예술”

누군가에게 반하는 건 순식간일 수 있다. 최근 폐막한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일본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48·사진)의 영화 <올 오브 어 서든>(원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은 우연히 만난 프랑스인 마리루(비르지니 에피라)와 일본인 마리(오카모토 다오)가 서로 인간적으로 반한 순간을 길고도 짧게, 그리고 아름답게 보여준다.

‘휴머니튜드’(인간 존중)를 중심에 둔 노인 요양시설을 만들려 고군분투하던 마리루는 제 마음과도 같은 연극을 우연히 만난다. 그는 극이 끝나고 연출가 마리에게 대화를 청한다. 하룻밤이라는 짧은 시간, 그러나 긴 대화가 늦도록 이어진다. 서로가 통한다는 걸 알아채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애석하게도 막 시작된 우정에는 끝이 예고되어 있다. 마리는 언제 병증이 악화해도 이상하지 않은 중증 암 환자다.

암 말기의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와 의료인류학자 이소노 마호가 서로에게 쓴 10편씩의 편지를 엮은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다다서재)을 원작으로 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국적과 직업이 각색되며 대화 또한 하마구치가 대부분 새로 썼다. 경향신문과 프랑스 칸 현지 유니프랑스 사무실에서 지난 19일 만난 하마구치는 “원작의 영혼에 최대한 충실하려 했다”며 “제가 받은 깊은 감동을 어떻게 관객의 몸에도 일으킬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거의 타인이던 두 여성이 만나고, 병과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 비정상적일 정도로 깊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 일이 도대체 어떻게 영상 안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제가 원작을 읽고 깊이 느낀 그 감동을 어떻게 관객의 몸에도 일으킬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습니다.”

2020년 일본 영화 프로듀서의 추천으로 책을 읽었을 때만 해도 영화가 구체적으로 상상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상업적 성공도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2022년 프랑스의 프로듀서로부터 합작 제안을 받으면서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라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두 달쯤 체류해 요양시설의 휴머니튜드 실천가들을 만나며 각본을 완성했다. 영화의 주된 배경도 극중 마리루가 일하는 프랑스의 요양시설이다.

벨기에 출신 프랑스인 배우 비르지니 에피라와 일본인 배우 오카모토 다오는 이 영화로 올해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두 배우는 서로의 언어를 할 줄 안다는 설정의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각각 일본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영화 초반에 상대의 언어로 맞춰 이야기하던 마리루와 마리는, 후반부로 갈수록 각자의 언어로 얘기하는데도 자연스레 소통한다.

다국적 배우들이 각자의 언어로 연기하는 연극이 주요 소재였던 하마구치 감독의 전작 <드라이브 마이 카>(2021)가 떠오르는 설정이다. 하마구치는 “다언어적 상황에서 배우들은 자신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기해야 하곤 한다”며 “그런 경우 오히려 상대에게 관심을 충분히 기울여야 연기할 수 있다. 대사를 신호처럼 받아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몸·감정 상태까지 세심하게 관찰하게 된다”고 했다.

하마구치는 “서로 외국어를 말하고 있는데도 서로를 이해하는 건 작은 기적 같은 것”이라며 “특히 둘의 관계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특별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잘 전달되어야 했다. 그러려면 특수한 상황을 두 사람이 직접 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다언어적 상황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작은 기적 속에 존재한다는 경험을 캐릭터가 체험하기를 바랐어요. 단 한 줄의 대화도 하나의 기적처럼 느껴지기를 바랐죠.”

5시간이 넘는 영화(<해피아워>)도 선보였던 하마구치답게 이번 영화도 길다. 장장 3시간16분짜리 영화에서 마리루와 마리가 마법처럼 서로에게 빠지는 하룻밤 동안의 대화는 긴 분량으로 정성스럽게 다뤄진다. 돌봄이 어때야 하는지를 토론하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지적 대화는 얼핏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들릴 수 있다. 마리는 화이트보드를 끌어와서까지 열변을 토한다.

하마구치는 “사실 ‘영화적이지 않은 각본을 쓰고 있구나’ 스스로 생각하기도 했다”며 “그래도 제가 알고 있는 기존의 ‘영화적인 것’으로부터 저 자신을 끌어내줄 수 있는 각본이길 원했다. 그것을 어떻게든 영화로 만들어야 하는 긴장감 속에서 영화가 탄생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얘기를 썼다”고 했다.

영화는 과하게 이상적인 것 같으면서도 캐릭터를 오랫동안 잘 쌓아낸 만큼 현실적이게도 느껴지는 ‘모두가 모두를 존중하는’ 돌봄의 현장으로 관객들을 데려간다. 돌봄 등에 대한 진보적인 관점을 밀고 나가는 정치성과 그 사상이 만들어낸 세계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미감을 동시에 갖춘 영화다.

하마구치는 “예술은 예술가 개인이 만드는 것이니, 그 시선도 제한적이며 현실 자체는 아니다”라면서도 “각각의 삶의 단편에서 상상해 만들어낸 것이므로 ‘현실은 이런 방식일 수도 있다’는 상상력을 포함한다. 그래서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 사회가 통계와 체계로 이뤄진다면, “역할이나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현실도 존재한다는 것, 존재하는데도 쉽게 지워지곤 하는 것들을 언급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올 오브 어 서든>은 하마구치의 전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4)를 비롯해 <그저 사고였을 뿐>(2025), <추락의 해부>(2024) 등을 국내에 소개한 그린나래미디어가 수입했다.

칸 |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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