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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연기도 삶도 늘 의로웠던 ‘시대의 어른’ [고인을 기리며]

“너무 즐겁다고 즐거워하지 말고, 너무 슬퍼도 슬퍼하지 마라. 적당함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우리 삶이더라.”

‘국민 아버지’ 배우 최불암

수사반장 18년, 전원일기 22년…

67년간 연극·드라마 ‘종횡무진’

초록우산재단서 수십년 나눔도

김혜자 “마지막 아냐… 곧 만나자”

李대통령 “오랜 세월 국민 곁 지켜”

염수정 추기경, 2일 장례미사 집전

“너무 즐겁다고 즐거워하지 말고, 너무 슬퍼도 슬퍼하지 마라. 적당함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우리 삶이더라.”

‘전원일기’에서는 양촌리의 넉넉한 김 회장으로, ‘수사반장’에서는 우직한 박 반장으로 안방을 지켰던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은 화면 밖에서도 삶의 지혜를 전하는 어른이었다. 연기에서도, 삶에서도 그는 한결같이 의로웠고, 푸근했기에 ‘국민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레 붙었다.

‘수사반장’, ‘전원일기’, ‘한국인의 밥상’ 등을 통해 ‘국민 아버지’로 사랑받아온 배우 최불암이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30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서 한 조문객이 조의를 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인의 일상과 희로애락을 연기하며 오랜 세월 안방을 지켜온 ‘국민 아버지’ 최불암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1일 방송계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달 29일 오후 10시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해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재활에 힘썼으나 건강이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1959년 연극 ‘햄릿’으로 연기자의 삶을 시작한 그는 1971년부터 1989년까지 MBC ‘수사반장’에서 박영한 반장 역을 맡아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범죄 앞에서는 단호하지만 억울한 이들의 사연에는 귀를 기울이는 인간적인 형사였다. 긴 시간 대중에게 정의를 지키는 경찰의 모습을 선보였고, 경찰 이미지를 높인 공로로 1972년 명예경찰, 2024년 명예 국가수사본부장이 됐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송된 ‘전원일기’에선 양촌리 김 회장으로 분했다. 22년 동안 양촌리에서 그는 빛나는 스타 대신 평범하지만 효심 깊은 아들, 여섯 남매를 키워낸 가장, 아내를 더없이 사랑한 남편을 연기하며 ‘국민 아버지’로 거듭났다. 국민적 사랑을 바탕으로 2011년부터 KBS1TV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하며 전국의 음식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사연을 전했다.

‘국민 아버지’로 불렸지만 정작 그는 8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는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그리워한 아버지의 모습을 연기에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소외된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듬으며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줬다. 그가 아동 후원을 시작한 계기는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이 아이를 양자로 들이는 에피소드였다. 이후 초록우산어린이재단(당시 한국어린이재단)과 인연을 맺어 30여년간 재단 전국후원회장을 맡았다. 미아 찾기나 난치병 어린이 돕기 생방송 출연, 비행청소년을 문화예술로 교화하는 사단법인 제로캠프 이사장 등 활동도 이어갔다. 2024년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그는 후배 배우들을 향해 “국민이 가야 할 길 위에 가시덤불이 있으면 그걸 치우는 게 광대 정신”이라며 “배우지만, 광대지만, 사회 비리를 고발하는 데 힘을 보태고 좋은 일은 따르자”고 당부했다.

한때 정계에도 발을 담갔다. 고인은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제안으로 통일국민당 비례대표(당시 전국구의원)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영등포구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김민석 새정치국민회의 후보(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패해 본업인 배우로 돌아왔다.

부고 소식에 연예계뿐 아니라 정·재계에서도 조문이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로 오랜 세월 국민 곁을 지켜주신 선생님을 기억하겠다”며 명복을 기원했다. ‘전원일기’에서 22년 부부로 합을 맞췄던 배우 김혜자는 “죽으면 또 만날 텐데, 마지막이라고 하지 말아달라. 곧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나문희, 박근형, 윤여정, 차인표, 박상원, 김혜수 등 배우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기렸다. 김민석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등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유족으로는 배우 김민자와 아들 동녘, 딸 동비씨가 있다. 장례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졌다. 발인은 2일 오전 7시40분 유족의 뜻에 따라 비공개로 엄수된다. 오전 9시 여의도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장례미사가 봉헌된다.

차승윤 기자 chasy9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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